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사뉴스 강민재 기자 ] 김명수 대법원장은 2017년 취임사를 통해, “‘좋은 재판’의 실현을 최우선의 가치로 삼아 필요한 개혁의 과업을 차분하고 진중하게 추진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취임후 3년이 지난 지금에도 사법부의 선택적 정의, 선택적 공정이라는 단어가 오르내리고 있다. 특히 재벌 회장들에 대한 재판은 일반 국민들의 재판과는 판이하게 진행되고 있다.
중앙지법, 재판 일정도 안잡아

대표적인게 김준기 전 DB그룹 회장의 성범죄 항소심 재판이다. 서울중앙지법 형사1-1부에 계류중인 항소심은 지난 5월 12일 접수가 되었다. 반 년 전에 접수된 사건에 대해 진행된 재판 절차가 없다. 변동이 있는 것이라고는 김 전 회장의 국선변호인이 선임됐다 취소되고, 유명 로펌의 변호사들이 선임된 것 말고는 없다.
구속 상태에서 진행됐던 김 전 회장의 지난 1심 재판은 5개월도 안돼 선고가 내려졌다. 그리고 바로 석방됐다. 항소심과의 차이점이라고는 구속상태였다는 것 밖에는 없어 보인다.
김 전 회장과 유사한 성범죄로 기소됐던 배우 강지환(43·본명 조태규)씨의 경우에는 항소심을 지나 5일 대법원에서 징역형의 집행유예가 확정됐다.
서초동의 한 변호사는 “형사사건에서 이렇게 재판절차가 진행되지 않는 것 자체가 이례적”이라며, “김 전 회장이 재벌출신이라는 것이 특별한 이유인 것 같다”고 전한다.
김 전 회장의 1심 재판과정에서 드러난 범죄 행위만 20대 비서 성추행 29차례, 가사도우미 성폭행과 성추행 13차례다. 결코 가볍지 않은 범죄다. 김 전 회장은 지난 2016년부터 2017년 사이 별장의 가사도우미를 성폭행하거나 비서 등을 강제로 추행한 혐의 등으로 재판에 넘겨졌다.
검찰은 피해자들이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에서 김 전 회장의 범행을 거부할 경우 불이익이 염려돼 거부하기 어려운 지위에 있었고, 김 전 회장이 이 같은 지위를 이용해 위력으로 간음한 것으로 보고 있다.
사실상 도피행각에도 재벌 봐주기 3 · 5 법칙 입증

김 전 회장은 2017년 7월 질병 치료 명목으로 미국으로 떠났다가 출국 이후 성추행 의혹이 불거져 회장직에서 물러났지만 곧장 국내로 돌아오지는 않아 약 2년 동안 수사가 진척되지 못했다.
사실상 도피행각을 벌이던 김 전 회장은 지난해 10월 22일 인천국제공항을 통해서 귀국했다. 출국한 지 약 2년 2개월 만으로 김 전 회장은 공항에서 바로 체포돼 조사를 받았고 검찰은 김 전 회장을 구속기소 했다.
당시 서울중앙지법 형사16단독 이준민 판사는 지난 4월 17일 피감독자간음 및 강제추행 등 혐의로 기소된 김 전 회장에게 징역 2년 6개월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하고 김 전 회장은 석방했다.
이 판사는 ▲피해자의 진술 신빙성이 높고 ▲성추행, 성추행 또는 성폭행 사실을 인정했으며 ▲지시 복종 관계와 피해자의 약자적 위치 ▲범행 후 2년간 해외 도피 정황 등을 모두 인정했음에도 불구하고, 피해자의 합의와 75세라는 나이만을 이유로 집행유예를 선고한 바 있다.
재벌에게는 너그러운 재판 일정

이러한 경향은 비단 김준기 전 회장 뿐 만이 아니다.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또다른 재벌회장 재판에서도 비슷하게 나타났다. 오죽했으면 공판검사가 기소유지 의견에서 특별한 쟁점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4차례나 준비기일을 열었음을 거론하며, 빠른 재판진행을 재판부에 촉구했을 정도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판부는 변호인의 의견을 물어 한달에 한 번 진행하는 걸로 결론을 내렸다. 예상되는 증인만 30명이 넘는 상황에서 재판일정이 늘어질 것은 자명하다.
김명수 대법원장은 취임사 말미에 “사법부가 국민에게 드릴 수 있는 최고의 보답은, 독립된 법관이 공정하고 충실한 심리를 통하여 정의로운 결론에 이르는 ‘좋은 재판’임을 다시 한번 가슴에 새긴다”고 강조했다. 대법원장 임기의 반환점을 돈 지금, 김 대법원장의 선언은 재벌에게는 공염불에 불과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