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웬만큼 정리가 되었다.
내일이면 서울생활을 접고 출국하기 전까지 대전 장인어른 댁에서 생활 하기로 했다.
아내와 아이들은 한달 전에 처가댁으로 내려갔고 나는 서울 생활 정리 한다고 아직 남아있었다. 오늘 짐도 다 내려 보냈고, 내일 주인댁과 전세보증금만 받으면 나도 10년 가까운 서울 생활을 정리한다.
서울시 강남구 양재동... 빌라 반 지하방..조그마한 방 세칸에 정말 쪼그마한 욕실 하나. 그리고 두사람이 앉기도 불편한 거실..거실이라고 해야하나?
짐을 다 빼고 보니 오늘따라 유난히도 집이 조그만해 보인다.
그래도 이곳에서 5년 가까이를 살았는데 오늘따라 집이 조그만해 보이는 이유는 뭘까?
햇빛도 잘 들지 않아, 낮에도 불을 켜야 하는 우리집. 빨래 널기가 불편해 퇴근하고 돌아오면 여기 저기 널려있던 빨래들..이젠 이런 모습도 볼 수 없겠지.
지난 몇 년간의 생활이 주마등 처럼 지나간다.
나의 아내...
그리 넉넉하지는 못한 집에서 태어났지만. 그 어느 가정보다 화목한 집에서 태어났다.
부모님 같으신 장인, 장모님... 듬직한 처남...
우리의 결혼생활 6년 동안 내 아내는 항상 나와 아이들을 위해서 헌신해 왔다.
나의 빠듯한 지갑으로는 아이들 가르치고 우리가족 생활하면 단 한푼의 저축도 어려웠을 것이다. 그 언젠가 내가 대학이야기를 했을때.. 나의 아내는 두말하지 않고 대학을 가라고 했다. 걱정하지 말라며...당신을 위한것이 아니라 우리가족을 위하는 것이니까, 미안해 하지 말고 대신 열심히 하라고...
그러면서 나의 아내는 노점을 시작했다. 아내는 손재주가 아주 뛰어났다.
동대문에서 재료를 사다가 아이들 핀을 만들어서 여기 저기 아파트 단지나 목 좋은곳을 골라 돌아다미며 팔았다. 아침에 나를 출근시키고 아이들을 어린이 집에 보낸 후 자기도 금방이라도 시동이 꺼질듯한 자동차를 몰고 여기저기 핀을 판 후 아이들이 돌아오는 시간에 맞춰
아이들은 반겨주고 씻기고 밥 먹이고, 놀아주다가 늦게서야 내가 돌아오면 밥 챙겨준 후
밤 11시가 되면 어김없이 조그마한 방으로 들어가 새벽 4시까지 다음 날 팔 핀을 만들었다.
아내가 여기 저기 돌아다니며 노점을 하는 것이 나는 너무나도 싫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아이들 어린이집 비용만 월에 100만원, 생활비, 각종세금, 몇 달에 한 번씩 돌아오던 대학 수업료, 도저히 나 혼자만의 힘으론 감당하기 어려운 금액이었기에.. 아내가 힘들어하는 모습. 처음보는 사람들앞에서 웃으며 핀을 하나라도 더 팔려고 하는 모습이 싫었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내가 이민을 결정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였다.
한국이 싫어서..이 사회가 싫어서..내가 몸담고 있던 직장이 싫어서....아니다. 이런 이유들이 아니다. 난 그렇게 거창한 이유조차 모른다.
단지 내 아이들이 마음껏 뛰어놀고, 많은 것을 보고, 많은 것을 느끼며 살게 해주고 싶었고
내 아내가 저렇게 고생하면서 살게 해주고 싶지 않았을 뿐이다.
내가 돈이 많지도 능력이 탁월하지도 못하기 때문에 이대로 산다면 항상 같은 모습..지금처럼 서로가 생활에 찌들어 뒤도 돌아보지 못하고 앞도 바라보지 못하며 미래도 꿈꾸기가 힘 들것 같아서...
그래서 이민을 결정했다.
다른 누가 나의 생각을 보면 삿대질하거나 욕을 할 수도 있겠지.일종의 도피라고...
하지만 상관없다.
내 가족과 나를 위해서 결정한 일이기 때문에..
지금은 예전보다 마음이 많이 편해졌다. 이미 모든 것이 결정되었고, 기다림..그리고 새로운 시작만이 남아 있으니..
오늘 밤이 지나고 처가댁으로 가면 이제 더 이상 어두운 이야기는 하지 않을 것이다.
자식들을 평생 떠나보내는 부모님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위로해 드릴 생각이다. 밝게 웃는 모습을 보여드려야 겠다.
아참!!
내일부터는 사진도 좀 찍어야 겠다.
한국에 남아있을 가족들을 위해 그리고 호주에서 한국에 남아있는 가족들을 그리워할 우리들을 위해 홈페이지를 만들고 있다.
항상 걱정하고 계실 부모님들 가족들..모두가 조금이나마 사진이나 글을 통해 서로의 모습을 보며 이야기 나눌수 있는 조그만한 공간을 만들 생각이다.
자!!! 이제 새로운 시작이다..!!! 화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