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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제보자' 박해일 "역할에 몰입… 다른 건 아무것도 기억 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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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뉴스 김한나 기자] 박해일은 눈을 맞추지 않았다. 창밖을 바라보거나 앞에 놓인 컵만 응시했다. 하나의 질문에 답하기 위해 오래 생각했다. 분명 '집중'하고 있었다. 많은 관객을 홀리고 동시에 섬뜩하게 했던 영화 '살인의 추억'(감독 봉준호) 속 '박현규'의 눈빛, 바로 그 눈빛을 하고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는 최대한 솔직한 답을 하려고 애썼다. 어떤 장면을 촬영할 때가 가장 기억에 남느냐는 상투적인 질문에도 오래 생각했다. "잘 생각나지 않는다" 뻔한 질문에도 준비된 답변을 하지는 않았다.

영화 '제보자'(감독 임순례)에서 그는 '이장환 박사'(이경영)의 거짓말을 파헤치는 시사고발프로그램 PD '윤민철'을 연기했다. 윤민철은 집요하고 끈질기다. 무서운 집중력으로 취재를 강행하고 방송에 성공한다. 이것은 에너지의 문제다. 윤민철이 진실을 국민에게 알릴 수 있었던 것은 스스로 쉽게 무너지지 않도록 지지하던 에너지가 있었기 때문이다. 어쩌면 몰두하는 태도, 그것이 곧 진실일지 모른다.

윤민철의 태도는 흡사 박해일이 연기와 영화를 대하는 태도와 같았다. 박해일의 신인 시절, 그는 멜로 배우의 탄생을 환영하던 대중의 기대를 단번에 저버렸다. 유령 같은 살인 용의자('살인의 추억')를 연기하더니 섹스에 집착해 관계를 망치는 징글징글한 남자('연애의 목적')가 됐다. 때로는 명사수('최종병기 활'), 다시 젊음을 갈망하는 늙은 소설가('은교')가 되기도 했다. 그의 이런 행보는 진실로 다가서려는 윤민철의 노력과 다르지 않다.

"가장 중요했던 것은 역시 제 에너지의 동력을 잃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윤민철이라는 인물 자체가 강한 근성을 가진 인물이었으니까요. 그런 인물을 연기하는 건 쉽지 않죠. 촬영장에서 제 컨디션이 그렇게 연기할 수 없을 때도 있으니까요. 그래서 최대한 집중하려고 했습니다. '제보자'는 사전 설명 없이 본론으로 바로 들어가서 달리는 영화니까요."

영화는 10년 전 대한민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황우석 박사의 줄기세포 논문 조작 사건을 모티브로 했다. 영화가 묘사하는 것처럼 황우석 박사 관련 보도를 한 방송사와 프로그램, 담당 PD는 일부 국민으로부터 거센 항의를 받았다. '제보자'에서 윤민철은 동료 PD에게 묻는다. "진실과 국익 중 뭐가 중요해?"

박해일에게도 이 질문은 중요했다. 윤민철은 "진실이 곧 국익"이라고 믿는 인물이다. 아무리 연기이지만 '제보자'를 가장 간단히 정리하는 이 말에 수긍하지 못하면 그가 앞서 말했던 에너지는 동력을 잃는다. 박해일은 이 대사에 대해 "촬영 전 가장 고민을 많이 했던 대사"라고 말했다.

"화두를 던지는 대사입니다. 동시에 이 영화의 메시지이기도 하죠. 여기에 공감하지 않으면 제 캐릭터를 진행하기 힘들다고 봤어요. 10년 전이니까 저도 그 사건을 기억하고, 어떤 파문을 불러왔는지 생각이 나요. 참 당황스러웠죠. 그런데 그렇게 기억을 더듬어 가고 또 이 사건에 대해 공부를 해보니까 답이 나오더라고요."

정리가 되자 몰입이 됐다. 그는 "쉴 이유가 없었다"고 했다. "영화에 윤민철의 사적인 영역이 전혀 나오지 않는다. 오히려 그런 부분이 내 에너지를 한곳에 모으는 데 도움이 됐다. 쉬지 않고 여유 없이 집중했기 때문에 촬영 중에 특별한 기억이 없는지도 모르겠다."

'제보자'에서 윤민철은 "모든 걸 걸고 여기까지 왔다"고 말한다. 윤민철에게 진실은 그만큼 중요한 것이었다. 그렇다면 묻고 싶었다. 다른 사람의 삶을 사는 연기자에게도 진실이라는 것이 존재할까. 연기에 진실이 있기는 한 것일까. 있다면 박해일은 그 진실에 얼마만큼 다가갔을까. 그는 다시 한 번 생각에 잠기더니 "쉽지 않죠"라며 입을 뗐다.

"쉽지 않습니다. 굉장히 일차원적인 이야기로 들릴 텐데요. 매 순간 진실하게 연기하고 싶어요. 그런데 그게 참 잘 안돼요. 운이 안 좋을 수도 있죠. 능력 자체가 안 될 수도 있어요. 그렇다고 해도 도를 닦는 것처럼 하는 건 또 아니란 말이죠. 다만 제 연기의 진실을 드러낼 수 있는 호흡을 가져가고 싶다는 바람뿐입니다."

그는 '진실을 드러낼 수 있는 호흡'을 "나이와 고민"이라고 설명했다. "경험이 필요한 과정이고 그 경험들 속에서 고민을 통해 드러나는 결과물이 진실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것이 연기의 깊이와 넓이가 아니겠느냐"고 반문하기도 했다.

박해일에게 진실한 연기는 "관객과 함께 만들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끊임없이 관객과 대화하는 것이 중요하다. 영화는 대화의 수단이다."

'제보자'는 박해일과 임순례 감독의 재회로도 주목받았다. 박해일은 2001년 임순례 감독의 영화 '와이키키 브라더스'로 영화계에 데뷔했다.

"그때는 초등학생이었죠.(웃음) 지금은 대학생이라고 할까요. 지난 13년 동안 저나 임 감독님이나 각자 필모그래피를 쌓으며 자기 자신을 구축했어요. 그런 것들이 10년이 넘게 지나 어떻게 교감할지 궁금했습니다. '저 이렇게 잘 컸습니다'하고 검사를 받고 싶은 마음도 있었고요. 감독님과의 작업은 매우 즐거웠어요."

박해일은 모든 질문에 신중히 답했지만, 딱 한 가지 질문에는 고민 없이 말했다. 어떤 연기를 하고 싶으냐는 것이었다. 그는 "난 사람들이 어떻게 살았는지 궁금하다"며 "결국 내가 맡은 캐릭터가 사회 구성원과 이야기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했다. "사람 냄새 나는 연기겠죠. 결국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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