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사뉴스 정춘옥 기자] BBC 기자이자 음식 저널리스트인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우리가 잊었거나 존재조차 몰랐던 총천연색의 음식들을 소개해준다. 저자가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취재한 결과물인 이 책은 음식과 음식에 얽힌 역사, 정치, 문화, 공동체, 풍미에 관한 흥미로운 사연들을 함께 들려준다.
34가지 이야기 만찬
곡물, 채소, 해산물 육류, 디저트 등 책에 등장하는 34가지의 풍요로운 음식과 동식물은 각기 다른 방식으로 인류와 함께해왔다. 각각의 음식에 실타래처럼 얽혀 있는 역사,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 사연들이 화려한 향연의 풍미 넘치는 만찬처럼 펼쳐진다.
초기 수렵채집인의 원형을 가장 잘 간직하고 있는 아프리카 동부의 하드자족은 꿀을 특별한 방법으로 채취한다. 벌꿀길잡이새라는 작은 새와 협업을 하는 것이다. 새는 바오바브나무 가지 사이에 숨겨져 있는 벌집을 찾을 순 있지만, 벌들을 제압할 수 없다. 반면 인간은 벌집을 찾아내기 힘들지만 찾아내기만 한다면 연기를 피워 벌들을 제압하고 꿀을 얻을 수 있다. 이 둘의 거래는 인간과 야생동물 간에 맺어진 가장 복잡하면서 생산적인 파트너십이다.
인류의 운명을 바꾼 음식도 있다. 굴이 없었더라면 오늘날 인류는 아무도 살아 남지 못했을 수도 있다. 16만 년쯤 전 기후변화로 인류의 인구는 1만 명에서 200 ~ 300명으로 대폭 줄어들었다고 추정된다. 멸종 위기에 내몰린 인류를 구해준 것은 해산물이었다. 생존자들은 조개와 굴을 먹고 살아남았다. 굴에는 아연, 요오드, 아미노산이 풍부해서 호모사피엔스의 두뇌 기능을 개선했다. 진화 역사에서 호모사피엔스는 굴과 함께 진화하고 적응한 셈이다.
세계화와 대량생산이 가져온 음식의 종말
저자는 또한, 전 세계 각지에서 수천 년에 걸쳐 만들어진 음식들이 사라지는 비극을 증언한다. 인류는 20세기 중반 녹색혁명을 통해 기근을 예방하고 10억 명 이상의 생명을 구한다는 목표를 완벽하게 달성했다. 그러나 지구는 이제 그 무거운 대가를 치르고 있다. 새 품종은 수확량이 늘어난 만큼 많은 물과 비료를 필요로 해서 자원을 고갈시켰다. 녹색혁명은 세계를 먹여 살리기 위한 장기적인 해결책이 아니었지만, 세계는 이 임시방편의 시스템에 갇혀 버렸다.
이 책은 대량생산과 효율성만을 위해 개량된 극소수의 종에 기대고 있는 오늘날의 위태로운 식량 시스템에 대해 묵직한 경고의 메시지를 던진다. 우리가 지구를 폭력적으로 지배한 결과, 식물과 동물 100만 종이 멸종 위기에 몰려 있다. 인류는 어마어마한 단일경작 품종을 심기 위해 넓은 삼림을 밀어버리고, 그 땅에 뿌릴 비료를 만들려고 하루에 수억 리터의 기름을 태우고 있다. 대양의 90퍼센트가 이미 변형돼 해양의 야생성이 사라지고 있다. 더 중요한 것은 유전적으로 단일한 식물을 재배하게 유도해서 소수의 엘리트 품종을 제외한 토착 품종들이 모두 사라질 위기에 처한 것이다. 우리는 생물다양성을 파괴하는 한편 소수의 작물을 대량생산하는 방식을 위해 강과 저수지에서 엄청난 분량의 물을 끌어다 쓰고 있다. 이는 미래의 자원을 빌려 쓰는 갚을 수 없는 빚이다.
저자는 현재의 소품종 대량생산의 시스템이 붕괴하기 전에 이를 보완해야 하며, 더 늦기 전에 그 대안으로 사라져 가는 음식들과 그 가치에 주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카발자 밀과 메망나랑 감귤은 생산성이 떨어지는 시대착오적인 품종으로 취급받았지만 이들이 가진 질병에 대한 저항성이 재발견되고 있다. 카인자 바나나는 복제체라는 캐번디시 품종의 치명적인 약점을 극복할 수 있다. 저자는 음식이 단순히 생존을 위한 먹거리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정체성과 깊은 관계를 맺는다는 사실을 강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