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이 법무부장관에 권재진 청와대 민정수석을 내정, 야권의 반발이 거세지고 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5일 법무부장관에 권재진 민정수석을 내정하며, 이와 함께 한상대 서울중앙지검장도 새 검찰총장에 내정했다.
대구 출신으로 경북고와 서울대 법대를 졸업한 권재진 내정자의 경우, 대검 공안부장과 서울 고검장, 대검 차장 등 요직을 두루 거친 정통 법조계 인사다. 특히, 권 내정자는 지난 2009년 6월 임채진 전 검찰총장이 사퇴하자, 차기 검찰총장 1순위로 하마평에 오르기도 했던 바 있다. 하지만, 당시 천성관 전 서울지검장이 검찰총장 후보로 지명되자 권 내정자는 검찰조직을 떠나 그해 8월 청와대 민정수석으로 자리를 옮겼다.
문제는 권 내정자가 이 대통령의 측근인사라는 점. TK출신에 민정수석까지 지낸 인물을 법무부장관에 기용한다는 데 대해 야당은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내년에 있을 총선과 대선을 과연 공정하게 치를 수 있겠느냐는 우려 때문이다. 사실, 청와대 민정수석이 법무장관에 지명된 것 또한 전례 없는 일이다.
그에 더해, 권 내정자는 17대 대선 당시 대검차장으로 있으면서 이명박 후보가 연루됐다는 의혹이 있었던 BBK사건 수사발표를 지연시켰다는 의혹도 받아왔었다. 아울러, 지난해에는 민정수석으로서 총리실 민간인 불법사찰 사건 수사에 개입했다는 의혹도 제기된 바 있다. 이래저래 야권이 반발할 수밖에 없는 상황인 것이다. 따라서 권 내정자에 대한 인사청문회는 그야말로 가시밭길이 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만일, 그가 낙마하게 될 경우 임기 후반으로 달려가고 있는 이명박 대통령이 받게 될 타격은 앞서 낙마한 측근인사들의 경우보다 더 강할 수밖에 없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野, “민정수석을 법무장관에 기용하다니, 사상초유의 일” 맹공
지난 15일, 공식적인 인사 발표가 나기 전부터 야권은 들썩였다. 이날 오전부터 이 대통령이 권재진 민정수석을 내정할 것이라는 소문이 퍼졌기 때문이다. 이에 민주당은 긴급의총까지 열며 권재진 내정자에 대한 지명철회를 강하게 요구했다.
이와 관련, 민주당은 “내년 총선과 대선을 관리해야 할 법무장관은 다른 무엇보다 ‘공정하고 중립적인 인사를 임명해야 한다’는 국민과 정치권의 목소리에 이명박 대통령은 끝내 귀를 닫아버렸다”고 강하게 비난했다. 또, 이용섭 대변인은 논평을 통해 “공정한 법 집행을 해야 할 법무장관 자리에 자신의 최측근인 민정수석을 기용한 최초의 사례이자, 최악의 ‘측근 인사’, ‘회전문 인사’”라며 “민주당은 권 법무장관 내정자와 한 검찰총장 내정자에 대해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도덕성, 병역문제, 전문성 그리고 정치적 중립성에 대해 중점적으로 검증할 것”이라고 엄포를 놓았다.
민주노동당 우위영 대변인도 “검찰의 정치적 중립을 간절히 바라는 국민들에 뻔뻔한 정략인사로 응답하다니, 청와대가 이제는 아예 대놓고 국민에게 선전포고를 하겠다는 것이냐”며 “청와대의 내정 강행이 인사의 끝이 아닌, 분란과 논란의 시작점이 되고 있다”고 날 세워 비난했다.
우 대변인은 그러면서 “청와대가 이처럼 비상식적인 최측근 인사, 정략인사를 강행하는 것은 검찰권을 장악해 MB정권 비리에 대한 강력한 차단막을 치겠다는 매우 불순한 의도”라며 “정략적 의도가 뻔한 청와대의 무리수는 국민분노만 야기할 뿐”이라고 지명 철회를 촉구했다.
진보신당은 박은지 부대변인은 한나라당을 겨냥, “이명박 정권 내내 청와대 거수기 역할을 해온 한나라당은 어쩌면 현 정권 마지막이 될지 모를 법무부장관 인사에 대해서도 대통령의 부끄러운 손을 들어줬다”며 “‘권재진 의총’을 개최할 정도로 여당 스스로도 분명한 문제의식을 느끼고 있었음에도 결국 팔은 안으로 굽어버린 셈”이라고 개탄했다.
이어, “말만 들어도 지긋지긋한 형님라인, 영포라인에 이어 김윤옥 여사와 누나 동생 사이라는 권 수석 내정으로 이제는 ‘누님라인’이라는 말까지 나올 판”이라며 “대통령 임기 말까지도 측근인사와 보은인사를 강행하려 한다면, 이제는 민심이반을 넘어 민심이 이민을 갈지 모를 일”이라고 비꼬기도 했다.
◆與, “검찰총장은 곤란하더라도 장관은 괜찮다”?
야권의 이 같은 반발 속에 권재진 내정자에 대한 국회 인사청문회는 7월 말 또는 8월 초에 열릴 예정이다. 민주당을 비롯한 야권은 초강도 검증을 통해 권 내정자를 반드시 낙마시키겠다는 결의를 다지는 모습이다.
한나라당은 야권의 정치공세를 철저히 차단하겠다는 방침이다. 다만, 이 대통령의 인사권을 최대한 존중하고 뒷받침하되, 국민의 눈높이에 맞춰 면밀한 검증에 나서겠다는 입장이다. 이와 관련, 황우여 원내대표는 “청와대 비서관 출신이 독립성을 지향해야 할 감사원장이나 검찰총장에 기용되는 것은 곤란하지만, 정부부처 장관까지는 괜찮다는 게 의원총회에서 나타난 의원 다수의 의견이었다”고 밝혔다.
한나라당은 이와 함께 야권이 제기하는 내년 총선과 대선 선거관리에서의 공정성 시비 문제에 대해서도 적극적으로 대응하겠다는 입장이다. 특히, 앞선 김대중-노무현 정부 때 여당 의원들이 법무장관에 기용돼 지방선거를 관리했던 전례들을 제시하며 맞불을 놓겠다는 전략이다. 여당의 한 의원은 권재진 내정자가 지난해 총리실 민간인 불법사찰 수사에 개입했었다는 의혹과 관련해 “사실 여부가 확인되지 않은 논란일 뿐”이라며 “민주당은 팩트를 가지고 얘기하라”고 강하게 맞섰다.
인사청문회가 열리기 전부터 여야 기싸움이 팽팽히 전개되고 있는 모습이다. 특히 여당이 이처럼 적극적으로 나서는 것은 지난해 정동기 감사원장 후보자가 낙마했던 상황을 감안했을 때, 이번에 또 다시 권재진 내정자마저 낙마하게 될 경우 이 대통령 뿐 아니라 여권 전체가 심각한 타격을 입을 수 있다는 위기감이 작용하고 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