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뉴스 김한나 기자] 누구나 꿈을 꾼다. 하지만 아무나 꿈을 이루지는 못한다. 혼자 꿈꾸는 건 쉽다. 하지만 나의 꿈으로 다른 이를 꿈꾸게 하는 건 어렵다. 똑같은 꿈은 없다. 어떤 꿈은 작고 어떤 꿈은 크다. 어떤 이는 누구보다 큰 꿈을 꾼다.
현재 세계 영화계에는 이런 인물이 한 명 있다. 크리스토퍼 놀런(44)이다. 놀런은 기억의 혼돈('메멘토'(2001))으로, 불면의 고통('인썸니아'(2002))을 통해, 잔인한 마술('프레스티지'(2006))로, 영웅의 고뇌('다크나이트'(2008))를 가지고, 꿈 속의 꿈 속의 꿈('인셉션'(2010))으로 자신의 영화적 야망을 채워왔다. 동시에 그 야망으로 관객의 상상력을 확장한다.
그런 그가 이번에 가닿은 곳은 우주다. 우주를 꿈꾸는 게 뭐 그리 대단한 일이냐고 물을지 모른다. 놀런의 우주는 태양계에서 웜홀을 타고 다른 은하계로 간다. 놀런 감독은 웜홀과 또 다른 은하계에서 멈추지 않는다. 블랙홀을 통해 5차원 세계로 간다. 영화 '인터스텔라'다.
'인터스텔라'는 인류의 새로운 터전을 찾기 위해 우주 여행을 떠나는 우주인의 이야기다. 놀런은 극중 '쿠퍼'(매슈 매코너헤이)의 입을 통해 자신 있게 말한다.
"우리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별들 사이에서 우리가 어디쯤 있는지 궁금해하곤 했지. 하지만 요즘 사람들은 아래를 내려다보며 우리가 자리 잡을 땅이 어딘지만 찾고 있어."
크리스토퍼 놀런에게 직접 물었다. 그는 왜 우주를 이야기하는가.
"우주 탐험은 인간이 경험할 수 있는 것 중 가장 극한에 가 있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우주 내에서 인간의 존재란 무엇인지 탐구하려는 시도이기 때문입니다. 소수의 우주 탐험가들이 인류의 한계를 넘어 우주로 나서는데 거기서 드러나는 인간 특유의 본성은 영화 감독으로서 무한한 가능성의 영역이죠."
그는 "태양계가 아닌 다른 차원의 은하계로 모험을 떠나는 탐험가들의 여정을 관객에게 선사할 생각에 기대감이 높았다"며 "당연히 그 무엇보다 방대한 여정이고 엄청난 이야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인터스텔라'는 SF영화다. 현재까지 우주를 다룬 영화 중 가장 정확하고 세밀하게 우주를 묘사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세계적인 천체물리학자 킵 손의 참여가 이를 가능하게 했다. 크리스토퍼 놀런과 함께 각본 작업을 한 동생 조너선 놀런은 영화의 핵심 이론인 '상대성 이론'을 4년간 공부했다.
하지만 우주를 보여주는 게 이 영화의 핵심은 아니다. 놀런은 이 거대한 서사를 통해 가족을 이야기하고, 사랑하는 사람을 지키는 일에 대해 말하고, 인류 최후의 가치가 사랑이라고 말한다.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이 천착한 가족애와 맞닿는 지점이다.
"인간은 죽음을 피할 수 없어요. 그건 확실한 거죠. 그런데 인간이 우주로 나가면 죽음은 지구에서보다 더 확실한 것이 되고 더 중요한 이슈가 됩니다. 이때 질문을 던지는 겁니다. 이 우주에서 우리의 위치가 어디에 있는지에 대해서요. 더 나아가 '우리는 누구인가'에 대한 질문까지 하게 되는 겁니다."
그는 죽음이라는 한계를 시간이라는 변인으로 연결한다. 쿠퍼가 우주여행을 떠나 가장 중요시하는 건 인류의 터전을 확인하고, 가장 이른 시간 내에 다시 지구로 복귀하는 것이다. 쿠퍼는 우주의 시간이 지구의 시간과 다르게 흐르는 냉혹함을 체험한 순간 눈물을 보이고 만다.
영화의 감성이 가족과 사랑, 인간 관계에 있다면 이 영화의 머리는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와 연결된다.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는 세계의 많은 영화감독에게 우주를 꿈꾸게 한 작품이다.
"맞습니다.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에 대한 무의식적인 여러가지 오마주가 있을 겁니다. 쿠퍼와 함께하는 로봇 '타스'와 '케이스'도 그런 것 중 하나입니다."
놀런 감독은 로봇을 "가능한 한 로봇의 기능에 충실한 가장 간단한 모습으로 표현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의 말처럼 '인터스텔라' 속 인공지능 로봇은 매우 단순한 외형을 가진다. 큰 비석같은 형상이다. 비석의 형상을 한 로봇은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에서 영화의 핵심을 설명하는 소도구인 비석에서 따온 것으로 보인다.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은 매번 다른 장르의 영화를 만들지만 그 속에는 공통점이 하나 있다. 바로 주인공이 대부분 아내를 잃거나 여자친구가 죽은 인물이라는 점이다. 크리스토퍼 놀런을 만난 자리에는 그의 아내이자 '인터스텔라'의 제작자인 엠마 토머스가 함께 했다.
놀런은 "그것이 바로 내 영화의 공통 서사"라며 "주인공이 영화 속의 핵심 사건을 반드시 이행하게 하는 동기로 그런 장치를 즐겨 사용한다"고 설명했다. '인터스텔라'에서 쿠퍼는 아내가 죽고 없다.
놀런 영화의 또 다른 특징은 디지털 필름이 아닌 35mm 필름이나 아이맥스 필름을 활용해 촬영된다는 점이다. 이제 필름을 활용한 촬영 방식은 그의 트레이드 마크가 됐다. 그는 "가장 해상도가 좋기 때문에 필름을 사용한다"며 "더 좋은 기술이 나오기 전까지는 이 방식을 고수할 것"이라고 답했다.
영국 출신인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은 런던대학교에서 영문학을 전공했다. 1998년 범죄 스릴러 '미행'으로 데뷔했다. 데뷔작을 통해 서스펜스를 다루는 재능을 보여줬던 놀런은 3년 뒤 내놓은 스릴러 '메멘토'로 할리우드의 가장 촉망받는 감독으로 떠오른다.
'인썸니아'(2002) '프레스티지'(2006) 등으로 감독 생활을 이어가던 놀런은 이후 오락물인 히어로 영화에 철학적 깊이를 담은 것으로 평가받는 '다크 나이트 시리즈'(2005~2012)를 내놓아 단숨에 젊은 거장으로 올라 선다. 2010년 '인셉션'(2010)은 미지의 영역을 개척했다는 평단과 관객의 극찬을 받았다.
6일 국내 개봉한 '인터스텔라'는 10일 오후 1시 현재 210만 관객을 돌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