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뉴스 송경호기자] "연습을 하니까 살짝 후회가 되더라고요. (연극에 출연한 지) 6년이 지났는데, 큰애 낳고 까먹다가 둘째를 또 낳는 느낌이라고 할까요. 호호호."
드라마 '야왕'과 '왕관을 쓰려는 자, 그 무게를 견뎌라-상속자들' 등에서 세련된 외모와 연기력으로 주가를 높이며 제2의 전성기를 누리고 있는 탤런트 김성령(47)이 '미스 프랑스'로 6년 만에 연극에 출연한다.
김성령은 2일 "연습이 너무 중요하다는 걸 느낀다"면서 "연극을 택한 이유는 내 자신과 싸움을 다시 한번 해보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김성령은 2005년 '아트'로 연극에 데뷔했다. 2008년 연극 '멜로드라마' 출연 이후 연극에 나오는 건 '미스 프랑스'가 처음이다. "연극에 처음 출연할 때 이끌림 같은 것이 있었어요. 연극은 시간이 난다고 해서 할 수 있는 는 것이 아니에요. 내 마음 속 깊숙이 하고자하는 뜻이 있을 때 하는 것 같아요. 그런 그리움이 드라마에 출연하면서도 은연 중에 늘 있었어요."
연기력 향상을 위해 연극을 택하는 것은 아니다. "관객들 바로 앞에서 생생하게 연기를 하면서 그동안 제가 영화나 드라마에서 겪은 한계점을 뛰어넘는 훈련을 하고 싶어요"라는 마음이다. "많은 관객들이 저희 에너지에 만족하고 갈 수 있도록 노력하고 싶어요."
'아트' 출연 당시 대사를 잊어먹은 기억도 떠올렸다. "이건 말하면 정말 안 되는데 '아트' 도중 대사를 중간에 까먹은 적이 있어요. 하릴없이 관객들을 조용히 쳐다봤는데, 좀 있다 상황을 알고 박수를 쳐주시더라고요. 박 수 소리에 대사가 다시 생각나더라고요. 우리 연극이 옷 갈아 입는 신이 많아요. (제작자) 조재현씨가 연극이 대박나려면 옷을 갈아 입을 때, 입지 못한 채 나가야 대박이 난다는 농담도 하셨는데 그런 일은 없을 거예요."
'미스 프랑스'는 미스프랑스를 선발하면서 벌어디는 일을 그린 코미디극으로 원제는 '둘보다는 셋이 좋다'(JAMAIS 2 SANS 3)다. 지난해 프랑스에서 초연했다. 700석 규모의 극장에서 3개월 공연했는데 전석 매진됐다.
김성령은 이번에 한국에서 첫 선을 보이는 이 연극에서 1인3역을 한다. 미스프랑스 선발대회 조직위원장 '플레르', 그녀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닮은 호텔 종업원 '마르틴', 그리고 플레르의 쌍둥이 여동생 '사만다'를 한 무대에서 소화한다. 무엇보다 1988년 미스코리아 진 출신인 그녀가 미스프랑스를 다룬 작품에 출연하는 점도 눈길을 끈다.
3역이 무대에서 좌충우돌하는 작품으로 "정말 좋은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것 같아서 선택을 했다"고 말했다. "망가지는 것을 표현해야 하는데 너무 어렵더라고요. 코미디가 이렇게 어렸웠는지 몰랐어요. 해야할 것, 준비할 것이 많아서 하루 10시간씩 연습하고 있어요. TV에서는 할 수 없는 것을 하려고요. 망가져도 최대한 멋지게 망가지고 싶어요."
'상속자들'에서도 허당의 모습을 보여준 김성령은 그런 연기가 너무 어렵다. 황재헌 연출은 그러나 좌충우돌하고 깜빡 잊는 '미스 프랑스' 속 인물들이 김성령 본 모습 같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달라요. 달라"라고 연거푸 손을 내저은 김성령은 "드라마 '추적자'와 '야왕'에서 똑같이 돈 많은 역을 했는데 그 때도 분명히 달랐죠. '상속자들'에서 (코믹한) 모습과 '미스 프랑스'에서의 코믹한 모습이 다르다는 걸 느끼실 수 있을 것"이라며 눈을 빛냈다.
스트립댄서 출신 입이 거친 사만다 역시 김성령과 잘 어울린다고 황 연출은 봤다. 김성령은 "개인적으로 욕을 굉장히 싫어해요"라며 웃었다. "이 캐릭터를 통해 쾌감을 느끼기보다는 내가 얼마만큼 자연스럽게 연기할 수 있느냐가 관건 같다"고 여겼다.
김성령이 대세라는 사실을 입증하는 실례 중 하나는 지난달 30일 그녀가 출연한 영화 '역린'과 '표적'이 동시 개봉한 점이다. 더구나 이 영화는 개봉 당일 박스오피스 1, 2위를 차지했다.
