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소원은 통일’. 초등학생들도 통일을 읊조릴 정도로 통일은 반세기 동안 지속된 분단 상황에서 민족적 소명으로 여겨져 왔다. 하지만 과연 통일은 의심의 여지없는 한반도 번영의 핵심일까? 우리는 통일할 준비가 돼 있는가? 입으로는 통일을 외치면서도 정작 그 앞을 가로막고 있는 북핵 문제의 심각성과 통일 이후의 엄청난 비용 등 부정적 문제들에 대해서는 한쪽 눈을 감고 있는 것은 아닐까?
감상적인 낙관론을 넘어
전 미육군특전부대(그린베레) 중령 출신의 고든 쿠굴루 저자는 한국전쟁 이후 지금까지 근 반세기 동안 동북아시아의 격변기를 몸소 체험하면서 파악한 한반도의 미래에 대한 고찰을 수기 형식으로 써내려갔다. 저자는 동북아 지역의 근대사와 남북한 일본 대만 중국과 미국의 역학적 관계를 재조명하고 그 속에서 한반도 통일에 대한 무수한 가설을 설정하며 최선의 선택을 모색했다.
주한미군으로 근무했던 개인적 일화와 더불어 남북 관계의 주요 사건들을 반추하며 저자는 국제 관계 속에서 남북 관계의 흐름을 날카롭게 분석해간다. 철저한 이방인인 동시에 평생 한국을 공부한 동료였던 저자는 한국에 대해 엄격한, 하지만 애정 어린 평가를 한다. 다소 미국적인 시각은 거부감을 줄 수 있지만, 적어도 감상적인 이론이나 근거 없는 낙관론에 빠지지 않는다는 것은 이 책의 장점이다.
세계의 장에서 논의돼야 할 화두
저자는 한국이 일본 제국의 침입으로 무참히 파괴된 채 20세기로 들어서게 된 배경, 40여년의 잔인한 식민 통치를 견디고 난 직후 38도선의 비극이 일어난 상황을 여러 각도에서 재조명하고 있다. 또 부존자원이 풍부했던 북한이 어떻게 스탈린식 독재에 물들면서 나락으로 떨어졌는지, 상대적으로 파악했던 조건의 남한이 어떻게 개발도상국의 역할 모델인 자유시장가 민주주의 체제를 구축할 수 있었는지 대조적으로 보여준다. 그리고 이는 테러와 암살, 그리고 기업 스파이 활동이 난무하는 근래의 정세 속에서 더욱 큰 의미를 가진다.
북한의 악명 높은 강제노동 수용소와 베일에 싸인 독재자 김정일 등 북한이 안고 있는 위협 요소들에 대해 저자는 지식 전달과 더불어 전망을 도출해 냈다. 쿠굴루는 김정일 정권에 맞설 수 있는 실현 가능한 정책들, 그리고 그것이 실패할 경우 초래되는 심각한 결과를 이론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한반도 통일은 ‘소원’이라는 민족의 감정적 문제를 넘어 세계의 장에서 논의돼야 할 화두다. 저자는 마지막 부분에서 한국에 대한 전폭적인 신뢰와 동시에 북한 정권의 붕괴, 이에 대한 남한 측의 충분한 대비만이 한반도 평화를 이룩할 수 있는 최선의 길임을 주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