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뉴스 김부삼 기자]박근혜 정부의 숨은 실세로 거론되는 정윤회씨가 청와대 핵심 비서관들과 정기적으로 만나면서 국정개입의혹을 담은 ‘정윤회 동향보고서’ 문건유출로 촉발된 이른바 비선(秘線)실세의 ‘국정개입 문건’ 파문이 연말정국 뇌관으로 급부상하고 있다. 청와대 공직윤리비서관실이 지난 1월 작성한 ‘정윤회 동향 보고서’가 언론 보도를 통해 알려지고 이와 관련한 내용 사실 여부, 유출 경로 등을 놓고 진실공방이 벌어지는 등 이번 사태가 연말정국을 더욱 복잡하게 꼬이게 할 가능성이 커 보인다.
여당은 1일 “청와대 내부 문건의 외부 유출은 국기 문란 행위”라며 문건 유출에 방점을 찍은 반면, 야당은 이번 사태를 '정윤회 게이트'로 명명하면서 “비선 실세의 국정농단 실체가 드러난 것”이라며 정치공세를 강화했다.
특히 박근혜 대통령이 이번 사건에 대해 “문건유출은 있을 수 없는 국기문란 행위”라며 검찰의 철저 수사를 지시하는 등 즉각 반응에 나서면서 정치적 파장은 더욱 커질 전망이다. 이번 사태는 자칫 집권 3년차를 맞는 박근혜 정부의 국정운영에 상당한 차질을 야기할 수도 있다는 점에서 정치권 안팎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靑 “있을 수 없는 일 국기문란 행위”…일벌백계 강조
박 대통령은 이날 청와대에서 수석비서관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 “최근에 있을 수도 없고 있어서도 안되는 일이 일어났다”며“이번에 문건을 외부로 유출한 것이 어떤 의도인지 모르지만 결코 있을 수 없는 국기문란 행위”라고 말했다.
박 대통령은 이어“청와대에는 국정과 관련된 여러 사항들 뿐만 아니라 시중에 떠도는 수많은 루머들과 각종 민원들이 많이 들어온다”며 “그러나 그것들이 다 현실에 맞는 것도 아니고 사실이 아닌 것도 많은데 그런 사항들을 기초적인 사실 확인조차 하지 않은 채 내부에서 그대로 외부로 유출한다면 나라가 큰 혼란에 빠지고 사회에 갈등이 일어나게 된다”고 지적했다.
박 대통령은 특히 “조금만 확인해 보면 금방 사실 여부를 알 수 있는 것을 관련자들한테 확인조차 하지 않은 채 비선이니, 숨은 실세가 있는 것 같이 보도를 하면서 의혹이 있는 것 같이 몰아가고 있는 것 자체가 문제”라며 정치공세에 대해서도 비판적 시각을 나타냈다.
아울러 관련 의혹에 대한 철저한 진상조사와 함께 일벌백계를 강조했다. 박 대통령은 “누구든지 부적절한 처신이 확인될 경우에는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일벌백계로 조치할 것”이라며 “또한 악의적인 중상이 있었다면 그 또한 상응하는 책임을 물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與 “정치공세 자제” vs 野 “특검·진상조사 실시”공방
새누리당도 “시시비비는 검찰 수사에 맡기고 정치공세를 자제해야 한다”는 입장을 강조하며 이번 사태의 정치쟁점화 차단에 나섰다.
김무성 대표는 이날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이런 문제는 진실이 뒤늦게 밝혀지더라도 과장된 거짓만 기억하는 경우가 많다”며 “국민적 의혹이 많은 상황에서 검찰은 철저히 수사해서 진실을 가려내고 신속히 매듭을 지어주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이완구 원내대표도 “갈 길 바쁜 저희를 당혹스럽게 만들고 있다”며“검찰이 수사에 착수했고 실체적 진실을 밝히기 위해 모두가 협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야당은 이에 반해 상설특검 및 국정조사 수용 등을 거론하며 총공세를 펴고 있다.
