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기사

2025.08.05 (화)

  • 흐림동두천 29.3℃
  • 흐림강릉 30.6℃
  • 흐림서울 32.3℃
  • 구름많음대전 30.7℃
  • 구름조금대구 32.7℃
  • 구름많음울산 30.7℃
  • 구름조금광주 31.8℃
  • 맑음부산 32.0℃
  • 구름조금고창 32.7℃
  • 구름조금제주 31.6℃
  • 흐림강화 30.0℃
  • 흐림보은 29.2℃
  • 구름많음금산 31.4℃
  • 구름조금강진군 31.5℃
  • 맑음경주시 32.0℃
  • 맑음거제 31.0℃
기상청 제공

문화

브라질 속의 아시아인들

URL복사

브라질 속의 아시아인들


각국의 이민자들이 꽃피운 브라질 문화




“각자 서로 다른 점이 더불어 사는 우리들을 풍요롭게 한다” 프랑스의 시인 폴 발레리의 이 명언은 브라질의 이민자들을 설명하는데 적절한
문구다. ‘인종의 도가니’로 불리울 정도로 다양한 인종들의 집합체인 브라질은, 개방적 이민 정책을 통해 독자적인 문화를 이루어냈다. 브라질
문화는 각국의 이민자들이 가져온 문화와 전통적인 포르투칼의 문화가 뒤섞여 형성된 것이다. 여기에 아시아인들의 공헌 또한 지대하다.

국립중앙도서관과 주한 브라질 대사관이 마련한 ‘브라질 속 아시아인’ 사진전은 한국, 중국, 일본 등의 이민자들이 낯선 브라질에서 어떻게
살아왔는가를 생생히 보여준다. 140여점이 선보인 이번 전시회는 서울에 이어 일본 도쿄와 중국 베이징을 순회할 예정이다.


‘중국 이민’ 20세기 들어 급증

아시아 대륙 사람들이 브라질에 발을 딛기 시작한 것은 포르투갈의 브라질에 대한 식민 사업의 시작과 함께이다. 1889년 공화국을 성립한
이후 본격적인 이주가 이루어졌으며, 최근에는 점차 줄어드는 경향이다. 지난 200년 동안 브라질에 정착한 아시아인들은 한국인을 비롯, 주로
중국인, 아랍인, 일본인들과 그밖의 소수 민족들이다.

아시아인들의 브라질 이주에 대한 구체적인 역사적 자료는 남아있지 않지만, 아시아인과 브라질과의 첫 접촉은 16세기 중반으로 짐작된다. 대해양시대를
맞이한 포르투갈은 아프리카는 물론, 브라질과 고아와 마카오에 식민지를 건설하면서 아시아인 선원을 고용했다. 선박은 식민지를 경유했으므로
아시아인들과 브라질의 만남 또한 이루어졌을 것이다.

한편, 미나스 제라이스 주정부 역사연구소에 보관되어 있는 고문서들은 17세기 초반 노예로서 그 곳에 종사한 중국인들의 존재를 증명하고 있다.
18세기 초반에는 중국인 노동자들이 대대적으로 수입되었다. 브라질 왕실이 위엄을 드러내기 위해 대단위의 중국차 밭을 만들 계획을 세웠기
때문이다. 1814년 수 백 명의 중국인들이 브라질에 왔다. 거대한 차 생산지를 만들겠다는 왕실의 꿈은 물거품이 되었지만, 중국 이민자들은
다른 농작물 재배지나 인근의 도시들로 흘러갔다.

19세기 들어 이웃 라틴 국가들이 서둘러 노예해방을 실시하자, 브라질 왕실은 흑인 노예대신 ‘자유인 중국인’으로 노동력을 대치하려 했다.
브라질 왕실은 중국 이민을 받아들이기 위해 여러 가지 시도를 했다. 이 계획의 일환으로 1855년에서 1866년 사이 수 백 명의 중국인들이
리우 데 자네이루에 도착했지만 이들은 왕실의 하인이 되거나 인근 도시에 정착했다.

당시 중국 이민자들의 브라질 사회로의 유입은 브라질 내 정치인들과 지식층들 간에 격렬한 논쟁을 촉발시켰다. 노동력의 확보라는 면에서는 긍정적이었지만,
자국민들과 인종의 혼합 가능성에 대해서는 꺼려하는 분위기였다. 당시 유럽 지향적이었던 브라질 지식인들은 흑인들의 피를 부정할 수 없는 자기들의
현실을 못마땅하게 여겼기 때문에, 유럽 이민을 선호했던 것이다.

격렬한 논쟁의 와중에도 중국이민 유치에 대한 브라질 왕실의 노력은 식을 줄 몰랐다. 하지만, 1814년에서 1893년 사이 브라질로 이민한
중국인의 실제 수는 겨우 3천명에 불과했다. 중국인들의 브라질로의 이주가 본격화된 것은 20세기 들어서이다. 중국이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어려움에 처하게 되면서 브라질 이민이 급증했다. 현재 브라질에서 중국이민자의 수는 약 20만 명에 달한다.


