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뉴스 강신철 기자] 신장이식 및 바이러스 감염 등으로 구속집행이 정지돼 병원 치료를 받고 있는 이재현(53) CJ그룹 회장이 구속기소 된지 5개월 만인 17일 재판을 받기 위해 처음으로 법원에 출석했다. 이 회장은 이날 오전 9시43분께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법 청사에 회색 코트에 회색 목도리, 회색 비니모자를 쓴 차림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바이러스 감염 방지를 위해 하얀색 마스크를 쓴 이 회장은 건강상태가 좋지 않은 듯 지팡이를 짚고 비서실 직원의 부축을 받으며 공판이 열리는 법정으로 향했다.
이 회장은 ‘횡령·배임 액수를 인정하느냐’, ‘고의적인 세금 탈루인가’ 등을 묻는 취재진의 질문에는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았다.
이 회장은 만성 신부전증으로 인한 신장이식 수술을 받은 이후 거대 세포 바이러스 감염으로 서울대병원에 재입원해 병원 치료를 받고 있다. 이 때문에 재판부는 이 회장에 대한 구속집행을 내년 2월28일까지 정지했다.
그는 법정에서도 양 손을 소독하거나 마스크와 목도리의 매무세를 가다듬는 등 바이러스 감염에 극도로 주의하는 모습을 보였다. 만약의 상황에 대비해 법정에 함께 나온 서울대병원 소속 의료진도 재판이 진행되는 동안 계속 이 회장의 상태를 주시했다.
이 회장은 재판이 시작된 뒤 30여분이 지나자 몸을 의자 뒤로 깊숙하게 기댄 채 두 눈을 감는 등 다소 지친 모습을 보이기도 했지만 오전 재판이 진행되는 동안 종종 변호인 측과 귓속말을 나누는 등 적극적인 태도를 보였다.
검찰 측은 첫 공판 절차에 따라 모두 발언을 통해 “이 회장은 한달에 최대 5억원~6억원의 법인 자금을 허위 전표처리 하는 방식으로 비자금을 조성해 와인이나 미술품, 차량 구입 등 개인적인 경비로 활용했다”고 공소사실 요지를 밝혔다.
그러면서 CJ그룹 재무2팀장이었던 이모씨가 2007년 5월 이 회장에게 복직을 요구하며 전달한 'CJ는 저에게 조국입니다'라는 문구로 시작하는 편지 등을 증거로 제시했다.
해당 편지에는 이 회장이 차명계좌를 이용해 비자금을 조성하고 세금을 포탈했다는 내용과 해외 특수목적법인이 설립된 경위에 관한 내용 등이 담겨있다고 검찰은 밝혔다.
이에 대해 변호인 측은 “이씨의 편지나 피의자심문조서에는 이씨가 비자금 조성 등 모든 일에 관여하고 이를 주도한 것처럼 기재됐는데 이는 과장된 내용으로 사실과 다르다”며“만약 편지내용 등이 사실이라면 이씨가 주범에 해당하는 격인데 이씨는 구속은 커녕 기소조차 되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또 “개인적으로 사용한 자금은 차명재산을 처분한 대금일 뿐 부외자금(비자금)을 개인적인 용도로 사용한 것이 아니다”며 “정상적인 회계로 감당하기 어려운 자금 수요에 대처하기 위해 부외자금을 조성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이 회장이 건강상의 이유로 불참한 오후 공판에서는 CJ그룹의 인사팀장 등에 대한 증인신문이 이어졌다. 이날 증인신문은 이 회장이 하대중(60) 전 CJ E&M 사장에게 인센티브 명목으로 지급한 빌라대금 45억여원이 CJ차이나와 CJ인도네시아 등 CJ그룹의 해외법인 자금의 급여로 충당된 부분이 쟁점이 됐다.
검찰은 “하 전 사장은 해외법인에 근로를 제공하지 않고도 퇴직 후까지 비정상적으로 급여를 받았다”며 “이는 내부 의사결정 절차를 거치지 않은 이 회장의 개인적 결정으로 경영상의 판단이나 원칙에도 위배되는 행위”라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변호인 측은“이 회장의 경영상 판단에 따른 정상적인 인센티브 제공”이라며 “당시 인사팀과 재무팀의 논의가 있었다”고 반박했다.
앞서 이 회장은 CJ그룹 직원들과 공모해 국내외 비자금을 차명으로 운용·관리해오면서 546억원의 세금을 탈루하고 963억원의 국내·외 법인 자산을 횡령한 혐의 등으로 구속기소됐다.
또 일본 도쿄소재 빌딩 매입과정에서 CJ일본법인에 569억원의 손실을 끼치는 등의 혐의도 받고 있다 이 회장에 대한 다음 공판은 24일 오전 10시에 열릴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