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 황찬란한 서울의 도심을 걸으면서 나 자신이 외계인으로 느껴졌다.”
‘러시아에 남한 자동차가 넘쳐난다’는 종류의 소문에 매혹돼 평양에서 목숨 걸고 서울로 온 새터민(탈북자) 림일(38·CI 디자이너) 씨는 평양과 서울이라는 극심한 문화적 차이 속에서 현기증을 느꼈다고 한다. 림씨는 특유의 열정과 호기심으로 서울을 배워갔다. 그리고 7년이 지난 지금 그 현기증을 ‘웃음’으로 회고한다. ‘평양으로 다시 갈까?’(맑은소리 펴냄)는 림씨의 못 말리는 서울살이, 그 7년간의 기록이자 두 고향에 대한 애정을 담아 써내려간 연애소설이다.
서울 온 첫날부터 바뀐 이름
차별과 편견이 난무하는 남한 사회에서 망명자로 살아가는 일은 결코 녹녹치 않았을 터인데 림씨는 왜 자신의 ‘서울일기’에 ‘웃음도서’라는 ‘브랜드’를 붙였을까? “이 책을 구상한 것은 6·15 남북정상회담을 지켜보고서다. 두 정상들이 만나 웃는 모습이 가슴에 강한 울림을 주었다. 남북의 모든 사람들이 저처럼 만나서 웃을 수 없을까 생각했다.” 웃음은 곧 화해와 이해다.
쿠웨이트 주재 ‘조선광복건설회사’에서 근무 중 대사관을 통해 망명한 림씨는 남한 뉴스를 처음 보고 ‘잘 못 온 거 아닌가?’하는 고민에 잠 못 이뤘다고 한다. 좋은 소식만 전하는 북의 뉴스와는 달리 남한의 뉴스는 온통 쌈박질해대는 정치인과 엽기적인 범죄들뿐이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TV는 림씨에게 교과서였지만 남한에 대한 과장된 이미지를 심어주는 매체기도 했다. 여자가 남자의 뺨을 때리는 장면들이 하도 많아 겁에 질린 림씨가 방송국에 전화까지 걸었던 일화가 있다. 림씨는 남한 여자는 모두 드라마 속처럼 폭력적이냐고 물었다. 방송국의 대답은 솔직했다. “시청률 때문에….” 하지만 때로 TV는 희망을 보여주기도 했다. 불우이웃을 돕는 프로그램은 림씨를 감동시켰다. 빈부격차는 남한 사회의 상처지만 사랑이라는 치유법은 아름다웠다.
왜 여관에 목욕탕 마크가?
태극기 가운데 펩시콜라 로고에 의아해하고 ‘APT’를 ‘AP통신’로 오해하는가 하면, 여관과 목욕탕을 구분 못해 헤매야 했던 남한 생활은 어지럽지만 흥미로운 것이었다. 하지만, 새로운 문화적 환경에서 느끼는 림씨의 고단함은 그렇게 가벼운 것만은 아니었다.
망명과 함께 바뀐 이름은 림씨가 경험한 정체성의 혼란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서울에 온 첫날부터 림씨의 성은 ‘임’으로 바뀌었다. 두음법칙을 적용하는 남한의 어문법에 의한 것이다. “로또 뉴스는 정확히 쓰고 읽으면서 로동 녀성은 발음하기 어렵다니….” 림씨는 “세종대왕이 주신 한글이 정치적 이유로 둘로 나뉘었다”며 안타까워했다.
복잡한 남한 생활에 지칠 때 림씨는 ‘평양으로 다시 갈까?’라는 생각을 한다. 평양의 순수함, 인간적 미덕을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다. 림씨는 평양에 대한 이 같은 그리움을 이 책의 수익금을 ‘평양산원(북한 최대 산부인과 전문병원)’의 신생아들과 산모들을 위해 내놓는 것으로 표현했다.
마지막으로 림씨에게 “이젠 남한 사회에 적응했나?”고 물었다. “아직도 힘들다. 앞서가야 하는데 늘 뒤처지는 느낌이라 초조하다.” 림씨의 이 말에 “자본주의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늘 그런 생각으로 피곤하다”고 대답하지 않을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