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뉴스 김승리 기자] 정부의 담뱃세 인상안을 두고 국정감사에서 '건강 증진'이냐, '서민증세'냐에 대한 뜨거운 논쟁을 벌이고 있는 가운데 정부가 주장하는 통계자료가 다소 객관성이 떨어진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최경환 경제부총리까지 나서 "담뱃세 인상은 증세가 아닌 국민 건강을 위한 것"이라고 해명에 나섰지만 정부의 자료가 자의적인 해석이 많아 담뱃세 인상은 결국 서민의 호주머니를 털어 세수를 확보하기 위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나오고 있다.
10일 업계에 따르면 정부는 지난해 국민건강영양조사 결과 한국의 성인 남성 흡연율이 OECD 회원국 중 최고 수준인 43.7%라고 밝혔다. 이를 30% 미만으로 줄이기 위해서는 강력한 금연정책이 필요하다는 게 정부측 주장이다.
하지만 이는 성인 전체 흡연율이 아닌 남성 흡연율만 따로 조사한 수치라 객관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올해 OECD 통계연보(Factbook)에 따르면 우리나라 성인흡연율은 23.2%로 OECD회원국과 브릭스(BRIICS) 6개국을 포함한 전체 40개국 중 14위이다. 이는 OECD 평균수준인 20.9%와 유사하다. 여성흡연율은 5.1%로 세계 최저 수준이다.
정부는 성인 전체흡연율이 아닌 남성흡연율만 집중해 우리나라 흡연율이 세계 최고 수준인 것처럼 발표했다.
또 지난 달 11일 최경환 부총리는 경제관계장관회의에서 청소년 흡연율이 20%를 넘어가는 실정이라며 금연종합대책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해 복지부의 청소년 건강행태조사에 따르면 청소년 흡연율은 2007년 13.3%에서 2013년 9.7%로 낮아져 실제 청소년 흡연율은 매년 감소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복지부 역시 청소년의 첫 흡연시작 연령이 13.5세로 2005년 이래 매년 낮아지는 이유를 '저렴한 담뱃값'이라고 지목했다.
이에 업계 전문가는 "청소년 음주·탈선 연령이 모두 낮아지고 있는 추세 속에 흡연연령이 낮아지는 것은 가격 이외 여러 가지 다른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이라며 "담배 가격이 저렴해서 청소년들이 담배를 쉽게 산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약하다"고 지적했다.
담뱃값과 흡연율과의 상관관계에서도 정부는 흡연율 감소를 위해서는 담배가격 인상이 가장 효과적인 정책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정부는 2004년 담배값을 500원 인상한 후, 성인 남성 흡연율이 12%p, 담배 판매량은 26% 감소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담뱃값과 흡연율과의 상관관계가 반드시 일치하지는 않는다고 보고 있다. 담배 가격 인상에 따라 잠시 흡연율이 줄어들지만 결국 다시 판매량은 회복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2004년 담뱃값 인상 후 담배판매량은 가격인상에 따른 가수요로 2005년 일시적으로 급감했다. 그러나 이후 지속적으로 회복세를 나타냈다. 2003년 담배 판매량은 969억개비였나 2008년에는 949억개비로 2005년부터 점차 회복세를 나타냈다.
일본 후생노동성 발표에서도 일본은 2010년 10월 담뱃세 인상 후 오히려 흡연율이 약 1%p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2010년 11~12월, 전국 성인남녀 1146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인상 전인 2009년 11~12월 당시와 비교해 남성 흡연율은 36.1%에서 37.1%로, 여성 흡연율은 8.3%에서 8.9%로 모두 증가했다.
담뱃세 인상에 따른 세수 증가폭도 여론의 비난을 최소화하기 위해 줄인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정부는 담뱃값 2000원 인상시 담배소비량이 34% 감소하고 담배세수가 약 2조8000억원 증가한다고 발표했다.
반면 새정치민주연합 주승용 의원이 국회예산정책처에 의뢰해 제출 받은 '담배가격 인상에 따른 세수효과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담뱃값을 2000원 인상할 경우 정부의 연간 세수는 5조456억원 증가하는 것으로 예상됐다.
이는 조세재정연구원이 '담배가격대별 담배소비량 변화전망' 연구 결과에서 가격탄력도를 0.425로 가정했기 때문이다. 조세재정연구원은 국내 연구결과 중 매우 높은 가격탄력도를 인용했다.
정부는 가격 요인만으로만 단순 계산해 담배 수요가 종전보다 34% 줄어들 것으로 예상한 반면 국회예산정책처는 가격 요인 외에 소득수준과 중독성 등을 고려한 수요함수 추정을 통해 담배 수요가 20% 감소할 것으로 전망했다.
미국암학회도 지난 7월 발간한 '타바코 아틀라스(Tobacco Atlas)' 보고서를 근거로 한국이 담뱃값을 2000원 인상할 경우, 담배소비는 15~20% 감소, 세수는 약 5조 6000억원 증가할 것으로 추정했다.
무엇보다 담뱃값이 인상되더라도 저소득층의 흡연율은 크게 감소되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국민건강영양조사에 따르면 소득수준 하위 25%의 남성흡연율은 1998년 69.1%에서 2004년 담뱃값을 인상한 이후인 2011년에 53.9%로 15.2%p 감소했다. 반면에 상위 25%의 흡연율은 같은 기간 63%에서 44.1%로 19.3%p 하락했다.
담뱃값 인상에 대한 설문조사 방식에 대한 타당성도 적절치 못했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정부는 담뱃세 인상안 발표 직후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를 응답자의 64.5%가 담뱃값 인상에 찬성하고 흡연자 중 32.3%가 금연의사를 밝혔다고 전했다.
하지만 응답자 중 20%만이 흡연자였으며 흡연자들만 놓고 보면 정부의 담뱃값 인상에 대해 70% 이상이 반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업계 관계자는 "담뱃세 인상을 추진하면서 정부는 '서민증세', '꼼수증세'라는 비판을 회피하기 위해 국민건강 증진이라는 명분을 담보로 잘못된 통계자료를 활용하고 있다"면서 "세금 확보를 위한 불가피한 담뱃세 인상이라는 솔직한 자세로 국민의 동의를 구하는 게 우선"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