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뉴스 박철호 기자] "우승해야죠. (조훈현 사범님이야 워낙 잘하시니)저만 잘하면 우승할 수 있을 겁니다."
'2014 국수산맥 국제바둑대회’의 부속행사인 '국제 페어바둑대회'는 한국의 조훈현(61) 9단을 비롯해 타이완의 린하이펑(林海峰·72) 9단, 일본의 다케미야 마사키(武宮正樹·63) 9단, 중국의 차오다위안(曹大元·52) 9단 등 동북아 4개국의 바둑 고수와 자국의 신예 미녀기사가 짝을 이뤄 총 3라운드 풀리그를 펼치는 대회로 메인행사인 '한·중 단체바둑 대항전' 못잖게 관심이 모어지고 있다.
이 대회에 조훈현 9단과 호흡을 맞추는 영예를 안게 된 국내 여자 기사가 바로 오정아(21) 2단이다.
8일 전남 영암 호텔현대에서 열린 대회 개막식 직후 만난 오정아 2단은 아직도 자신이 그 '헤로인'이 됐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는 눈치다.
"제가 대회에 출전하게 됐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는 정말 기뻤어요. 조훈현 사범님은 한국 바둑의 전설적인 존재이시잖아요. 그런 분과 파트너라니요. 게다가 함께 겨루는 중국, 일본, 타이완의 선생님들도 모두 정말 대단한 분들이시구요. 그런 분들과 함께 앉는다는 것만으로도 설레는데 전설과 한 편이 돼서 다른 전설들과 겨루다는 것은…."
지난 7월 초 조훈현 9단의 페어대회 파트너로 낙점됐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기쁨은 잠시였고, 엄청난 부담감이 엄습했다. 그런 부담감은 한 달이 지난 지금도 마찬가지다.
"사범님께 제가 감히 누를 끼치는 것은 아니길 바래요. 특히 이번 대회가 사범님의 고향에서 국수이신 사범님을 기념하기 위해 창설돼 열리는 첫 대회인 만큼 더욱 좋은 성과를 거둬야 하는데요. 잘할 수 있겠죠?"
'2014 국수산맥 국제바둑대회'는 조훈현(영암) 9단을 비롯해 김인(강진), 이세돌(신안) 9단 등 대한민국 국수(國手) 3인을 낳은 '국수의 고향' 전라남도와 강진군·영암군·신안군이 공동주최하고 재단법인 한국기원이 주관하는 대회로 올해가 첫 대회다.
파트너 조훈현 9단은 오정아 2단에게 어떤 존재일까.
"태산 같은 분, 저로서는 감히 범접할 수 없는 분이시죠."
오정아 기사가 조훈현 9단과 페어를 이룬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사실 사범님을 직접 뵌 적도 많지 않죠. 뵈어도 인사만 드리고 먼 발치에 있었을 뿐이죠. 오늘 개막식 내내 사범님께서 옆에 계시니 얼어버리게 되더라구요. 하지만 용기를 내서 사범님께 '못 둔다고 꾸중을 들을 같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고 말씀을 드렸어요. 사범님께서 따뜻하게 격려해주시고 용기를 주시더군요. 덕분에 자신감을 찾을 수 있었답니다."
이번 페어 바둑의 경쟁자들은 하나 같이 미녀들이다. 타이완의 헤이자자(黑嘉嘉·20) 6단은 호주인 아버지와 타이완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동서양의 아름다움을 모두 갖췄다. '이세돌-구리 10번기' 등을 후원하는 중국 가구회사 헝캉(恒康)그룹의 홍보대사를 맡는 등 타이완과 중국에서 CF 모델과 뮤직비디오 배우로도 인기 높다. 만나미 나오(萬波奈穗·29) 3단은 일본의 소문난 미녀 자매기사 중 동생이다. NHK의 바둑 프로그럄을 진행하고 있다. 중국의 장웨란(張越然·23) 초단도 미녀기사들이 즐비한 중국에서 CCTV 바둑 해설을 진행할 정도로 미모를 인정 받고 있다.
오정아 기사도 이에 못잖은 출중한 미모의 소유자다. 바둑TV가 지난 4월 국내에서도 인기 높은 헤이자자 6단을 출연시킨 특집 프로그램을 만들면서 '4월 이야기'라는 이벤트 대국을 열 때 상대로 낙점했을 정도다.
