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뉴스 김한나 기자] 서울 마포구 서교동 대안공안 루프가 ‘스페인 비디오 아트의 언어와 미학: 10년간의 주요 실천들’이란 제목으로 스페인 비디오 아트 전시를 열고 있다. 스페인의 아시아·태평양 지역 교류재단 까사 아시아(CASA ASIA)와 스페인 비디오 아트 배급 기관 하마카(HAMACA)의 협력으로 마련된 전시회다.
전시장에는 스페인 현대미술사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진 26점의 비디오 영상작품을 설치했다.
작품 가운데 에우제니오 암푸디아는 까사 아시아의 영상 아카이브 소장 흑백필름 이미지들을 빌려 스페인 역사의 한 단면을 다루는 ‘진실은 구실에 불과하다’(The truth is an excuse)란 작품을 냈다. 스페인 내전(1936~1939) 시기에 나라를 떠나야 했던 사람들의 비극을 전하기 위해 국경을 향해 피란길에 오르는 상황에서 긴 행렬을 둘러싼 사건들을 추측할 수 있도록 교묘하게 서술한 작품이다.
작가는 원본 영상을 거꾸로 돌려 보여준다. 스페인 내전 난민들이 전진하지 못하고 제자리로 되돌아오게 해 결국 본국으로 송환시키는 방식을 썼다. 드러나지 않은 부분의 의미를 오히려 더 강화하면서 단순한 작가적 개입으로도 이미지의 의미가 어떻게 변용될 수 있는지 보여준다.
TV 퍼포먼스 작업인 안토니 문타다스의 ‘번역에 관하여: 두려움’(On Translation: Fear: Miedo)도 주목된다. 멕시코와 미국 사이 국경의 일상적인 긴장감을 몸소 경험하는 사람들의 인터뷰를 담아 관련된 4개의 도시, 티화나, 샌 디에이고, 멕시코 시티, 워싱턴 DC에서의 방송을 목적으로 제작됐다. 영상은 인터뷰뿐만 아니라 국경지대에 감도는 긴장과 공포를 다룬 TV아카이브와 여러 다큐멘터리, 언론 정보들로부터 취합한 자료로 구성됐다. 두려움이 우리의 안전과 생활 감각을 뒤흔드는 느낌과 감정을 어떻게 전이시키는지 보여준다.
조셉 마르틴은 ‘메이드 인 칠레’(Made in Chile)를 통해 그와 함께 작업하고 싶어 했던 건축가들과 칠레에서 진행한 집짓기 프로젝트의 과정을 보여준다. 그의 작업은 주로 운명과 역사를 바꿀 가능성을 보여주기 위해 통합된 구조를 와해하는 새로운 전략에 초점을 맞춘다. 최근 몇 년 간 정부의 무관심 속에 방치된 사람들에 대한 문제를 다뤄오고 있다. 칠레 북서부의 아타카마 사막에서 벌인 프로젝트는 이러한 사회적 예술 실천의 연장선에 놓여 있다.
칼스 콩고스트의 ‘확고한 신비’(A determined mystique)도 눈에 띈다. 그룹 ‘아스트루드’가 연주한 곡들로 구성된 짧은 록오페라다. 처음부터 무대는 실존적 문제들을 다루지만, 유머러스함을 잃지 않는 뮤지컬 형식을 도입한 작품이다. 어느 날 갑자기 어딘가 묘한 예술에 영감을 받고 아티스트가 되고 싶어 하는 축구선수의 사연과 주변인물들의 증언들로 이뤄졌다. 작품의 구성은 일반 대중이 현대 예술가들에 대해 품은 인식을 보여준다.
주인공은 그가 겪는 것이 동시대 신비의 실체라고 여기고 새로운 인생을 살기 위해 축구를 그만두기로 한다. 이 비디오 작업은 사회에 만연한 예술과 예술가들에 대한 기존의 클리셰를 탐구하고 그에 관한 비평을 담고 있다. 아울러 예술의 컨텍스트 안에서 작용하는 서열관계와 여러 이데올로기를 반영한다.
이외에 드로잉을 이용해 독특한 상상의 세계를 구현한 하비에르 페냐피엘의 ‘동일한 도시 문제에 대한 어려운 답변들’(The hard answers of the same question of a zity), 사실과 허구를 정교하게 조합한 알베르트 메리노의 ‘암탉의 비행’(The Flight of the Hen), 특유의 유머러스함과 독특한 표현방식에도 진지함과 비평적 시각을 견지하는 하우메 피타르치의 ‘팝콘 포격 속 침략군’(Invading Forces under Fire of Bombcorn) 등을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