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한 유명 어학그룹이 내부 연구원과 직원을 조직적으로 동원해 토익(TOEIC)·텝스(TEPS) 시험 문제를 몰래 불법 유출해 온 사실이 검찰에 적발됐다.
서울중앙지검 첨단범죄수사1부(부장검사 김영종)는 6일 토익·텝스 영어시험 문제를 상습적으로 불법 유출한 혐의(저작권법 위반 등)로 조모(53) 해커스어학교육그룹 회장 등 2명을 불구속 기소하고, 김모(42) 해커스어학원 연구소 대표 등 4명을 약식 기소했다고 밝혔다.
검찰은 또 해커스어학원과 해커스어학연구소 법인 2곳을 같은 혐의로 약식 기소했다.
조씨 등은 지난 2007년 10월부터 지난 1월까지 미국교육평가원(ETS)이 주관하는 토익과 서울대 언어교육원이 시행하는 텝스의 시험문제를 몰래 암기·녹음하는 수법으로 총 106회에 걸쳐 유출한 혐의를 받고 있다.
토익은 2007년 10월28일부터 2011년 12월18일까지 49회, 텝스는 2007년 12월2일부터 2012년 1월7일까지 57회에 걸쳐 각각 문제가 유출됐다.
검찰에 따르면 조씨는 직원들에게 독해·청해(듣기) 등 각 파트별로 암기 부분을 미리 지정한 뒤 시험업무 매뉴얼, 후기 작성업무 매뉴얼, 녹음·녹화 지침 등으로 역할을 분담해 문제 유출을 적극 주도했다.
해커스어학원의 연구원 38명은 토익과 텝스로 나뉘어 한 사람당 2문제씩 암기한 뒤 시험 종료 후 1시간30분 이내에 문항과 정답을 전달했고, 같은 학원 마케팅 직원 4명은 토익과 텝스 듣기평가 문제를 몰래 녹음한 뒤 3시간 이내에 문제를 전달했다.
이같은 방법으로 어학원 내부 인트라넷에 시험문제와 정답 등 후기를 게시한 뒤 외국인 연구원의 검토를 거쳐 시험 문제가 완벽하게 복원됐다.
연구원들이 올린 시험문제의 지문과 정답은 각 시험총괄 담당자를 거쳐 실시간으로 어학원 웹사이트에 게재됐으며, 저작권 문제를 고려해 다음날 아침에 삭제한 뒤 교재 편찬에 사용했다.
검찰 관계자는 "독해 등은 각 연구원들이 암기를 부여받은 문제만 외운 후 시험이 끝난 후 바로 인터넷으로 총괄자에게 전송했다"며 "청해(리스닝)는 몰래 녹음 후 외국인 연구원에게 전송해 문제를 복원했다"고 설명했다.
시험유출 수법도 치밀했다. 해외에서 구입한 특수녹음기를 변형해 헤드폰과 귀 사이에 끼우는 방법으로 녹음하거나 마이크로렌즈가 장착된 만년필형 녹화장비를 이용해 문제를 유출했다.
이들은 시험문제를 훔쳐 오면서도 외부로 유출을 막기 위해 각자 파일과 내부 통신망에 일일이 암호를 부여하는 등의 방법으로 철저히 관리했다.
특히 해커스 어학원에 올리는 시험 후기 문장을 최소화하고, 기출문제 변형 과정에서 저작권법에 저촉되지 않도록 법무팀과 논의하는 등 치밀하고 조직적으로 대응한 것으로 확인됐다.
해커스그룹은 2002년 설립 후 불법으로 유출한 시험문제를 활용해 '최고의 족집게'라는 명성을 얻었으며 지난해에만 매출 1000억원, 당기순이익 360억원을 거둘 만큼 단기간에 국내 주요 어학교육그룹으로 성장했다.
그러나 조씨는 지방 국립대 교수(영문과)로 재직하면서 신분을 숨긴 채 해커스그룹을 운영해 공무원의 영리업무 및 겸직금지 규정을 위반한 사실이 적발됐다. 조씨는 비상장법인인 해커스그룹의 주식을 100% 소유하고 있었지만, 가족 명의나 차명으로 보유하는 등의 지배구조 방식으로 그룹을 몰래 운영했다.
검찰은 ETS 한국토익위원회의 요청으로 해커스그룹에 대한 수사에 착수했다. 토익위 측은 2006년부터 해커스 측에 시험문제 유출 의혹을 지속적으로 제기했지만, 오히려 해커스 측은 문제의 동일성 판단을 위해 문제 풀(pool)을 보여줄 것을 요청하며 적반하장 태도로 일관했다.
이에 ETS 측은 한국 응시생들의 영어실력에 의심을 품고 매년 한국인을 위한 특별시험 용도로 7회차 문제를 별도 개발해 66만5000달러(약 7억4000만원)의 손실이 발생했다.
검찰 관계자는 "이번 수사는 어학원이 전 직원을 동원해 조직적으로 시험문제를 불법 유출한 구조적 비리 일체를 파헤친 최초의 사례"라며 "향후에도 시험문제 유출 등 저작물 침해사범에 대해 예의주시하고 지속적인 단속을 벌이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