브라질의 상류층
‘일본 이민자’무술, 의상, 상술 돋보이는 ‘한국 교민’


아시아인들의 성공적인 브라질 이민에 있어 빼 놓을 수 없는 것이 일본 이민이다. 일본 이민의 성공은 자국의 높은 인구 밀도를 줄이기 위한
일본 황실의 의도와 노동력을 필요로 하던 브라질 정부의 입장이 맞아떨어진 결과였다. 일본 농업 이민자들은 주로 상파울루주, 특히 모지아나에
집중적으로 정착했다.

양국간의 최초의 조약은 1895년 체결되었지만 국제 시장에서의 커피 가격 하락으로 실현되지 못했다. 1905년 브라질의 커피가격이 회복되고,
일본이 러일 전쟁에서 패배하면서 최초로 일본농업 이민이 실현된다. 일본 이민자들은 상파울루 주정부와 커피 대농장주들의 보조금으로 ‘가사투
마루’라는 배를 타고 산투스 항에 도착했다.

이로부터 일본 정부의 국제협력국이 공식적으로 일본인들의 해외이민을 종식시키는 성명을 낸 1993년까지 약 25만명의 일본인들이 브라질에
정착했다. 그들은 처음 농업에 종사하거나 농업에 관계된 사업을 하다가, 나중에는 도시의 소상인이 되었다.

오늘날 4대에 걸친 일본 이민자의 수는 그 후손까지 합쳐 약 130만명에 이르는데 이는 브라질 총인구 1% 미만에 해당한다. 하지만, 이처럼
낮은 비율에도 불구하고 일본인 후세들은 현재 브라질 국내 최대 대학인 상파울루 주립대학 교수의 8%, 학생의 15%를 차지하고 있다. 일본
이민자들이 브라질 문화에 끼친 영향은 일본식 미술 학교의 설립으로 대변될 수 있다. 이는 브라질 예술계가 일본 예술을 가장 가치 있게 인정하고
있는 증거인 셈이다.

브라질 거대 이민물결의 마지막은 한국이민이 장식했다. 1963년 2월 12일 103명의 한국 이민자들은 가족단위 농업이민으로 브라질에 발을
딛었다. 70년대 한반도의 불안한 정치 및 경제 사정으로 파라과이를 비롯한 제3국을 경유한 불법이민이 문제가 되기도 했다. 하지만, 화란
선박 ‘치치렝카’로 브라질 산투스항에 도착한 한국 이민자들은 명석한 두뇌와 일에 대한 집착력으로 브라질에 뿌리를 내렸다.

한국 이민자들 대부분이 브라질 최대의 상공업의 도시 상파울루에 정착하여 의류업과 무역업에 종사한다. 상파울루의 교민 수는 5만여명 이상으로
추산된다. 최대 한인 이민도시 미국 LA 다음으로 손꼽히는 이민촌인 것이다. 상파울로의 봉헤치로에는 한국교민들이 모여 살며 의류상가를 대규모로
형성하고 있다. 이 곳은 “한국의 한 거리를 옮겨 놓은 듯한 느낌을 준다”는 평가를 받을 정도로 교민들의 상점이 활성화되었다. 브라질 사회는
한국교민들의 용이 주도한 사업수단을 높이 사고 있다.

특히 교민들은 태권도를 비롯한 무술과 의상에 관한 예술 분야에서 인정받고 있다.



정춘옥 기자 ok337@sisa-news.com

저작권자 Ⓒ시사뉴스
제보가 세상을 바꿉니다.
sisa3228@hanmail.net





커버&이슈

더보기

정치

더보기
'방송법 개정안' 필리버스터 이틀째… 민주당, 5일 오후 본회의서 표결 처리
[시사뉴스 홍경의 기자] '방송법 개정안'에 대한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이 이틀째 이어지고 있다. 국회는 지난 4일 열린 본회의에서 방송법 개정안을 상정했다. 이에 반발한 국민의힘은 신동욱 의원을 시작으로 필리버스터에 돌입했다. 신 의원은 오후 4시 1분께부터 약 7시간 30분동안 반대 토론을 펼쳤다. 그는 "이 법은 1980년도 신군부의 언론통폐합에 버금가는 언론 목조르기법이라고 감히 생각한다"며 "제가 31년 동안 방송계에 종사했지만 이걸 방송개혁이라고 하는 주장에 너무나 기가 막힌다"고 말했다. 이어 "'민주당 방송만들기 프로젝트'라고 불러달라. 그러면 저희가 순수하게 받아들이겠다"고 했다. 두 번째 토론자로 나선 김현 민주당 의원은 오후 11시 33분께부터 찬성 토론을 펼치며 "방송3법 개정안을 추진하는 목표는 방송의 자유와 독립을 보장하고 방송의 공적 책임을 높이기 위함"이라고 주장했다. 이후 이상휘 국민의힘 의원이 반대 토론을, 노종면 민주당 의원이 찬성 토론을 진행중이다. 방송법은 현행 11명인 KBS 이사 수를 15명으로, 9명인 MBC 대주주 방송문화진흥회·EBS 이사 수를 13명으로 늘리고 이사 추천 주체를 다양화한 것이 핵심이다. 또 지