새정치연합은 특히 '비선실세 국정농단 진상조사단'을 본격 가동시키며 새로운 의혹을 제기하는 한편 박 대통령의 '문서유출 국기문란' 발언에 대해 검찰 수사에 가이드라인을 제시한 본질을 호도한 발언이라고 강하게 비판하고 나섰다.
문희상 비상대책위원장은 이날 비상대책위원회의에서 “이전 진상조사 노력에 여야가 따로있을 수 없다”며 “빠른 시간안에 상설특검 1호나 국정조사를 감행할 것을 새누리당에 촉구한다”고 말했다.
우윤근 원내대표는 “만만회(이재만·박지만·정윤회)에서 십상시까지 비선 라인에 의한 국정농단 의혹이 사실로 드러났다”며 “이번 주 중에 반드시 국회 운영위원회를 소집해서 실체를 밝혀야 한다”고 강조했다.
진상조사단 김광진 의원은 이날 브리핑에서 “문서의 하단을 보면 '내가 정윤회 비서실장을 잘 아는데 요즘 정윤회를 ○○하려면 7억원 정도를 준비해야 한다'는 내용으로 읽힌다”며“이 내용을 발언한 모 씨가 누구인지를 가려내는 것이 이 사건의 진실을 밝히는 키”라고 주장했다.
◆내년 정국도 ‘게이트’ 공방만 거듭할 가능성
여야는 12월2일 예산안 처리에 합의해 내년도 예산안 처리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예산국회 이후에는 곧바로 이른바 '정윤회 게이트'가 태풍의 눈으로 정국 이슈의 핵심이 될 것으로 보인다.
공무원연금 개혁 연내처리, 사자방(4대강 자원외교 방산비리) 국정조사와 함께 정윤회 정국이 급부상하면서 연말 정국은 더욱 꼬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문제는 이번 사건에 대해 검찰수사가 신속히 이뤄지더라도 사안의 특성상 사실여부와 관계없이 정치적 논란은 지속될 가능성이 커 보인다는 점이다.
정권의 최고실세와 관련된 특별한 사안인 만큼 상황이 수사를 통해 말끔하게 정리되기가 쉽지 않아보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내년초 정국도 민생과 경제활성화를 위한 논의보다는 여야간 정치공방만 거듭하는 혼란이 계속될 것으로 우려된다.
◆정윤회 “하나라도 잘못있으면 감방가겠다”
한편 청와대에서 유출된 문건에서 ‘비선’(秘線) 실세로 거론된 정윤회씨가 자신과 관련된 의혹을 전면 부인했다.
정씨는 1일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모든 걸 조사하라. 하나라도 잘못이 있으면 감방에 가겠다”고 말했다.
정씨는 “이는 증권가 정보 '찌라시'를 모아놓은 수준”이라며 “이런 문건이 어떻게 작성·보고·유출됐는지 검찰이 진상을 규명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면서 “대통령은 물론 3인 측근 비서관들과는 아무런 연락이 없다”며 “10인이 회동해 국정을 논의하고 내가 인사 등에 개입했다는 것은 완전한 낭설이자 소설”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2007년 대선 때 정치인 박근혜의 10년 비서실장을 그만둔 이래 나는 7년간 야인으로 살고 있다”며 “국정 개입은커녕 청와대 비서관들과는 연락도 끊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통화기록이든 CCTV든 나에 관한 모든 것을 수사하라“며 ”하나라도 잘못이 나오면 감옥에 가겠지만 허위로 밝혀지면 공격자들이 책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야당과 다수 언론이 확인도 없이 헛소문에 휘둘리고 있다”며 “일부에선 박근혜 대통령에게 타격을 입히기 위해 나를 이용한다”고 비난했다.
정씨는 자신이 박 대통령의 동생 박지만 회장에 대한 미행을 지시했다는 시사저널 보도에 대해선 “그런 사실이 없어 시사저널을 고소했으며 허위 사실에 대해선 앞으로 계속 법적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1월6일 공직기강비서관실에서 작성된 것으로 알려진 동향보고서에는 '정씨와 대통령 측근 비서관 3인 등 10명이 회동해 국정을 논했다', '정씨는 김기춘 비서실장 교체설 유포를 지시하기도 했다'는 등의 내용이 들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