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뉴스 김한나 기자] "땅종대! 돈용기! 그래 우리 끝까지 한번 가보자!"
김종대(이민호)와 백용기(김래원)가 가닿으려 했던 그 끝은 어디였을까. 그들은 그 끝에 뭐가 있다고 생각했을까. 어차피 터널 속에 갇힌 삶, 머무르다 죽나 전진하다 죽나 죽는 건 마찬가지다. 그래서 그들은 간다. 악착같이 기어서 간다. 팔꿈치가 까지고 무릎이 닳아도 꾸역꾸역 간다. 혹시나 그 끝에 빛이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에. 그러나 그들은 사실 빛이 뭔지도 모른다. 그들은 어쩌면 전진하는 게 아니라 터널 속을 맴돌며 헤매고 있었던 건지도 모른다.
고아 종대와 용기는 출생신고도 돼 있지 않은 거지다. 세상은 벼랑 끝에 매달려 사는 그들의 손을 짓밟는다. 그들이 살아남기 위해선 손을 밟고 있는 그 발을 잘라버리는 방법밖에 없다. 종대와 용기의 살아남기 위한 '발악'이 1970년 강남으로 모여들던 권력과 조우해 폭력으로 터져나오는 건 어쩌면 당연하다. 유하 감독은 영화 '강남1970'에서 땅과 돈과 권력을 향한 욕망이 펼쳐보이는 지옥도 속에서 이리저리 휘젓고, 또 휘둘리는 '두 주먹'의 처음과 끝을 조용히 따라다니며 응시한다.
넝마주이인 종대와 용기의 삶은 야당 전당대회에 깽판을 놓으라는 명령을 받은 깡패 무리에 우연히 뒤섞이면서 바뀐다. 3년 후 종대는 은퇴한 조직의 중간보스 길수(정진영)의 가족이 되고, 용기는 또 다른 폭력조직의 행동대장이 된다. 종대는 희망 없는 삶에서 벗어나고자 민 마담(김지수)을 도와 강남 땅 투기 사업에 뛰어든다. 용기와 다시 만난 종대는 더 큰 야망을 위해 용기와 힘을 합쳐 서 의원(서태곤)의 강남 땅 이권다툼에 뛰어든다.
유하 감독의 영화에는 언제나 폭력과 욕망이 뒤섞여 있다. 유하 감독 본인이 밝혔듯이 그의 신작 '강남1970'은 '말죽거리 잔혹사'(2004) '비열한 거리'(2006)와 한 데 묶을 수 있는 작품이다. 유하 감독은 '말죽거리 잔혹사'에서 폭력의 탄생을, 폭력에 대한 매혹과 반성의 경계선에 선 사춘기 남학생을 통해 관찰한다. '비열한 거리'는 돈을 향한 욕망이 폭력을 어떻게 활용하는지, 한 남자의 삶을 거울삼아 바라본다. '강남1970'은 폭력과 욕망에 대한 두 영화의 시선을 하나로 겹쳐 바라보는 작품이다. 생존에의 욕망은 폭력을 촉발하고, 권력은 폭력을 이용한다. 여기서 유하 감독이 드러내고자 하는 건 자신이 원하는 것을 기어코 얻어낸 기득권이 아니라 그 아수라장 속에서 스러져가는 강자처럼 보이는 약자들이다. '강남1970'은 이런 점에서 볼 때 '거리 3부작' 혹은 '강남 3부작'이 아니라 '폭력과 욕망 3부작'의 완결편이라고 말하는 게 더 옳다.