사회

더보기
김형재 서울시의원, 서울역사박물관 주관 광복 80주년 기념 특별전 개막식 참석해 축사
[시사뉴스 홍경의 기자] 서울특별시의회 김형재 의원(국민의힘, 강남2)은 4일 서울역사박물관에서 열린 광복 80주년 기념 특별전‘국무령 이상룡과 임청각’과 ‘우리들의 광복절’공동 개막식에 참석해 축사를 전했다. 이번 특별전은 서울역사박물관과 서울시 문화본부가 공동 주최하며, 광복 80주년을 맞아 광복의 역사적 의미를 재조명하고 시민들과 함께 기억하기 위해 기획됐다. 개막식에는 김형재 의원을 비롯해 박물관 및 문화계 인사, 연구자, 시민 등 100여 명이 참석해 뜻깊은 자리를 함께했다. ‘국무령 이상룡과 임청각’ 전시는 많은 독립지사를 배출한 안동시와의 교류협력 속에서 만주지역 무장독립투쟁을 이끈 상해 임시정부 초대 국무령이셨던 이상룡 선생과 이상룡 선생의 고택 임청각의 역사를 조명할 예정이며, ‘우리들의 광복절’ 전시의 경우 문학, 음악, 영화 등 대중문화 속 광복절을 되새기며 시민의 기억을 담아낼 계획이다. 김 의원은 이날 축사에서 “단재 신채호 선생님께서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고 하셨고, 역사학자 E.H.Carr는‘역사는 되풀이된다’고 했다”며 “그런 의미에서 광복 80주년을 맞아 서울시와 서울역사박물관이 함께 마련한 이번 특별전은 매우 시

문화

더보기
1920~30년대 스타 명창들의 기록... 국립국악원 민속악단 ‘경셩유행가 - 판을 나온 소리’ 공연
[시사뉴스 정춘옥 기자] 화성시문화관광재단(대표이사 안필연)은 오는 8월 22일(금) 국립국악원 민속악단의 ‘경셩유행가 - 판을 나온 소리’ 공연을 동탄 반석아트홀에서 선보인다. ‘경셩유행가 - 판을 나온 소리’는 1920~30년대 유성기 음반의 등장과 함께 당대 대중의 사랑을 받았던 스타 명창들의 민요, 판소리, 기악, 병창 등 대표 작품들을 국립국악원 민속악단 성악 단원들의 목소리로 재현한 무대다. 100여 년 전의 대중성과 감성을 현대의 시각으로 풀어내며 전통 성악의 매력을 새롭게 조명한다. 공연에서는 서도민요 중 최순경의 ‘반월가’와 ‘화투풀이’를 시작으로 박녹주의 ‘죽장망혜’, 이소향의 ‘호접몽’ 등 유성기 음반에 실렸던 대표적 유행가들을 성악 장르별로 소개한다. 민요와 판소리는 물론, 병창 무대도 함께 구성돼 당시 대중이 사랑했던 우리 소리의 정수를 풍성하게 만날 수 있다. 국립국악원 민속악단은 전통 음악의 전승은 물론, 2000년대 이후 성악 중심의 레퍼토리 개발과 서울·경기 지역 굿풍류 및 민간풍류의 복원에도 힘써오고 있다. 이번 공연은 그간 축적된 민속악단의 성과를 바탕으로 전통 성악의 대중적 접근을 시도하는 의미 있는 무대가 될 것이다. 공

오피니언

더보기
【박성태 칼럼】 의대생 전공의 복귀하려면 무조건 사과부터 해야
지난해 ‘의대 정원 2000명 증원’에 반발해 집단 이탈했던 의대생과 전공의들이 지난 14일 전격 복귀 의사를 밝히면서 17개월 만에 의정 갈등이 마침표를 찍게 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다만 복귀자들에 대한 학사일정조정, 병역특례, 전공의 시험 추가 응시기회 부여 등 특혜 시비를 슬기롭게 해결하지 못하면 의정갈등의 불씨는 계속 남아있게 된다. 새로운 정부가 들어서면서 1년5개월 만에 해결의 실마리를 찾고 있는 의정 갈등의 해법은 의대생, 전공의들이 무조건 국민과 환자들에게 의정 갈등으로 인한 진료 공백 사태에 대해 사과부터 하고 그 다음 복귀 조건을 제시하는 수순을 밟는 것이다. 지난해 2월부터 발생한 의정 갈등은 정부가 고령화 시대 의료 수요 증가와 지역·필수의료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의대 정원 2000명 증원과 지역의료 강화, 필수 의료 수가 인상 등을 묶어 필수 의료 정책 패키지 추진을 강행하면서부터 시작됐다. 의료계는 이에 대해 의사 수 부족이 아닌 ‘인력 배치’의 불균형 문제이며, 의료개혁이 충분한 협의 없이 졸속으로 추진되었다고 반발하며 집단행동에 나섰다. 의료계는 의사 수 증가가 오히려 과잉 진료와 의료비 증가를 야기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