미모가 오정아 2단의 이번 대회 출전에도 큰 영향을 끼쳤을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는 이유다.
실제로 국내 바둑계 인사들 중 상당수는 오정아 2단의 미모를 첫 손에 꼽으며, 당구의 차유람(27)·클라이밍의 김자인(26)·인라인스케이트의 궉채이(27)처럼 젊은 층 사이에 바둑이 인기를 다시 일으키는 데 오정아가 큰 역할을 해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정작 오정아 2단은 "에이, 미모는요…"라고 손사래를 친다. "바둑계에 예쁜 언니들이 얼마나 많은데요. 그냥 제가 잘 웃고 표정이 밝아서 좋아해주시는 분들이 많을 뿐이죠"라고 자신을 낮춘다.
오정아 2단이 미모에 대한 칭찬을 그리 반기지 않는 이유는 따로 있다. 실력으로 먼저 인정을 받고 싶다는 욕심이다.
"이번 대회에 제가 한국 대표로 뽑힌 것이 외모 때문이 아니라 '오정아가 바둑을 제일 잘 둬서 뽑혔구나'라는 얘기를 듣고 싶네요. 예쁘다는 얘기를 들으면 겉으로는 웃지만 속으로는 씁쓸하죠. 호호호."
사실 오정아 2단은 실력만으로 뽑힌 것이라고 자부해도 될 정도의 떠오르는 신예다.
제주 성산 출신으로 초등학교 때 제주도에서 열린 바둑대회에서 장수영(62) 9단의 눈에 띄어 문하에 들었다. 2011년 한국기원에 입단했으며, 지난해 2단으로 승단했다. 현재까지 총전적(공식기전 기준)은 78승77패다. 그러나 지난해 23승18패를 거둔 데 이어 올해 7월까지 19승13패의 상승세를 달리고 있다. 올해 성적은 비공식 기전까지 합치면 23승15패를 기록 중이다.
특히 페어 바둑에서 강한 면모를 보였다. 2012년 제2회 SG배 페어바둑최강전에서 조한승(32) 9단과 나서 준우승에 머문 뒤 지난해 제3회 SG배 페어바둑최강전에서 진시영(25) 6단과 함께 출전해 기어이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2013 인천 실내무도 아시안게임에서는 여자단체전 은메달과 함께 강승민(20) 3단과 짝을 이뤄 혼성페어 동메달을 차지했다.
"페어의 국내 1인자네요"라고 치켜세우자 바로 고개를 가로젓는다. "아니에요. 페어는 저 혼자 하는 것이 아니라서요. 파트너를 잘 만났던 덕이죠."
"페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파트너와의 호흡"이라는 오정아 2단은 "사범님께서는 엷어도 발 빠르게 집을 챙기시는 스타일인 반면 저는 느리지만 두텁게 힘을 비축했다 뒤에 한 방을 노리는 스타일이에요. 이처럼 기풍은 전혀 다르지만 싸움바둑을 즐긴다는 점은 같죠. 저는 감히 사범님께 맞춰드릴 기력이 못되니 사범님께서 제게 잘 맞춰주시길 바라면서 열심히 제 갈 길을 가려고 합니다"고 대선배 조훈현 9단에 대한 존경과 신뢰를 드러냈다.
한국기원 양재호(51·9단) 사무총장은 "페어 바둑에서 두 사람의 기풍이 전혀 다른 것은 긍정적일 수도 있고, 부정적일 수도 있다"면서 "오정아 2단은 그 동안 여러 페어바둑 대회에서 파트너를 편안하게 뒷받침해줘 좋은 성적을 견인했다. 이번 대회에서도 조훈현 9단을 잘 보필해 좋은 성적을 거둘 것이다"고 기대했다.
오정아 2단은 입단 이후 아직 무관에 그치고 있다. 그 자신도 못내 속상해 하고 있는 점이다.
"이번 페어대회가 반전의 계기가 됐으면 해요. 그래서 제16기 여류명인전에서 우승해 생애 첫 타이틀을 따내고 한국 최고의 여자 기사가 되고 싶어요. 그런다면 제가 훗날 이렇게 영광스런 자리에 또 나설 때 다들 '오정아는 얼굴은 별로인데 실력이 최고라서 뽑혔다'고들 얘기하시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