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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순애보가 진짜 사랑 아닐까"…'쎄시봉'의 김현석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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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뉴스 김한나 기자] 영화 '쎄시봉' 시사회를 마치고 나오는데 두 중년 남성의 대화가 귀에 들어왔다. "아, 담배 한 대 피우고 싶네." "담배는 무슨, 소주 한잔 해야지." 

제목을 보고 '음악영화'가 분명하다고 생각했지만 '쎄시봉'은 '사랑' 영화였다. 그것도 흘러가 버린 사랑에 대한 영화. 그렇다면 이것은 5060세대의 '건축학개론'이 아니냐는 생각에 뻔한 영화 한 편이 또 나왔다고 불평하다가 생각을 고쳐먹었다. 결국 관객이 원하는 것은 뭔가 대단한 게 아니다. 무엇인가를 떠올리게 한다면 그것만으로도 영화는 가치가 있을 수 있다. '쎄시봉'은 멍하게 앉아 나에게도 '있었던' 순애보를 떠올리게 하는 영화다. 그래서 담배 한 개비를 태우고 싶게 하고, 쓴 소주를 목구멍으로 천천히 넘기고 싶게 한다.

순애보. 낡은 단어다. 이제는 사라져도 크게 이상하지 않을 통속적이고, 관습적인 단어다. 그런데 김현석(43) 감독은 순애보를 '또' 꺼내 보인다. '슈퍼스타 감사용'(2004) '광식이 동생 광태'(2005) '스카우트'(2007) '시라노:연애조작단'(2010)이 그랬다. 직전 작품인 '열한시'를 뺀다면 그는 같은 말을 하고 있다.

멜로를 말할 때 우리는 허진호를 거론한다. 오락을 이야기할 때는 최동훈이 등장한다. 부조리를 논할 때는 박찬욱을, 인간탐구를 말할 때는 홍상수를, 철학을 파고들어 갈 때는 이창동을,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아우를 수 있는 봉준호도 있다. 김현석 감독에게 단어 하나를 붙인다면, 그것은 '남자의 순애보'다.

음악감상실 쎄시봉은 포크 음악의 전성기를 이끌었고 한국 대중음악을 진일보시킨 곳이었다. 이 시기가 흥미로운 건 한국 음악의 발전과는 별개로 아름다운 사랑 노래가 유독 많이 탄생했기 때문이다. 이장희의 '나 그대에게 모두 드리리', 트윈폴리오의 '웨딩 케이크' '하얀 손수건', 송창식의 '담배가게 아가씨' 그리고 수많은 사랑에 관한 번안곡이 태어났다. 그래서 김현석 감독이 쎄시봉 시절을 잊혀져가던 '우리의 순애보'와 연결한 건 어쩌면 필연이다.

-개봉이 얼마 남지 않았다. 기분이 어떤가. 시사회 반응은 나쁘지 않았다.

"아직 잘 모르겠다. 뚜껑은 열어봐야 안다. 시사회만으로는 영화에 대한 평가가 어떨지 판단할 수 없다. 진짜 관객을 만나봐야 느낌이 올 것 같다."

-어쨌든 영화가 완성됐다. '쎄시봉'에 대한 당신의 자체 평가는 어떤가.

"내가 생각했던대로 나왔다. 만족한다."

-어떤 지점에서 만족한다는 것인가.

"원하는 이야기가 나왔다는 점에서다."

-원하는 이야기가 무엇이었나. 구체적으로 말해달라.

"윤형주, 송창식, 조영남, 이장희 씨의 삶에 대해서는 많은 사람이 잘 알고 있지 않나. 그것을 그대로 만들면 큰 의미가 없을 거라고 봤다. 다큐도 아니고 창작자로서도 흥이 안 날 것 같았다. 그래서 쎄시봉으로 무슨 이야기를 할 수 있을지 고민했다. 그러다가 떠올린 것이 사랑 이야기였다. 쎄시봉 시기의 노래들은 유독 사랑 노래가 많다. 가사도 아름답고. 자연스럽게 '그 사랑 노래들이 어떻게 쓰였을까'라는 생각으로 발전하더라. 거기서 영화적 상상력을 발휘했다. 트윈폴리오의 '웨딩케이크'를 좋아한다. 그 노래의 가사가 참 영화 같다. 이 노래로 이야기를 만들어보자고 했다."

-'웨딩케이크'는 남자가 불렀지만 가사는 여자가 쓴 것 같다.

"맞다. 그 지점이 재밌었다. 그 가사를 '민자영'(한효주)이 썼다는 것에서 '쎄시봉'의 내러티브가 시작된 것이다."