"'역린'과 '표적'은 원래 같은 날 개봉이 아니었어요. 근데 '표적'에 문제가 발생하면서 촬영이 늦어졌고, 개봉도 같은 날에 하게 됐죠. 조금 무안하기도 해요. 양쪽의 눈치를 보고, 인터뷰도 어떻게 해야할지 고민이 되죠. 두 작품 중 어떤 작품이 잘 됐으면 하느냐는 짓궂은 질문을 하는 분들도 있고요. 두 영화에서 주인공은 아니지만, 기쁘고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어요."
'표적'은 또 14일 개막하는 '제67회 칸 영화제' 비경쟁 부문인 '미드나잇 스크리닝'에 초청되기도 했다. "칸 초청은 좋은 일이기는 한데 (참석하려면, 연극하는) 다른 배우들과 연출가에게 미안함이 있죠. 그래도 우리나라 영화가 칸에 가는 일이라 흔쾌히 양해를 해주시더라고요. 잠깐 다녀오는 것으로 마무리지었습니다."
50을 바라보면서도 수려한 외모를 유지하며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그녀는 젊은 여성들의 새로운 '워너비'로 떠올랐다. "이미숙 선배님도 그렇고 김희애씨도 그렇고 활발하게 활동하고 계시죠. 나이가 들어도 일을 하는 모습을 보면서, 희망을 갖게 돼 좋아해주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에요."
한국에서 연기하며 살아가기 힘든 40대 여배우임에도 "힘든 줄을 모르겠다"고 할 정도로 잘 나가고 있다. "시대를 잘 타고났다는 생각이 들어요. 20대 때 열심히 안 했더니 30대 때 잘 안 되더라고요. 30대 후반쯤부터 열심히 해서 지금의 제가 있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어요."
특별한 계산 없이 하루하루 살았다. "제2의 전성기가 뒤늦게 찾아온 것이 어떠냐는 물음을 요즘 많이 받는데 저는 그냥 똑같은 일상이었거든요. 돌이켜 보면, 나름 열심히 했구나라는 생각이 들긴 하는데 앞으로도 또 다른 모습을 보이며 열심히 노력하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
'미스프랑스'는 40대 여배우들의 매력이 만개된 작품으로 기대를 모은다. "대본의 마지막에 '아름다움은 박제돼 있으면 안 된다, 살아 있어야 한다'는 대사가 있어요. 대본을 접으면서 이 한 줄이 마음에 와 닿았어요. 아름다운은 박제가 아니라 피어나고, 실천하고, 행동하고 보여줘야 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김성령과 같은 역에 캐스팅된 연극계의 내로라하는 배우 이지하(44)는 "언니와 더블캐스팅됐다는 이야기를 맨 처음에 들었을 때 '지금 잘 나가는데 왜 연극을 한대'라고 물었어요"라고 털어놓았다. "같이 연습하면서 열정이 있고, 용기를 잃지 않는 도전적인 배우구나라는 걸 느꼈죠. 그러면서 저도 용기를 내고 있어요. 저는 원래 연극을 하는 사람인데 못한다고 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도 들고. 언니를 보면서 많은 것을 배우고 있죠. 특히, 나이 먹어가는 여배우의 멋진 모습을 배우고 있어요."
'썸걸즈' '그와 그녀의 목요일'로 인정받은 황 연출은 "두 분의 출중한 외모와 연기력을 믿고 캐스팅 제의를 했죠. 인물들이 많이 망가지고 엉뚱하거든요"라면서 "그런데 자신의 영역에서 톱인 두 배우가 원래부터 망가진 분들이구나라는 생각이 연습 내내 들었어요"라고 웃겼다. 두 배우의 차이점에 대해서는 "이지하는 돌직구 같은 힘, 김성령은 섬세함이 장점"이라고 짚었다.
두 배우가 1인3역을 맡은만큼 빠른 호흡과 순발력이 필요한데 "여러 공간에 출입구를 만들어서 배우들이 상황에 맞게 등퇴장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면서 "속도감과 리듬감으로 극을 이끌어가려고요. 두 배우가 수많은 의상과 헤어를 변화시키려면 상당한 노동이 필요해요. 김성령, 이지하 두 거물이 바로 앞에서 땀을 흘리며 애쓰는 자체에서 페이소스를 느끼실 수 있을 거예요"라고 귀띔했다.
세월호 침몰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황 연출은 "코미디 작품이라 의도한 바는 아지만, 이런 시국에 대상 없는 죄송스러움이 있다"면서 "이것을 잊지 않고 기억하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 배우들도 다 힘들어했는데 저희 일이기 때문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말했다.
'미스 프랑스'는 탤런트 조재현이 대표인 수현재컴퍼니의 첫 제작공연이다. 15일부터 7월13일까지 서울 대학로 DCF 대명문화공장 수현재시어터에서 볼 수 있다. 연극배우 노진원, 김하라, 안병식 등이 출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