[시사뉴스 강철규 기자] '모든 피해자들이 나비처럼 자유롭기를 소망합니다."
일본 배우가 제작한 위안부 소녀상이 뉴욕 맨해튼에서 베일을 벗었다. 30일 맨해튼 46스트리트의 세인트 클레멘츠 극장 앞 인도에서 뜻깊은 제막식이 펼쳐졌다.
한국 창작 뮤지컬로는 사상 처음 오프브로드웨이에서 공연되는 위안부 뮤지컬 '컴포트 우먼(연출 김현준)' 개막을 기념한 이날 행사는 뮤지컬에 출연한 일본계 배우 에드워드 이케구치(48)씨가 소녀상을 제작해 화제를 모았다. <뉴시스 2015년 7월29일 송고기사 참조>
한국과 미국 일본 취재진이 극장 밖에서 기다리는 가운데 이케구치는 김현준 연출가와 함께 소녀상을 조심스럽게 들고 나왔다.
지금까지 한국과 미국 등에서 건립된 위안부 소녀상은 대부분 2011년 서울의 일본대사관 앞에 처음 세워진 김운경 김서경 부부 작가의 평화의 소녀상을 모델로 하고 있다. 한복을 입은 소녀가 맨발로 앉아 있고 그 옆은 빈 자리로 남아 있다. 꼭 쥔 두 손은 피해자의 분노와 슬픔을 상징하고 빈 공간은 세상을 떠난 피해자들을 위한 자리이자 일본이 진정어린 사과와 배상을 하는 날 함께 앉는다는 화합의 이미지를 그리고 있다.
외국인 1호로 소녀상을 제작한 이케구치는 일반 조각이 아니라 3D 컴퓨터로 폴리아미드라는 특수재질로 형상화했다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디자인도 기존의 소녀상 모델과 달리 맨발의 소녀가 선 채로 왼 손으로 무엇인가를 날리는 포즈를 취하고 있다. 손에 들어 있는 것은 바로 나비다.
소녀는 흰색의 재질로 만들어져 노란색 나비와 대조를 이루고 있다. 소녀의 표정은 더 이상 어둡지 않다. 고개를 들어 희망어린 몸짓으로 나비를 하늘로 날아오르도록 하고 있다.
소녀상의 크기는 약 80㎝. 본래 1m의 지지대가 있으나 조립할 시간이 부족해 뮤지컬에서 쓰는 소품을 임시로 붙여서 공개했다. 덕분에 전장 120㎝의 앙증맞고 귀여운 소녀상이 되었다.
김현준 연출가는 "오늘은 일단 언론을 위해 먼저 공개했다. 31일 개막일엔 정규 지지대를 갖춰서 극장 앞에 세워두겠다"고 밝혔다.
폴리아미드 재질로 가볍기 때문에 앞으로 뮤지컬 컴포트 우먼이 공연될 때마다 극장 밖에 세워둘 예정이다. 세계 최초의 이동식 위안부 소녀상이 되는 셈이다.
작지만 특별한 소녀상을 만들기 위해 이케구치는 많은 공을 기울였다. 평소 3D 디자인으로 소품을 만들곤 했다는 그는 "컴퓨터 작업은 2주 걸렸지만 이 정도 크기의 폴리아미드 상을 출력하는 곳이 미국에 없어서 벨기에의 전문 회사에 주문을 해야 했다. 다행히 오늘 오후에 극적으로 뉴욕에 도착해서 공개할 수 있게 되었다"고 말했다.
이케구치는 제작비가 얼마나 들었냐는 질문에 "그냥 선물로 하고 싶었다. 소녀상을 만들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영광이다"라고 말했다. 컴포트 우먼측에 따르면 원가만 1만 달러 소요된 것으로 알려졌다.
소녀가 나비를 날리는 형상을 하게 된 것에 대해 이케구치는 뮤지컬 '컴포트 우먼'을 준비하면서 극중 소녀가 '나는 나비처럼 날고 싶어'라고 하는 대목에서 영감을 얻어 디자인했다고 밝혔다.
나비는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을 상징하는 것으로 버지니아 페어펙스의 위안부기림비와 뉴저지 유니온시티의 위안부기림비에도 상징물로 세워져 있다.
이케구치는 지난 1일 워싱턴 DC 일본대사관 앞에서 미주 최초의 '수요시위'가 벌어졌을 때 김현준 연출가와 두 명의 여배우와 함께 5시간 차를 타고 가서 김복동 할머니와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그때 김복동 할머니에게 드린 선물이 맨해튼에서 구한 나비 장식 목걸이였다. 김복동 할머니가 환한 미소를 지으며 목걸이를 거는 모습을 잊을 수 없다는 그는 "일본계 미국인으로서 뜻깊은 뮤지컬에 출연하고 또 이렇게 위안부 소녀상을 제작할 수 있어 무한한 영광"이라고 말했다.
알려진대로 이케구치는 미국서 태어난 일본계 2세다. 도쿄가 고향인 아버지는 무역을 하셨는데 1964년 미국에 와서 나라(奈良) 출신의 어머니를 만나 결혼했다고 소개했다.
그는 "일본군 위안부 역사에 대해 약간은 알고 있었지만 생존 할머니들이 일본의 사과를 받기 위해서 이렇게 힘들게 싸우고 있다는 것은 뮤지컬을 준비하면서 알게 됐다. 일본계 미국인으로서 이런 일을 해도 괜찮을까 걱정도 됐지만 아무리 부끄러운 역사라도 솔직히 받아들이고 사과를 하는 것이 후세를 위한 길이라고 믿고 있다"고 당당하게 말했다.
명문 컬럼비아대 약학박사 출신인 이케구치는 나스닥에 상장된 소프트웨어 전문 '메디데이타솔루션스' 창설 멤버이기도 하다. 미술과 음악 등 예술에 조예가 깊은 그는 "컴포트우먼을 통해 뮤지컬 배우의 꿈을 이루게 되어 너무나 행복하다"고 말했다.
그는 위안부 결의안 청문회 증인으로 잘 알려진 이용수 할머니가 현재 뉴욕을 방문 중이라는 소식에 반색을 하며 "계시는 동안 우리 뮤지컬을 꼭 한번 보러오시면 좋겠다"며 초청 의사를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