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뉴스 이상미 기자] “'라 트라비아타'는 나를 겁나게 만들었던 작품이다. 왜냐하면 폭력적인 작품이고 끔찍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국립오페라단이 8년 만에 무대에 올리는 주세페 베르디(1813~1901)의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를 연출하는 프랑스 연출가 아흐노 베르나르(48)는 10일 “어느 순간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큰 폭력성이 보여지는 작품”이라고 소개했다.
“관객들은 무대가 화려한 것만 인식하고 작품의 내용에 대해서 간과하는 경향이 있다. 사실, 병든 매춘부의 이야기다. 베르나르의 '라트라비아타'를 만들고 싶은 것이 아니라 베르디의 '라트라비아타'를 보여주고 싶다. 이번 '라트라비아트'로 베르디의 메시지를 전하려고 한다”
'라트라비아타'는 알렉상드르 뒤마 2세(1824~1895)의 소설 '동백꽃 여인'이 토대다. 파리 사교계의 프리 마돈나 마리 듀프레시라는 실제 여성을 모델로 했다. 우리나라와 일본에서는 '춘희'로 번역됐다.
한 달의 25일은 흰 동백, 나머지 5일은 붉은 동백을 가슴에 꽂고 밤마다 파리의 5대 극장 특별석에 나타나는 고급 창녀 '마그리트'와 귀족청년 '아르망'의 비극적인 사랑을 그렸다. 이를 옮긴 오페라 '라트라비아타' 제목의 뜻은 '길을 벗어난 타락한 여인'이다. 비올레타(소설에서는 마그리트)를 가리킨다.
'축배의 노래'로 널리 알려졌다. 비올레타와 그녀를 남몰래 흠모해온 청년 알프레도가 파티에서 처음 만나 함께 부르는 이중창이다.
“사실, 베르디가 이 작품을 만들었을 때 배우들이 당시의 의상을 입고 무대에 올려지기를 바랐다. 비올레타를 죽게 만든 부르주아의 이야기다. 베르디가 살던 그 당시의 이야기인 것이다. 근데 문제는 검열에 걸렸다는 거다. 그래서 배우들이 루이 14세 때 의상을 입고 등장했다. 베르디는 (죽을 때까지) 원하던대로 이 작품이 오르는 걸 볼 수 없었다. 그 당시 사회가 여성을 어떻게 평가하나를 심사하는 작품인데 말이다.”
샌프란시스코오페라, 시카고리릭오페라, 상트페테르부르크극장과 작업하며 폭발적인 에너지를 과시한 베르나르는 '라트라비아타'에서 두 가지를 보여주고 싶다.
“하나는 사회의 폭력성이다. 악몽이다. 진짜 엄청난 악몽이다. 아름다운 음악이 흐르지만 로맨틱한 음악이 절대 아니다. 우리 시대를 건드린다. 시각적인 측면에서는 심플하게 가려고 노력을 했다. 심플하다고 해서 이야기가 빈약한다는 건 아니다. 배우들이 집중할 수 있게 만들겠다는 거다. 의상은 루이 14세 때나 베르디 때의 의상이 아니다. 모던하지만 또 컨템포러리는 아니다. (패션디자이너) 크리스티앙 디오르(1905~1957) 스타일이라고 할 수 있다. 지금처럼 인터넷이나 TV, 에이즈가 만연하는 시대의 '라트라비아타'가 아니다. 작품의 철학을 충실하게 번역하고자 했다.”
'라트라비아타' 작품 자체가 폭력적이기 때문에 이렇게 그린다. “현재의 오페라 작품은 연출이나 지휘자나 가수들, 모두 마찬가지로 인간의 고통과 폭력성을 제대로 보여주는 것이 없다고 생각한다. 오페라는 사실 의상을 갖춰입는 콘서트가 아니라 극이다. 그런데 요즘은 극적인 요소가 없어졌다. 요즘 관객들은 TV나 영화를 통해 폭력에 익숙하다. 그럼에도 오페라는 이런 폭력성을 보여주지 않는 것 같다.”
자신은 이런 부분을 직접적으로 보여주고 싶다. “내가 이탈리아에서 만든 작품 중 아버지가 딸에게 침을 뱉는 장면이 있다. 관객들이 굉장히 놀라더라. 오페라에서는 가수들이 육체적으로 표현하는 부분이 거의 없다고 보면 된다. 나는 그런 것을 직접 표현하고 싶었다. 현실에서 많이 벌어지고 있는 일들이 아닌가. 굉장히 재미있고 폭력적이고 극적인 '라트라비아타'를 생각하고 있다.”
독일의 젊은 명장으로 통하는 파트릭 랑에(33)가 지휘한다. 세계 오페라계에서 가장 떠오르는 지휘자다. “'라트리바아타'는 베르디의 가장 중요한 작품 중 하나로 특히 여성의 모든 심리와 감상을 묘사하고 있다. 그리고 너무나 아름다운 멜로디로 이를 표현하고 있다.”
캐나다 출신으로 고음과 유연한 연기로 세계 오페라 무대에서 급부상하고 있는 조이스 엘 코리(32)가 비올레타를 연기한다. 비올레타만 40번 넘게 연기했다는 코리는 이번 작품으로 한국에 데뷔한다. “매번 '라트라비아타'를 처음 공연하는 곳과 같다. 비올레타는 너무나 다양한 면을 가지고 있는 복합적인 인물이기 때문이다. 오를 때마다 비올레타의 새로운 면을 발견한다.” 베르나르 연출의 폭력성에 대해 동의하며 “아름답기만 한 작품이 아니라 폭력적으로 많이 움직이는 공연인만큼 끝날 때 쯤 기절하지 않을까 한다”고 너스레를 떨기도 했다.
해외에서 주로 활약 중인 테너 강요셉과 바리톤 유동직이 '알프레도'와 '제르몽'을 연기한다.
강요섭은 한국에 있던 작년 11월 비엔나 국립극장의 긴급 호출로 '라보엠' 공연 5분 전에 공연장에 도착해 바로 무대에 올라 호연한 에피소드를 소개했다. 앞서 국립오페라단 '라보엠'에 출연한 것이 도움이 됐다면서 자기 자랑이 아닌 이 단체의 시스템이 “세계적이라는 것을 알리기 위해서”라며 웃었다. “1주일 전부터 베르나르 연출을 만나서 연습을 하고 있는데 살이 빠지고 있다. 팔꿈치와 무릎에는 멍이 들었다. 어디가서 연기에 뒤지지 않는다고 생각했는데 어마어마한 걸 요구하고 있다. 이런 연기를 하면서 저런 오페라를 할 수 있나라는 생각이 들거다”고 덧붙였다.
러시아의 떠오르느 프리마돈나 리우바 페트로바가 코리와 함께 비올레타를 번갈아 연기한다. 이반 마그리가 강요셉과 함께 알프레도를 나눠 맡는다.
24~27일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볼 수 있다.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가 연주하고 그란데오페라합창단이 합창한다. 1만~15만원. 국립오페라단. 02-586-528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