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번째 이야기] 영주권
또 밤이 늦었다.
요즘은 잠을 도통 잘 수가 없다. 그놈의 영어는 늘지도 않는 것 같고...그냥 뭔가 막힌듯 속만 답답하다.
오늘 호주에서 영주권이 나왔다.
다행이다. 그나마 이민을 갈 수 있는 직업군에 속해서 자격증 없이도 경력을 인정받아 영어시험만으로 이민이 결정되었다.
하늘이 도와주신 걸까? 이민을 원하는 사람들 중에도 자격이 되지 못해 포기하는 사람이 많다는 것도 들었다. IT계열에서 경력이 10년정도 되어서 그나마 나는 호주에서 허용되는 이민허가 직업군에 속해서 영어시험만으로 이민이 결정되었다.
이민허가서라고 해야 하나? 한참을 들여다 보았다.
이 종이 한 장을 위해서 2년 가까이를 준비했나 하는 허탈감도 들지만, 어쩌면 이 종이 한 장으로 암울하다면 암울할 수 있었던 나의 삶과 우리 가족의 삶이 바뀔 수도 있다는 기대감도 든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으로 정신없이 살았던 시간들 이었다.앞뒤를 돌아볼 겨를 없이 이제까지 숨차게 달려온듯 하다.10년 가까이 다녔던 직장을 생각하면 나도 몰래 웃음이 지어질 때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씁쓸한 기억들도 많은 것 같다. 뭐~ 직장인들이라면 하루에도 열두번씩 때려치고 싶다는 생각을 할 때가 많겠지만.....
한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수 있는 대기업....
IMF때에도 건실하게 다녔던 회사.. 언제부턴가 구조조정의 바람이 불고 전반적인 회사의 영업실적이 나빠지면서 나같은 5년 10년차 대리, 과장급들은 한낱 파리목숨처럼 위의 눈치를 볼 수 밖에 없었다.
상무님이 회의라도 다녀오시는 듯 하면 직원 모두가 힐끗힐끗 눈치 보느라 정신이 없다. 눈치보며 나와서 서로들 담배 한 개피에 자판기 커피 한잔씩 들며 누가 먼저라고 할 것 없이 더러워서 회사를 그만둬야겠다는 둥 이민을 가야겠다는 둥, 장사나 해야겠다는 둥.......
하지만 결국은 모두들 다시 눈치를 보며 자기자리로 슬며시 앉아버린다.
회사를 그만 둔 지금의 나로선..그리고 이렇게 과거를 회상하는 나로써는 얼굴에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그때를 회상하고 있지만..
아직도 그곳에 남아있는 나의 동료들은 똑같은 푸념과 체념을 늘어놓고 있을 거라 생각하니 가슴이 또 쨘~ 해져 온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에 상경해 컴퓨터 관련 일을 하면서 틈틈이 학원 다니며 정말 열심히 생활하다가 대기업 공채에 컴퓨터 관련 부서에 합격 했을때 만 해도 세상을 다 가진 듯 했다.
한해 두해 시간이 지나면서 남들은 다하는 승진을 5년째 하지도 못하는 내 모습이 또 진저리 쳐지게 싫어 결혼 생활에 빠듯한 지갑을 털어 4년제 야간대학을 다녔다.
몸이 부서질 듯 피곤할때도 많았지만,
그래도 아이들과 사랑하는 아내를 위해 또 나를 위해 정말 열심히 했고, 어찌 어찌 대학을 졸업하게 되었다.
대학을 졸업한 해에 회사에서 대리로 승진이 되었다.
7년 가까운 평사원 생활 때문이었는지 대리 승진이 너무나 뛸 듯이 기뻤지만 한편으로는 대학 졸업장의 위력을 새삼 느끼게 되었다. 위력? 아니 위력이라는 말보다는 허탈감이 맞을 지도 모르겠다.
“하하하” 하고 그냥 웃어 넘길 수도 있지만 가슴속에서는 울화통이 터지는 듯 했다.
그만큼 나 라는 존재가 사회에서 조직에서 미약한 존재라고 느껴지는 기분이었다고나 할까.
같은 동네에 사는 회사 동료였던 친구나 전화로 불러내서
포장마차에서 소주나 한잔 해야겠다.
오늘도 이대로는 잠자기는 틀린 듯 하니.....
참 !! 그 친구도 이민을 준비중이다.
뭐 이민 갈려는 이유야 나랑 비슷하지만... 그 친구는 아직 아이들은 없으니까 나 보다는 훨씬 좋은 조건을 가지고 갈수 있을테지.
그래서 그런지 그 친구가 자주 연락을 한다.
이민준비를 내가 1년 가까이 먼저 시작했고, 영주권까지 받은 상태이니 이것 저것 많이 궁금 하겠지.
오늘 소주는 내가 살까 한다.
비싼 안주 시키면 곤란한데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