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뉴스 김한나 기자] "날 위해 뭘 해줄 수 있어?"라고 나긋이 묻는 '자영'의 질문에 '근태'는 잠시 생각하더니 이내 답한다. "평생 널 위해 노래할게" 근태의 대사는 영화 '쎄시봉'(감독 김현석)이 어떤 영화인지 알려준다. '쎄시봉'이라는 제목 탓에 음악영화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실은 음악을 적극적으로 활용한 멜로영화에 가깝다. 그리고 근태의 대사가 알려주듯 이 멜로영화의 사랑은 순애보적 사랑이다.
정우(34)의 차기작이 궁금했다. 10년이 넘도록 평범한 배우로 살았던 그는 드라마 한 편으로 2013년 가장 큰 성공을 거둔 배우가 됐다. 하지만 스타가 된 정우는 드라마를 마친 뒤 1년여 동안 대중 앞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물이 들어왔는데, 노를 젓지 않는' 그의 행보에 많은 이들이 의아해했다. 도대체 뭘 하고 있길래?
쏟아지는 시나리오 중에 정우가 고른 작품은 김현석 감독의 '쎄시봉'이다. 시사회를 통해 공개된 영화는 정우가 돋보이는 작품이 아니었다. 그 시절의 공기와 분위기가 더 중요하고, 다양한 인물이 뒤섞여 '함께' 발산하는 에너지가 더 큰 동력으로 작용하는 영화였다. 그래서 궁금했다. 고르고 고른 작품이 왜 하필 '쎄시봉'인지.
정우는 "진심이 중요했어요"라고 짚었다. "머리가 아닌 마음이 이끄는 연기"를 말하며 '연기에 대한 순애보'를 이야기하는 정우가 한 여자에게 모든 마음을 다 준 근태를 택한 건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이었을 지도 모른다.
"전 (강)하늘이나 (조)복래처럼 기타를 잘 치는 것도 아니고 노래를 잘 부르는 것도 아니죠. 무대에서 노래한 경험도 없고요. 걱정이 왜 안됐겠어요. 관객을 어떻게 설득해야 할지 고민이 됐습니다.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은 결국 진심이었어요. 기교와 기술이 중요한 게 아니라고 본 거죠. 제가 진심을 다해 연기하고, 노래한다면 그 감정이 분명히 관객에게 전달될 거로 생각했어요."
근태는 1970년대 무교동의 음악감상실 '쎄시봉'에서 탄생해 짧지만 당시 어떤 그룹보다 빛났던 송창식·윤형주의 '트윈폴리오' 제3의 멤버다. 송창식과 윤형주는 당대의 음악천재들. 근태는 두 뛰어난 재능 사이에서 균형을 잡아주고, 음색을 더 풍부하게 해주는 역할을 해야한다. 악기로 치면 베이스 같은 인물이다. 강하늘이 연기한 윤형주, 조복래가 연기한 송창식만큼은 아니지만 음악과 노래에 대한 감이 있어야 한다. 강하늘과 조복래는 뮤지컬을 해 노래와 악기 다루는 실력이 모두 수준급이다.
정우가 이 두 사람 사이에서 연기하기 위해 택한 건 '정직함'이다. '척하지 말자'가 관객에게 다가가 그들의 마음을 뺏는 정우의 방식이었다. "뭔가를 억지로 하려고 하면 반감을 산다"는 것이다. 근태가 경쟁자들을 제치고 자영의 마음을 얻은 것도 정우가 근태를 연기하는 태도와 다르지 않다. 근태는 투박하지만, 어떤 가식도 없이, 수줍은 노래로 자영에게 마음을 전한다. 그게 자영의 마음을 흔든다.
흔히 말하는 '단독' 혹은 '투톱' 주연이 아닌 작품을 택한 이유도 다르지 않다.
"분명히 제가 도드라지는 작품을 선택할 수 있었어요. 그런데 글쎄요…. 그게 중요하지는 않아 보였어요. 연기는 정말 즐거워서 좋은 작품을 함께 어우러져서 하는 일이니까요. 제가 부족한 걸 다른 배우들이 채워주고, 다른 배우가 부족한 건 제가 채워주면 되니까요. '응답하라1994'를 할 때도 그랬어요. 모두 열심히 했고, 마음을 다해서 했고. 그래야 잘되는 것 같아요."
정우가 '쎄시봉'을 택한 또 다른 이유는 바로 '배움'이다. 그는 달라진 자신의 배우 인생을 "부담스럽고, 겁이 나는 부분이 있죠"라며 "그것을 극복하는 방법은 배움의 길로 나아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중년의 근태를 연기한 김윤석과 한 영화에 출연하는 것이 정우가 말하는 '배움' 중 하나다. 하지만 2인1역인 탓에 정우와 김윤석이 함께 담기는 화면은 없다.
"선배님(김윤석)과 한 영화에 출연한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해요. 그것만으로도 저는 배웁니다. 선배님이 저와 같은 역할을 연기한다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든든하더라고요. 영화는 많은 돈이 들어가는 장르잖아요. 주연배우가 책임져야 하는 게 많습니다. 그런 부담을 항상 가지고 계신 분이잖아요.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힘이 돼요. 전 이제 시작이니까요."
정우는 "행복한 배우가 되고 싶어요"라고 했다. "너무 치열하게만 하면 관객도 내 연기를 치열하게만 받아들일 것 같습니다"라는 것이다.
"진심으로, 즐겁게 연기해서 그 행복을 관객분들께 다 나눠드릴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