-영화 '쎄시봉'을 영화로 만들겠다는 생각을 한 뒤에 그런 내러티브가 떠올랐다는 말로 들린다. 그렇다면 쎄시봉을 소재로 영화를 만들겠다는 생각은 어떻게 하게 된 것인가.

"4년 전에 처음 생각하게 됐다. '시라노:연애조작단'을 끝내고 난 뒤인데, 그때 마침 한 토크쇼를 통해 쎄시봉이 다시 떠올랐다. 원래 그분들 노래를 좋아하기도 했다. 노래도 노래지만 그들의 삶도 흥미로웠다. 환갑이 지난 나이인데 아직도 젊게 살더라. 영화로 만들어 보면 재밌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시작하게 됐다. 시나리오는 2년 전에 나왔다."

-쎄시봉에 대한 관심이 조금은 떨어진 시기에 영화가 나왔다. '시라노' 끝내고 바로 영화가 나왔다면 더 좋지 않았을까.

"'시라노'까지 끝내고 나니까 로맨틱 코미디가 하고 싶지 않더라. 사랑 영화에 좀 질렸던 것 같다. 그래서 내가 시나리오를 쓰지도 않은 SF영화 '열한시'를 연출했다. 그러고 나니까 다시 멜로 감정이 생기더라. '열한시' 후반 작업을 하면서 틈틈이 시나리오를 썼다. 한 두 달 만에 쓴 것 같다."

-'열한시'가 흥행 성적이 좋지 않았기 때문에…

"완전히 망했다."(웃음)

-그래서 당신이 잘할 수 있는 매우 대중적인 화법의 영화를 선택한 것은 아닌가. '쎄시봉'을 보면서 '이번에는 꼭 흥행시켜야겠다'라는 당신의 의지가 보이기도 했다.

"'열한시' 때문은 아니다. 그 작품에 대해 후회하지 않는다. 아까도 말했지만, 멜로 감정이 다시 생겨나서 '쎄시봉'을 만든 것이라는 게 더 적절한 것 같다. 이 영화가 내 영화 중 가장 대중적으로 보이는 건 음악의 힘 때문이 아닐까. 노래의 힘이 큰 것 같다. 내 영화에 도전이 없어졌다면, 나이가 들어서인 것 같다."

-멜로 감정이 다시 살아났다는 것에 대해 더 설명해 달라.

"로맨틱 코미디 혹은 멜로로 분류될 수 있는 영화를 연달아 하다 보니까 조금 지쳤던 것도 같다. 그사이 내 감정이 조금 메마르기도 했다. 세상의 때를 타다 보니까 사람이 건조해지더라. 모든 걸 다 바치는 사랑이 최고라고 생각했는데, 그런 건 영화에만 있는 게 아니냐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열한시'를 찍은 거다. 그런데 '쎄시봉' 시나리오를 쓰면서 다시 사랑에 대해 생각하게 됐다. 내가 자연스럽게 멜로 시나리오를 쓰고 있더라. 시나리오가 완성되는 걸 보니 사랑 이야기를 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귀납적으로 느껴진 감정이라고 보면 된다."

-그래서 또 다시 순애보인가. 어설픈 남자의 순애보라는 점에서 전작들과 비슷한 면도 있다.

"비슷한 게 맞다. 다 내가 한 것이니까. 그리고 그런 걸(어설픈 남자가 주인공인 것) 내가 좋아한다. 완전한 인간이 주인공인 건 재미가 없다. 불완전한 남자가 뭔가를 이루기 위해 아등바등하는 모습에서 재미를 느낀다. 순애보라는 측면은 내가 맨 처음 영화감독이 되겠다고 마음먹은 작품과 관계가 있는 것 같다. 배창호 감독님의 '기쁜 우리 젊은 날'을 좋아했는데, 그 영화야말로 진짜 순애보 아닌가. 이런 종류의 영화가 내 정서를 형성하는 데 영향을 줬다. 이런 것도 있다. 요즘은 순애보라는 게 없는 시대가 아닌가. 근데 그게 진짜 사랑일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순애보라고 말을 했지만, 영화가 매우 신파적으로 보이기도 했다. 특히 1990년대 장면은 좀 심한 게 아닌가. 김윤석과 김희애의 연기가 과해보였다.

