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신한 발행인
한 달 전쯤 이던가, 정치부 기자가 미국출장을 다녀와서 이상한 사람 얘기를 하나 들려줬다.
올해 나이 일흔여덟의 그이는 미국 LA의 교포실업가로 그 옛날 한국에서 가발을 수입해 국내경제에 큰 영향을 미쳤던 이라고 했다. 그런 그가 지금은 미국 의회에 적극적인 국군포로송환 운동을 펼치고 있다고.
지난 12월8일 서울에서 북한인권국제대회가 열렸다. 사비까지 들여가며 미국의회를 비롯한 UN인권위원회의 북한인권결의안 채택 등을 촉구한 그이는 알고 보니 자신도 젊은 시절 6·25전쟁에 참전했다 전우를 북에 두고 온 국군장교였다. 마치 성공한 실업가의 삶을 속죄하듯 그이는 북에 남은 400여명의 늙은 국군포로들을 위해 여생을 올인하고 있다는 기자의 얘기를 들은지 한달만이다.
3일간 열린 이 대회 기간동안 미국, 일본 등 세계 여러나라에서 모인 대회참가자들은 함께 모여 북한 탈북자에 대한 보복중단, 정치범수용소 해체, 국군포로 및 납북자 송환, 한국정부의 적극적인 관심 촉구 등 8개항의 ‘서울선언’을 채택했다.
사실 2005년 한해는 북한 인권개선을 위한 국제사회의 노력이 유난히 빛났다. 올 4월 유엔인권회의는 북한 인권결의안을 채택했고, 7월에는 제1회 북한인권국제회의가 개최됐으며 또8월에는 미국에 북한인권특사가 임명되기도 했다. 그리고 마침내 지난 11월 유엔총회는 북한인권결의안을 채택하기에 이르렀다.
저무는 2005년 세모. 과연 ‘우리정부는 이미 고국을 떠나 성공한 실업가의 삶을 누릴 수도 있던 고희의 교포나, 또 어느해보다 북한인권을 위해 노력을 아끼지 않은 국제 NGO들에게 얼마만큼 당당할 수 있을까. 이제는 자신처럼 늙고 병든 채 남쪽하늘만 바라보며 한을 품고 이 세상을 떠나는 전우들을 돌려달라 호소하던 일흔여덟의 교포조차 ‘우리정부도, 우리 국민도 다같이 이들의 한을 죽기전에 풀어줘야 하지 않겠냐며, 이것이 최소한 그분들의 희생에 대한 보답이 아니냐’며 울먹였다던데….
북한인권국제대회가 서울에서 열리는 그 즈음 김대중 전 대통령의 노벨평화상 5주년 기념행사가 역시 서울의 한 호텔에서 있었다. 이날 김 전 대통령이 ‘한국이 북한 인권에 무관심하다는 지적’에 대해 한마디 소감을 전했나 보다. “우리가 해마다 북에 식량과 비료, 의약품과 생필품 등을 보내 북한도 엄청난 덕을 보고 있다”고. 또“지금 우리는 북한의 원초적, 사회적 인권에 상당히 기여하고 있다”고 말이다.
얼마나 박수가 터져 나왔을지 모를 일이다. ‘북의 인권을 위해 전쟁이라도 하라는 것이냐’며 항변하던 여당 중진의원들이 혹 그 자리에 몇이나 참석했었는지도 역시 모를 일이다.
북한 인권문제의 당사자 우리정부는 지금까지 어떻게 일관했나. 지난 2003년부터 2005년까지 유엔인권위원회가 채택한 북한인권결의안 표결에 정부는 늘 불참이나 기권으로 일관했다. 정부는 또 북한인권국제대회내내 중국의 탈북자 북송문제나 북한인권개선운동을 하는 시민단체에 대해서조차 부실한 지원으로 일관, 세계의 비판을 면치 못했다. 대북 경제지원과 인권개선은 여전히 연계 필요가 없다는 말인가. 언제까지 인권과 남북관계 개선이 기차의 레일처럼 분리돼야 한다는 것인지 씁쓸한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