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뉴스 강철규 기자] 영국의 대문호 찰스 디킨스의 '두 도시 이야기'가 아니다.
사상 처음 유엔 경제사회이사회(ECOSOC) 의장직을 수임하게 된 오준 주유엔대표부 대사의 취임연설이 화제를 모으고 있다.
오준 대사는 24일 유엔본부에서 경제사회이사회 의장으로 취임했다. 유엔 경제사회이사회는 총회와 안전보장이사회, 경제사회이사회, 신탁통치이사회, 사무국, 국제사법재판소 등 6개 핵심기관중 하나이다
내년 7월까지 일년간 의장직을 맡게 된 오준 대사는 이날 연설에서 '두 도시 이야기'라는 독특한 내용의 연설로 호평을 받았다.
찰스 디킨스의 '두 도시 이야기(A Tale of Two Cities)'가 프랑스 혁명기 영국과 프랑스의 대립되는 삶을 그렸다면 오준 대사의 '두 도시 이야기(the story of two towns)'는 익명의 두 도시를 비교해 시선을 끌었다.
의장직 수임의 소회와 전임 의장단에 대한 사의를 표한 오준 대사는 "세계 어디에서든 쉽게 찾아볼 수 있는 두 개의 도시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는 말로 연설을 시작했다.
그는 "A도시에서는 사람들이 매일 아침 가족들이 먹을 음식을 구할 수 있을지 고민한다. 일자리가 있는 사람은 일자리를 지킬 수 있을지 걱정하고, 자식들의 미래를 위해서 큰 부담이 되더라도 아이들을 학교에 보낸다. 가족 중에 아픈 사람이 생기면 주변에 아는 의사가 있는지 찾아 나선다. 의료보험제도가 없는 상황에서 의료비를 부담할 형편이 못 되기 때문이다"라고 소개했다.
반면 "B도시에서는 사람들이 매일 아침 집을 살지 증권 시장에 투자할지 고민한다. 고기나 지방을 과다 섭취하여 성인병에 걸리지 않을까 걱정한다. 자녀들에게 국내이든 해외이든 최고의 교육 기회를 주려고 애를 쓴다. 누군가 아프면 의료보험의 보장 범위를 넘더라도 최고의 의사가 어디 있는지 찾는다"고 말했다.
오 대사는 "이 두 개의 도시를 사실적으로 묘사할 수 있는 이유는 두 도시 모두에서 직접 살아봤기 때문이다. 실제로 제 인생은 이 두 개의 도시에서 각각 반반씩 보냈다고 할 수 있다"며 궁금증을 자아냈다.
이어 "제가 옮겨 간 것이 아니라, 제가 살던 도시가 A에서 B로 스스로 바뀌었다"고 덧붙여 청중들의 고개를 끄덕이게 했다. 우리나라의 과거와 오늘을 두 도시로 비유한 이야기였다.
오 대사의 논지는 간접적이지만 명확했다. 그는 "A도시에서 B도시로의 변화를 우리는 '개발'이라고 한다. 안타깝게도 세계에는 이러한 변화를 경험하지 못한 국가들이 많다. 그러나 우리나라가 경험한 변화는 다른 모든 국가도 경험할 수 있다고 본다"고 강조했다.
그는 "B도시의 사람들이 A도시의 사람들보다 반드시 행복하다는 말은 아니지만 우리가 가난을 통해 얻은 실존적 지혜는 배고픈 상태에서 행복하기는 더 어렵다는 것이다. 우리의 자식이 병들어도 어찌할 수 없는 상황에서 사회에 대해 고마움을 느끼기는 어렵다. 이것이 우리가 서로 다름에도 불구하고 누구나 개발을 추구하는 이유일 것"이라고 덧붙였다.
경제사회이사회, 나아가 유엔의 과제가 인류가 지속가능한 환경에서 경제·사회적 발전을 이룰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재치있는 두 도시 이야기로 풀어나간 오준 대사의 연설은 뜨거운 박수를 받았다.
오 대사는 지난해 12월 북한인권 문제를 다룬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도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북한 주민들은 그냥 '아무나(anybodies)'가 아니다. 우리 국민 수백만명의 가족이 북한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먼 훗날 우리가 오늘을 되돌아볼 때 우리와 똑같이 인간다운 삶을 살 자격이 있는 북한 주민들을 위해 옳은 일을 했다고 말할 수 있기를 소망한다"는 연설로 큰 감동을 준 바 있다.
그런가하면 최근 유엔 6개국 대사들로 이뤄진 유엔 최초의 록밴드 'UN Rocks'에서 드러머로 변신해 화제를 모았고, 수준급의 서양화 실력으로 해마다 직접 만든 연하장을 지인들에게 보내고 있다.
팔방미인의 외교관 오준 대사가 유엔경제사회이사회 수장으로 어떤 활약을 할지 관심과 기대가 모아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