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앙리 팡텡 라투르는 고전의 사실주의적 표현과 전통에 기반을 두고 있으면서도 ‘인상주의의 아버지’라 불리는 에두아르 마네(Edouard Manet, 1832-1883)의 대담한 붓터치를 수용함으로써 전통과 현대의 만남에서 이상적인 화합을 이루어낸 화가로 높이 평가된다.
내향적인 성향의 화가, 팡텡 라투르는 특히 고요한 실내에서 펼쳐지는 인물들의 섬세한 심리 묘사와 특유의 정적인 분위기 연출로 널리 사랑받는다.
17세기 플란더스(Flanders: 오늘의 네덜란드, 벨기에, 룩셈부르크 지방) 바로크미술의 거장인 렘브란트(Rembrandt van Rijn, 1606-1669) 작품의 ‘명암법’에 큰 영향을 받은 그는 바로크 풍의 어두운 배경 중앙에 외부로부터 빛을 받으며 생명력을 얻는 모습으로 연출함으로써 마치 암흑 속의 여인이 관객 앞으로 천천히 다가오는 듯한 느낌을 준다.
작품 <검은 모자를 쓴 여인의 초상>에는 검은 모자에 역시 검은색 외투를 입은 단정하고 정갈한 차림의 여인을 그리고 있다. 검은색 의상을 입고 있어서 얼핏 검소해보이는 듯 하지만, 모자와 가슴에 달린 은은한 꽃장식과 갈색 모피로 된 목 주위의 카라는 수수한 듯 하면서도 한껏 모양을 낸 모습이다. 오히려 절제된 화려함으로 치장한 모습이 이 여인의 깔끔한 패션 감각과 자신감의 반영이라 볼 수 있다. 잔잔한 들꽃의 하늘거리는 표현과 모피의 섬세하면서도 몽글거리며 따뜻한 질감과 동시에 옷 부분은 넓은 면으로 처리하는 대담한 붓터치는 팡텡 라투르의 뛰어난 회화적 기량을 보여준다.
이 초상화에서 특히 인상적인 부분은 여인의 얼굴이다. 고집스럽게 꼭 다물고 있는 얇은 입술에서는 여인의 고집스러운 면모와 지조가 느껴지고 입가에 지은 잔잔한 미소는 그 의미를 해독할 수 없어서 더욱 신비롭게 다가온다. 관객의 내면을 꿰뚫어보는 듯 직시하는 눈매는 시간을 초월하여 생생하게 살아있다.
고요한 침묵이 지배하는 이 그림 속 침묵은 할 말이 없어서 입을 꼭 다문 것이 아니라, 형언할 수 없는 비밀을 내포하고 있어서 침묵할 수 밖에 없는 ‘말없는 절규’로 강렬한 울림으로 다가온다.
<큐피드상>은 18세기말에서 19세기 초 역시 프랑스에서 활동한 조각가, 장-앙투안 우동의 작품으로 그는 당시의 많은 예술가들과 같이 지적 여행의 보고인 로마에서 공부를 하고 프랑스에 돌아와 작품 활동을 한 조각가이다. 이탈리아에서 그는 고대 로마인들의 웅장함과 대범함을 습득하게 되었고 이는 프랑스인 특유의 섬세함과 낭만주의적 성향과 어우러지며 자신만의 스타일을 구축하기에 이르렀다. 특히 그는 나폴레옹, 볼테르, 몰리에르 등 당대 프랑스의 여러 정치인, 지식인, 유명인사들의 뛰어난 인물상들로 명성이 자자했다. 그의 매우 사실적이면서도 깊은 내면의 심리표현은 멀리 북아메리카까지 전해져 후에는 미국으로 건너가 미국의 제 1대 대통령인 조지 워싱턴(Georges Washington, 1732-1799)의 인물상을 제작하여 더욱 각광받게 되었다.
그는 실존하는 인물상들과 더불어 당대 꾸준히 사랑받던 그리스 로마 신화를 주제로 한 작품들을 많이 제작했는데 이는 그 중 한 점이다.
불과 높이가 70cm에 불과한 작은 조각사상이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기념비적인 무게감과 동시에 생기 넘치는 경쾌함이 느껴지는 훌륭한 작품이다. 장미꽃이 만발한 땅의 표현은 바닥에 흐드러진 장미 꽃 세 송이로 여실히 전달되고, 이 짓궂은 큐피드가 맺어줄 치명적 사랑에 대한 암시는 머리 위의 장미화관과 더불어 날개를 파닥이며 바닥에 살포시 내려앉은 비둘기 한 쌍의 다정한 모습이 전해주고 있다. 가볍게 한 발을 떼어 표적을 향해 활을 겨누는 큐피드의 얼굴에서는 고전적인 아름다움과 동시에 활 끝을 바라보는 눈에서는 고도의 집중력이 느껴진다. 아쉽게도 실제 활의 줄은 사라진 상태지만 그 움직임을 느끼기에 충분하고 그의 다급한 움직임에 펄럭이는 천과 어깨의 작은 날갯짓이 생기가 넘친다. 포동포동한 사랑스러운 모습의 큐피드는 이같이 천진난만한 모습을 하고 있지만 불과 몇 초 후 그의 화살에 맞은 자는 운명적인 사랑의 힘에 저항하지 못하고 불행의 나락으로 떨어지고 말 것이다. 이같이 인간세계의 질서와 평화의 파괴는 인간 세계를 더욱 복잡하게 만들어낼 것이다. 한눈에 보기에는 단순히 사랑스러운 아기 천사의 모습이지만 이는 극적인 운명의 장난이 일어나기 일보 직적인 긴장감 넘치는 순간의 표현이다. 다정한 비둘기 한 쌍의 모습은 우리 모두가 꿈꾸는 영원한 사랑의 모습을 연상시키며 낭만적이고 우울한 사색에 빠지게 한다.
<검은 모자를 쓴 여인의 초상>이 고요 속에서 호소하는 울림이 전해진다면, <큐피드상>에서는 사랑스러운 모습 뒤에 숨은 고통스러운 드라마의 시작을 예고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