이 이야기를 하기 위해 '강남1970'은 성실하게 서사를 끌고가는 방식을 택한다. 스타일에 기반을 두고 예쁜 화면을 보여주거나 파격적인 형식을 취하거나 시각효과를 극대화하거나 단순히 에피소드를 나열하는 건 애초에 유하 감독의 방식이 아니다. 그는 자신의 모든 영화에서 항상 서사에 집중했다.(아이러니 한 건 그가 시인이었다 점이다) 아마도 '강남1970'은 그가 들려준 이야기 중 가장 복잡한 이야기일 것이다. 유하 감독이 전작보다 상대적으로 복잡한 서사를 택한 이유는 매우 당연해 보이는데, 그것은 좀 더 극적인 마무리나 새로운 서사로의 도약을 위한 것은 아니다. 등장인물 각자의 욕망이 서로 뒤엉켜 만들어내는 부분적 성공과 일부의 파국을 더 명징하게 드러내기 위한 것이다.(세 무리가 한 장소에서 벌이는 진흙탕 싸움은 이 서사를 시각적으로 보여준다)
유하 감독은 135분이라는 긴 러닝타임 대부분을 서사를 빽빽하게 쌓아올리는 데 할애한다. 덕분에 '강남1970'의 서사는 치밀한 논리를 확보하고, 관객이 자연스럽게 극 속에 몰입하게 한다. 영화가 지루하게 느껴지지 않는 건 이 때문이다.
촬영 면에서 유하 감독은 전작에서 택한 방식을 벗어나지 않는다. 인물의 얼굴을 클로즈업하는 쇼트가 많은 것이 그렇다. 종대나 용기는 타고난 악인이 아니다. 그들은 악인이 돼야 살아남을 수 있는 불행한 시대의 인물들이다. 그들의 마음은 흔들리고 또 흔들린다. 김종대와 백용기의 폭력에는 쾌감이 아닌 불안감이 엿보인다. 이런 그들의 우수(憂愁)를 객석으로 스며들게 하는 건 역시 클로즈업된 얼굴이다.
언뜻 '강남1970'은 누아르 영화로 보이기도 하지만 그것은 빗나간 독법이다. 이 영화는 누아르와는 거리가 멀다. 종대와 용기를 장르적으로 과장된 인물이라고 할 수는 있지만, 드라마틱하게 조형된 캐릭터는 아니기 때문이다. 종대와 용기는 오히려 현실에 단단히 발을 붙이고 있다.
이 세계에서 영화의 폭력은 정당성을 얻는다. '강남1970'의 폭력은 '말죽거리 잔혹사'나 '비열한 거리'의 그것과는 다른 맥락에서 사용된다. 앞선 두 작품에서 유하 감독은 폭력을 어느 정도 즐기는 것처럼 보이나(표현 방식에서) 이번 영화에서는 다르다. '강남1970'의 폭력은 가진 것이라곤 몸뚱아리 밖에 없는 이들이 택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실세들이 지도를 보며 강남 개발사업의 큰 그림을 그리는 것과는 달리 폭력조직은 당장 눈앞에 닥친 위기들을 해결하기에 급급한 집단이다.
종대와 용기가 비극적인 최후를 맞을 수밖에 없는 건 터널 끝에 보이는 빛에 다가가지 못해서가 아니라 그 빛 자체가 애초에 그들을 위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유하 감독이 말하는 "권력이 폭력을 소비한다"는 말은 바로 이런 의미다.
이미 한류스타로 수많은 팬을 확보하고 있는 이민호는 이번 영화를 통해 스타가 아닌 배우로 힘찬 첫발을 내디뎠다. 그는 비극을 향해 달려가는 불안한 청춘의 이미지를 자신에게 이식하는 데 성공한다. '강남1970'에서 재벌 3세를 연기하던 이민호는 없다. 김래원은 이 영화를 통해 제2의 전성기를 맞이할 것으로 보인다. 이미 드라마 '펀치'에서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그는 자기 속에 숨겨진 비열함을 꺼내 보임으로써 연기인생 제2막을 열어젖혔다. 두 사람 외에도 영화 속 인물들은 모두 역할에 부응하는 정확한 연기를 보여준다.
어떤 관객은 '강남1970'을 전작들의 '동어반복'이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또 영화적 발전이 없다고 꾸짖을지도 모른다. 물론 그런 측면이 전혀 없는 건 아니다. 때로는 관습적인 장면이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최근 한국영화의 매우 취약한 서사 전개를 고려할 때 유하 감독의 신작이 갖는 가치는 무시할 수 없다. 유하 감독은 연출가 특유의 인장(印章)이 없다는 말을 들어왔다. 이제는 서사 자체가 그의 인장이라고 말해야 한다. 그는 '폭력과 욕망의 3부작'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