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 포퓰리즘과 전면전을 치르겠다며 시대정신을 무시하고 무상급식 주민투표를 강행한 오세훈 전 서울시장이 처참한 최후를 맞이했다. 주민투표 투표율이 25.7%에 그침으로써 투표함은 개봉하지도 못한 채 싱겁게 게임은 끝났고, 오세훈 전 시장은 이를 명분으로 서울시장직에서 즉각 사퇴했다. 국민적 시각과 야권의 시각은 오세훈 전 시장의 자승자박으로 인해 사실상 재기 불능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한나라당이나 보수 진영은 애써 궤변을 늘어놓으며 ‘사실상 승리나 다름없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대부분 보수표로 추정되는 투표율 25.7%가 곧 한나라당이 서울시에서 얻을 수 있는 ‘표’로 계산되기 때문이다. 즉 지방선거나 재보궐선거의 투표율이 50%수준이라고 가정했을 때 이번에 얻은 25.7%의 투표율을 만들어냈다는 것 자체가 불리한 상황에서도 선방했다는 해석이다. 25.7%가 득표율이나 다름없다는 뜻이다.
◆혼자 살아보겠다는 오세훈, 공천 준 한나라당은 봉으로 생각하나?
그러다보니 오세훈 시장은 이같은 해석에 자신감을 얻었다. 곧바로 시장직에서 사퇴함으로써 서울시장 재보궐선거를 오는 10월에 치르도록 한 것이다. 9월 30일까지만 시간을 벌어주면 내년 4월 총선과 함께 치를 수 있었던 서울시장 보궐선거를 확 앞당겨버린 것이다. 25.7%에 대한 자신감 때문이다. 그리고 혹시라도 한나라당이 받을 수 있는 타격보다 오세훈 자신을 먼저 생각한 이유도 있다. 만일 재보궐선거를 내년 4월에 치러지게 하도록 시간을 끈다면 자신의 시장직 사퇴에 대한 진정성이 훼손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컸던 것으로 보인다. 진정성 있는 정치인 오세훈의 이미지를 유지하고자 당을 수렁으로 밀어 넣어버린 것이다.
오세훈 시장은 지금 당장의 이미지를 선택했다. 당과 의논 없이 주민투표를 발의해 파문을 일으키더니 또 당의 강력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즉시 사퇴 카드를 던졌다. 주민투표 발의로 당을 풍지박산 내놓고 그에 따른 책임마저도 꼼수로 지려하는 자세로 인해 한나라당은 분노 폭발 직전이다.
실제로 한나라당 홍준표 대표의 분노는 극에 달해 있다. 홍 대표는 지난 26일 오전 시내 한 호텔에서 서울지역 의원들과 가진 조찬간담회에서 “일부 언론에서 나왔듯 당 지도부와 상의한 일이 없다. 본인이 독단적으로 사퇴하려는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참 안타까운 것은 국익이나 당보다도 개인의 명예가 더 중요하다는 것”이라며 “그것은 당인의 자세가 아니고 조직인의 자세가 아니다”고 강하게 질타했다. 오세훈 시장의 제명 가능성을 시사한 대목으로 읽히기도 한다. 이에 앞서 홍 대표는 “오세훈에게 3번 농락당했다”, “앞으로 볼 일 없다” 등 의미심장한 발언도 했던 바 있다.
◆정치권 발 빠르게 10.26재보궐선거 체제로 전환, 출마 러시
한나라당을 비롯한 보수진영 전체가 이처럼 허우적거리고 있는 사이 야권은 기세등등한 모습으로 발 빠르게 서울시장 보궐선거를 준비하고 있다. 민주당에서는 스타플레이어들이 출전을 준비하고 있다. 주민투표 직후 가장 먼저 출마 입장을 밝힌 것은 천정배 최고위원. 천 최고위원은 지난 25일 긴급 기자간담회를 열고 “10월에 선거가 치러지는 것을 전제로 내년 총선대선 전 서울시장 선거가 과거세력과 미래진보가치의 결전이 될 것”이라며 “서울시장직 출마를 결심하게 됐다”고 밝혔다.
천 최고위원은 이어 “(출마하려면) 선거 60일 전에 서울시민이 돼야 하는데 알고 보니 시한이 내일까지”라며 주소지 이전의 뜻까지 밝히며 “이 일(서울시장 선거)이 크게 보면 안산만의 일이 아니고 전체 대한민국을 전진시키자는 것인 만큼 이해해주실 것으로 생각한다”고 안산 지역주민들의 양해를 부탁했다. 야권의 숨겨진 보석으로 일컬어지는 김한길 전 의원도 출마 의사를 내비치고 있어 주목된다. 김한길 전 의원은 천정배 최고위원이 출마 선언을 하던 같은 시간 기자들과의 만남에서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다”고 밝혔다.
정계은퇴를 선언했던 김한길 전 의원은 “18대 국회에서는 대선 패배의 책임을 지고 (총선에) 출마하지 않았지만 내년 총선-대선 승리에 기여하기 위해 내 역할이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을 할 때가 왔다”며 “나도 그 저울 위에 올라가는 것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한길 전 의원으로부터 서울 구로을 지역구를 물려받은 박영선 정책위의장도 당내에서 유력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또 추미애 의원 역시 사실상 출마의 뜻을 굳힌 것으로 알려졌다. 이밖에도 지난해 오세훈 시장에게 석패한 한명숙 전 총리를 비롯해 이인영 최고위원, 김성순 의원, 전병헌 의원, 이계안 전 의원 등도 당 안팎에서 출마 후보군으로 거론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안철수, 박원순 등의 이름도 거론하고 있다.
한나라당에서는 아직까지 내홍을 겪으며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 휩싸여 있어 본격적인 출마 러시는 이뤄지지 않고 있다. 다만 나경원 최고위원이 대중적 인지도를 바탕으로 여성 서울시장 후보군으로 이름이 오르내리고 있다. 지난해 6.2지방선거 서울시장 경선에도 참여했던 바 있어 출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같은 맥락에서 원희룡 최고위원도 출마 가능성이 언급되고 있다. 이밖에 서울 출신인 정두언 의원과 박진 의원, 권영세 의원 등도 거론되고 있다. 또 강동구청장 출신의 3선 김충환 의원과 서울시 정무부시장을 지냈던 정태근, 권영진 의원, 진수희 보건복지부장관, 홍정욱 의원 등도 거론된다. 일각에서는 정운찬 전 총리 또는 정치인 출신 장관들의 차출 가능성도 함께 제기하고 있다. 그 중에는 유인촌 대통령특보 등의 출마설도 흘러나오고 있다. 《자세한 내용은 주간 시사뉴스 창간 23주년 400호(9월6일자 발행) 커버스토리에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