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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참 보수주의자의 절절한 당부…영화 '아메리칸 스나이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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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뉴스 김한나 기자] 당신은 어쩌면 '아메리칸 스나이퍼'라는 남성미 넘치는 제목에 끌려 이 영화를 예매할지 모른다. 혹은 '전쟁 영웅의 실화' '최고의 전쟁 영화'라는 홍보 문구에 홀려 말 그대로 전쟁 '액션'을 보기 위해 이 영화의 티켓을 끊을 수도 있다. 어떤 이유로 '아메리칸 스나이퍼'(감독 클린트 이스트우드)를 택하든 아마도 당신은 엔딩크레딧이 올라갈 때쯤 무겁게 가라앉은 마음으로 깊은 생각에 잠겨 극장 문을 나설 것이다.

클린트 이스트우드를 아는 관객이라면 그가 만든 전쟁영화 '이오지마에서 온 편지'(2006)나 '아버지의 깃발'(2007)의 연장선에서 이 영화의 서사를 지레짐작할지도 모른다. 그렇지 않다. '아메리칸 스나이퍼'는 오히려 '그랜 토리노'와 짝을 이룬다. 노장 감독은 '그랜 토리노'로 보여준 세계관을 '아메리칸 스나이퍼'로 확장한다. 그렇다. '아메리칸 스나이퍼'는 전쟁영화가 아니다. 이것은 진짜 보수주의자의 절절한 당부다.

텍사스 카우보이 크리스 카일(브래들리 쿠퍼)은 미국이 이슬람 테러 단체에 공격당하는 모습을 보고 늦은 나이에 입대를 결심한다. 미국 특수부대 네이비실 대원이 된 카일은 뛰어난 사격술을 인정받아 전문 스나이퍼로 이라크에 파병된다. 실전에 투입된 카일은 거침없이 총을 쏴나간다. 네 번의 파병에서 공식적으로 160명, 비공식적으로 255명을 저격한 그는 미국 역사상 가장 치명적인 스나이퍼 '더 레전드(The Legend)'로 불리게 된다.

'아메리칸 스나이퍼'는 분명 전쟁영화로서 재미도 갖추고 있다. 곧 닥칠 위기를 모른 채 전진해야 하는 보병과 멀리서 그들의 위기를 알아채고 미리 적을 사살해야 하는 크리스 카일의 구도에는 극도의 서스펜스가 있다. 서로를 멀리서 바라보며 제거하려는 '스나이퍼 대 스나이퍼'의 구도도 그렇고, 죽은 동료의 복수를 위해 나선 게릴라 부대의 움직임은 그 자체로도 '아메리칸 스나이퍼'가 평범한 영화가 아님을 증명한다.

이상한 점은 이 영화의 전쟁 신에는 폭발할 듯한 긴장감은 있지만, 아드레날린을 내뿜는 승리의 쾌감과 기쁨이 없다. 이스트우드는 크리스 카일의 저격을 멋진 '액션'으로 그리기보다 직업인으로서의 '생활'로 그린다. 군인의 임무는 전쟁에 나서는 것이다. 오히려 영화 속 군인들은 언제나 차분하고 조금은 우울하다. 거장의 손길이 느껴지는 건 이런 부분이다. 관객이 영화를 다 보고 난 뒤 입을 꾹 다문 채 나온다면 이런 이유에서다.

이때 '아메리칸 스나이퍼' 크리스 카일은 치명적인 저격수 '더 레전드'가 아닌 미국 그 자체로 보인다. '그랜 토리노'가 주인공 코왈스키의 개인 소유물인 자동차 기종을 제목으로 했다면, '아메리칸 스나이퍼'는 '미국 저격수'가 제목이다. 여기서 중요한 건 저격수라기보다는 미국이라는 단어다. 이스트우드의 영화에서 제목은 언제나 가장 중요한 정보이자 메시지였다.

크리스 카일은 전쟁영웅이 된 자신의 삶을 즐기는 인물이 아니다. 그가 처음 저격해 죽인 적은 소년이었다. 그는 어느 순간부터 '더 레전드'로 불리며 동료 병사들의 상찬을 받지만, 그의 표정은 어딘가 텅 비어있다. 목숨을 살려줘서 고맙다는 참전용사를 만났을 때도 카일은 당황한 기색을 숨기지 못한다. 애국심으로 똘똘 뭉쳤던 그가 게릴라전에 앞장서고, 적 스나이퍼를 제거할 때의 모습에는 애국심 같은 건 없어 보인다. 그저 그는 카일 자신의 개인적인 일을 '처리'할 뿐이다.

화려한 전공을 세운 카일이 집 안에서 그토록 무기력해 보이는 건 의미심장하다. 이스트우드는 모두가 영웅이라고 말하는 카일을 미국으로 형상화해 이 나라가 2001년 9·11 테러 이후 진행했던 전쟁을 돌아본다. 실제로 미국은 이 전쟁에서 이기지 못했다. 지난한 싸움은 여전히 계속되는 중이고, 미국과 미국민은 이미 피로감을 보이고 있다. 전장 한가운데서 아내에게 전화해 "집으로 돌아가고 싶어"라고 말하는 카일의 대사나, 은퇴한 카일이 전쟁의 여파에서 조금씩 빠져나오자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와서 기뻐"라고 말하는 대목은 그래서 더 의미심장하다.

이스트우드는 다분히 미국적이 캐릭터인 카일을 통해 관객으로부터 천박한 애국심을 고취하거나 정제되지 못한 분노를 끌어내려고 하지 않는다. 그는 오히려 미국의 영웅을 통해 미국을 걱정하고, 세계를 근심한다. '그랜 토리노'가 한 사회의 어른이 보여줘야 하는 책임감을 뼈저린 반성과 희생으로 짚은 작품이라면 '아메리칸 스나이퍼'는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기득권 국가가 갖춰야할 위엄에 관해 이야기한다.

'아메리칸 스나이퍼'가 뛰어난 영화인 이유는 이스트우드가 정치적으로 매우 올바른 가치관을 자신의 작품에 심어놓았기 때문이 아니다. 그보다도 미국이라는 나라가 취했던 행동을 단죄하지 않기 때문이다. 수류탄을 든 어린아이를 저격한 크리스 카일의 눈과 손은 잘라내야 할 더러운 신체인가. 다시는 쓰지 못하게 묶어놔야 할 수치스러운 부분인가. 더 단도직입적으로, 애국심이 나쁜 것인가. 이스트우드는 이 지점을 관객이 고민할 때 서사를 한 단계 도약시킨다.

카일은 PTSD(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겪는 참전용사의 재활을 돕기 위해 사격장에 갔다가 그가 쏜 총에 맞아 사망한다.(이 또한 실제 크리스 카일의 이야기다) 여기까지만 보면 이스트우드는 그들이 취한 행동을 반성만 하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는 마지막 시퀀스를 미국민의 애도 속에 진행된 크리스 카일의 실제 장례식 장면으로 마무리한다. 이스트우드는 미국의 잘못을 미국 스스로 잘라내게 한다. 그리고 그들의 영웅을 성대하게 장사(葬事)지내고, 최대한의 예우를 갖춰 조문(弔問)한다. 늙은 예술가는 이 과정을 통해 과거의 실수와 절연하고 다시 시작하자고 말한다.

이렇게도 깊이 세상을 근심하는 어른이 있다는 것, 이런 예술가가 있다는 건 국적을 떠나 이 영화를 보는 사람들에게 행복한 일일 게다. 그러니 85세가 된 클린트 이스트우드에게 이렇게 말할 수밖에. 다음 작품을 또 기다리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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