"그게 그렇게 보였나.(웃음) 하지만 신파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이건 순애보다. 이 영화는 김윤석 선배가 흐느끼는 장면에서 시작한 것이라고 보면 된다. 그 눈물은 이십년을 넘게 참아온 눈물이다. 근태는 어떻게 보면 프락치다. 친구를 팔아먹었다. 90년대의 근태는 과거와는 눈빛부터 다른 인물이다. 그런 사람이 무너지는 순간이 필요하다고 봤다. 김윤석도 그 장면에 동의했다. 처음부터 김윤석 선배가 90년대 근태를 맡아주기를 바랐는데, 선배도 그 장면에 꽂혔다고 하더라. 젊은 관객은 이 부분을 조금 신파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지만, 조금 나이가 있는 관객은 이 장면에 동의하지 않을까."

-'쎄시봉'이 말하는 사랑은 모든 관객이 동의하는 사랑은 아니라는 말로 들린다. 그렇다면 중장년층을 노린 기획이라는 건가.

"그건 아니다. 시사회 전에는 전 세대가 공감하는 내용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뚜껑을 여니까 반응이 미세하게 다르더라. 신기한 느낌이다."

-신파가 관객에게 어필하는 부분이 많은 건 사실인 것 같다. '국제시장'만 봐도 그렇다. 그런 면에서 제작사에서는 '쎄시봉'의 연출을 좋아했겠다.

"사실 난 시크한 멜로를 만든다고 생각했다.(웃음) 영화 쪽에서는 신파 같은 것을 '된장 바른다'고 하는데, 예전에 영화 찍을 때 된장 좀 바르라는 말을 많이 들었다. 이번에는 제작사 쪽에서는 내게 된장 바르는 데 성공했다고 하더라."

-개인적으로는 단순히 영화가 신파적인 측면이 있다고 해서 부족함을 느낀 건 아니다. 그럴 수도 있는 부분이니까. 그보다는 신파적인 측면을 강조하느라 음악영화로서의 정체성을 놓쳤다는 게 더 아쉬웠다.

"음…. 난 여전히 음악영화라고 본다. 다만 쎄시봉을 이끌었던 분이 주인공이 아닌 음악영화다. 만약 윤형주 송창식을 중심으로 음악영화로 풀었다면, 그분들의 삶을 뒤틀 수가 없다. 새로운 인물을 넣어 음악영화를 하고 싶었다. '사랑 노래가 어떻게 만들어졌을까'라는 물음에 대한 답으로서 음악영화인 것 같다. "

-음악으로 다루는 영화이니까, 캐스팅이 무엇보다 중요했을 것 같다.

"윤형주, 송창식 역할은 노래가 중요했다. 우리 영화의 노래들은 모두 배우들이 직접 불렀다. 무조건 노래 잘하는 사람 뽑으려고 1차 오디션에는 난 참석하지도 않았다. 일단 노래가 되는 친구들을 골라놓고 거기서 캐스팅하려고 했다."

-윤형주를 연기한 강하늘과 송창식을 연기한 조복래가 노래를 정말 잘하더라.

"강하늘은 지금처럼 뜨기 전이었다. 보자마자 계약하자고 했다. 강하늘은 노래도 정확하고, 연기도 정확하다. 윤형주 역에 대해서는 크게 고민하지 않았다. 문제는 송창식 역이었다. 송창식 선생님의 가창력이나 가수로서 아우라는 대단하지 않나. 성에 차는 배우가 없더라. 나중에는 어떻게 송창식 선생님만큼 노래하는 배우를 찾겠나 싶어서 마음을 비웠다. 그 과정에서 눈에 들어온 게 조복래다. 분위기가 좋았다. 촬영 전까지 노래 실력을 더 끌어올리기로 하고 조복래로 결정했다."

-정우를 캐스팅한 것은 그가 그 당시 핫했기 때문인가.

"당연히 그런 측면이 있다. 제작자나 투자자들이 좋아했다. 정우를 탐내는 곳이 많았다. '응답하라1994' 끝나니까 시나리오를 받더라. 정우가 내 시나리오에 가장 끌렸나 보다. 영화 '바람'을 봤었는데, 연기도 정말 잘하더라. 어차피 근태는 윤형주, 송창식보다는 상대적으로 음악실력이 부족한 인물이니까 정우가 충분히 해낼 수 있을 거라고 봤다."

-'쎄시봉'은 이제 개봉만 남았다. 이제 감독이 할 수 있는 건 없는 것 같다. 이르기는 하지만 다음 작품에 대해 고민을 하고 있을 것 같다. 또 멜로인가.

"하고 싶을 때 할 것이다. 마음이 가야 할 수 있는 것 같다."

-정통 멜로는 하지 않았다. 항상 코믹한 요소가 있었다.

"어떤 장르를 하든지 간에 코믹 터치는 할 것이다. 그건 내가 가장 좋아하는 부분이다. 안 바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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