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뉴스 김한나 기자] "묶인 것에서 너 자신을 자유롭게 하는 것. 멀리 있지 않아요. 끝없이 바람과 후회가 밀려와도 추락하면서 날아오르는 새처럼. 고 포워드."(루시아 '데미안' 중)
작가 고종석(55)의 "노래는 시의 오래된 미래"라는 말을 싱어송라이터 루시아(28·심규선)에게 되돌려주면, "노래는 문학의 새로운 과거"다.
22일 앨범유통사 파스텔뮤직을 통해 정규 2집 '라이트 & 셰이드(Light & Shade) 챕터1'을 발매한 루시아는 '문학 아가씨'다.
이번 앨범 더블 타이틀곡 중 하나인 '데미안'이 독일 작가 헤르만 헤세(1877~1962)의 동명 소설 주인공을 모티브 삼은 것에서 보듯 그녀는 노래로 문학을 한다. 고전(과거의 문학)으로 이 시대를 새롭게 노래하는 셈이다.
총 8곡이 실린 이번 앨범의 수록곡들도 문학을 직접적으로 모티브 삼지 않았지만, 충분한 자양분이다.
데미안과 함께 더블 타이틀곡으로 내세운 곡으로 소중한 존재의 상실로 인한 깨달음을 노래한 '비 마인(Be Mine)'을 비롯해 스스로를 향한 확고한 믿음을 노래한 '후(Who)', 꿈과 희망을 향한 인생의 긍정적 의미들을 담은 드림팝 풍의 '해야할 일' 등은 문학으로 옮겨져도 어색하지 않다.
목소리의 변화가 드라마틱한 '한 사람'·섹시한 보컬이 매력적인 '누아르'·청순한 느낌의 '표정' 같은 곡에는 그 동안 사랑이라는 감정을 토대로 섬세한 감성을 문학적인 화법으로 노래한 루시아의 인장이 찍혀있다.
'라이트 & 셰이드'에서는 그러나 무엇보다 그간 여성 화자가 주축이 됐다는 인상이 짙은 루시아가 스스로를 가둔 벽을 깨트리고자 한 시도가 눈길을 끈다. 자신의 얘기를 더 녹여냈다. 이전 노래들이 화려한 수사로 가득한 신인 작가의 패기였다면, 이번 노래들은 할말들만 담은 담백함이 돋보인다.
"이전 앨범에도 자전적인 경험, 경험론적 성향이 항상 짙게 깔려 있었어요. 그런데 이번 앨범에서 그런 부분이 좀 더 자연스럽고 익숙하게 표현이 된 것 같아요."
전작들에 비해 은유와 비유를 거둬내고 직접적인 이야기를 한 점 때문이다. "예전에는 꽃과 계절 같이 시적인 은유와 비유를 많이 썼어요. 그런데 이제는 그런 걸 배제하고 눈과 눈을 맞대는 화법으로 노래하려고 했죠."
화려한 무대 위의 모습을 '빛'(Light)이라고 한다면, 그 아래에서 창작자로서 감내해야 하는 고통의 시간들은 '그림자'(Shade)다. 이를 표현한 것이 이번 앨범 타이틀이다.
"작년 10~11월 스페인의 산티아고 순례길을 다녀왔어요. 제가 처음으로 (사랑하는 사람과) 사별을 겪었는데 그에 대해 생각하면서 매일매일을 걸었죠. 그렇게 죽음에 대해 고민하다 보니 오히려 역설적으로 반대의 삶에 대해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삶과 죽음이 반대가 아니라 인생에 공존하고 있고, 한몸에 깃들어있다는 걸 깨달게 됐죠. 우리가 양극적인 논리로 바라보는 것들이 사실은 극과 극이 아니라 공존일 수 있다는 걸 말이에요. 그런 생각을 음악으로 책임져야할 것 같은 책임감이 들었어요."
'데미안'은 동명 소설 속 주인공인 '에밀 싱클레어'의 그런 부분을 형상화해서 노래한 곡이다. 오로지 내면으로 파고드는 싱클레어처럼 "사실은 하나인 옮고 그름, 선과 악에 대해 고민하며" 노래했다. 결국 노래의 메시지는 '고 포워드(g forward)' 살아있는 동안은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뜻을 담고자 했어요"라며 눈을 빛냈다. "국가적 트라우마로 남게 될 참사(세월호 침몰)도 있었고, 그 뿐만 아니라 세상에는 말도 안 되는 일이 있잖아요. 그럼에도 책무를 가지고 자신이 해야할 일이 있죠. 제게는 그게 음악이고요."
오프라인 앨범에만 8번째 트랙에 실린 '실버 & 골드'는 뮤지션으로서 그녀가 할 수 있는 또 다른 '선물' 같은 곡이다. '피겨 여왕' 김연아(24) 헌정곡으로 모든 국민이 분노한 2014 소치 동계올림픽이 끝난 직후 만들어 인터넷에 무료로 공개했던 노래다.
"분노와 억울함에 대한 애잔함을 팬심으로 노래한 곡이에요. 김연아 선수를 이슈 삼았다는 오해를 받고 싶지 않아 무료로 헌정했던 곡이죠. 이번에도 수익을 원치 않아서 음원으로 공개하지 않았어요. 앨범에 실을 때 처음 믹스와 마스터링이 된 날것 그대로죠."
이번 앨범에는 '챕터1'이라는 부제가 붙었다. 10월 중 '라이트 & 셰이드' '챕터2'를 발표할 계획이다. 특별한 이유가 있다기보다는 "하고 싶은 이야기가 남아서" 2장으로 나눴다.
챕터2를 내놓을 즈음, 스페인에 다녀온 이야기를 책으로도 펴낼 계획이다. "연예인이 그냥 내는 책으로 보여지는 것이 싫어서 에세이 형식으로 쓰지 않을 계획이에요. 픽션으로 화자가 제가 아닌 남성으로 내세워요"라고 귀띔했다.
자전적인 앨범을 발매한만큼 자신을 더 잘 알게 됐을까? "많이 성장했다는 느낌이 들어요. 그 이유가 무엇일까 생각해봤는데 허울이 없는 음반이라서 그런 듯해요. 만드는 과정에서 제가 대단히 예쁘지 않아도, 방송에 출연하지 않아도, 대단히 스타일리시하지 않아도…. 특히 허점이 많은 인간이더라도 팬들이 저 자체를 좋아해준다고 느꼈어요. 응원을 보내준 덕택에 조금 더 저에 가까운 걸 알게 됐고 노래를 하게 됐죠."
영국 소설가 버지니아 울프(1882~1941)가 어느 편지에서 적은 "글로 쓰기 전에는 일어난 일이 아니다"라는 걸 되새기며 살아가고 있다. "저는 한 때 제가 표현이 넘치는 아티스트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안으로만 생각하고 아무것도 표현하지 않으면 결국 아티스트 자격이 없다는 걸 깨달았죠. 지금은 제가 노래하고 표현하는 것들이 복잡하더라도 언제가는 단순하게 정리될 거라 믿어요. 그 과정에는 많은 고민과 생각이 있겠죠. 호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