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사뉴스 정춘옥 기자] 제2차 세계대전을 ‘호흐슈타플러’로 산 세 사람의 삶을 추적한다. 호흐슈타플러는 사기꾼, 허풍쟁이, 협잡꾼쯤으로 번역되는 독일어로 도덕적 질타를 불러일으키면서도 고개를 갸우뚱거리게 하는 모순투성이 삶을 산 이들이다.
선과 악의 양면성
저자는 도덕저 서사에 딱 부합하지 않는 세 명을 통해 부역의 문제를 반추해보자고 말한다. 펠릭스 케르스텐. 그는 나치 친위대 SS의 수장 힘러의 개인 마사지사였다. 그는 나치 체제에 기꺼이 적응하면서 ‘행복을 폭식’했던 인물이다. 하지만 전쟁 말기 독일의 패색이 짙어지자 케르스텐은 살길을 도모해 진영을 바꿨다. 그는 유대인에게 도움을 주는 방식으로 움직였고, 심지어 힘러를 설득해 다른 수감자들을 석방시키려는 위험한 시도까지 했다.
이런 양면성을 가진 케르스텐을 어떻게 평가해야 할까? 저자는 ‘그는 틀림없는 나치 부역자였다’고 본다. 그는 나치주의자가 아니었지만 그런 계층의 인간들을 섬기는 신하였다. 따라서 그의 선과 악은 우리의 세밀한 도덕적 의식과 평가에 따라 그 무게와 양상이 달라질 수 있다.
같은 시기에 동양에서는 요시코라는 인물이 사람들 입에 오르내렸다. 만주족 공주였던 그녀는 아버지가 일본인에게 수양딸로 보내자 일본과 중국을 오가는 삶을 살게 된다. 요시코는 남장 복장을 하는 크로스 드레서였고, 남자/여자와 모두 연인관계를 맺으면서 이 사실로 신문지상을 달구었다. 일본 육군 장교 다나카 류키치와 변태적인 관계를 유지하면서 스파이 활동을 하고, 지즈코라는 일본 여성에게 ‘내 아름다운 아내’라고 불렀다. 게다가 그녀는 일본인들이 무뢰배라면서 그들의 실패한 정책을 입에 올리다가 입장을 바꿔 새로운 아시아를 건설하려는 그들의 노력을 영웅적 행동이라고 치켜세우는 등 양극단을 오가는 버릇이 있었다.
그녀는 나라를 배신한 스파이였지만 동시에 근거 없는 혐의를 뒤집어쓴 희생자기도 했다. 요시코는 허언증이 있었고, 그녀의 삶은 소설이나 영화로 많이 각색됐다. 1947년 10월 5일 법정에서 나열된 요시코의 수많은 범죄 목록에는 창작물에 등장한 행위도 포함됐다.
두려움, 오만함... 또는 ‘그냥’
바인레프는 유대인이었다. 하지만 유대인 사회에서 그의 위치는 분류하기가 애매했는데, 가난한 유대인 이민자에 속하지만 스스로는 문화적 소양이 높다고 여겼고, 여타 유대인과 달리 독일계 유대인에 더 동질감을 느꼈으며 우월의식을 가졌다. 그는 돈 받고 유대인들을 나치에 팔아넘긴 존재다. 돈 많은 유대인들은 절박하게 바인레프만 믿고 구출 명단에 이름을 올림으로써 살아남으려 애썼다. 바인레프는 틀림없이 유대인을 구했지만, 너무 많은 거짓말을 하고 돈을 챙겼으며, 결국 그 유대인들은 수용소로 보내졌다.
이 책에 소개된 인물들 외에도 많은 사람이 저마다의 이유로 부역 행위를 했다. 하지만 저자는 전후 가장 덜 심각한 부역 행위를 한 일부 사람에게 가장 가혹한 보복이 가해졌다고 말한다. 바로 적군과 동침한 여성들이다. 이들 여성은 편안함, 욕망, 외로움, 사랑 등의 이유로 적군과 관계를 맺었지 심오한 이념적 헌신 때문에 그런 경우는 거의 없었다. 하지만 군중은 이 여성들의 머리를 박박 깎고 오물을 뒤집어씌우고 침 뱉고 강간까지 했다. 부패한 관료, 문제 많은 과거를 지닌 의사나 정치인들은 별문제 없이 신흥 엘리트나 고위층이 됐던 것과는 다르다. 이 책의 부역자 셋은 진실 속에서 삶을 살지 않았고 허구 속에서 생을 연장했다. 그랬던 이유는 두려움, 오만함 같은 감정 때문일 수도 있고, 혹은 별 이유 없이 그랬을 수도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