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뉴스 김수정 기자] 박근혜 대통령의 비선 실세로 지목된 최순실씨 등 국정농단 주범들의 재판이 지난 5일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국정농단' 혐의로 기소된 최순실씨와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이 혐의를 전면 부인하고 있어 향후 재판과정에서 검찰과 치열한 법리공방이 펼쳐질 전망이다.
이달 5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 417호에서는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2부(부장판사 김세윤) 심리로 최순실(61)씨와 안종범(58)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 정호성(48) 전 청와대 부속비서관에 대한 1차 공판이 열렸다. 국정농단 사태와 관련해 이들이 한 자리에서 조우를 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최씨와 안 전 수석, 정 전 비서관은 모두 수의를 입은채 법정에 들어서 변호인 옆에 자리했다. 최씨는 피고인석에 앉을 때까지 줄곧 고개를 숙이고 있었고, 안 전 수석과 정 전 수석은 허리를 세우고 정면을 응시하는 모습을 보였다.
최순실 "억울한 부분 많다"
檢 "박 대통령과 공모 증거 차고 넘쳐"
이날 공판에서는 검찰과 변호인 측의 거센 공방이 펼쳐졌다. 핵심 쟁점은 박 대통령과 최순실씨의 범행 공모 혐의다. 이들은 혐의를 강하게 부인했다. 반면 검찰은 "박 대통령과 공범관계라는 증거가 차고 넘친다"며 강하게 반박하고 나섰다.
이날 최씨 측 변호를 맡고 있는 이경재(68·사법연수원 4기) 변호사는 안 전 수석을 전혀 모른다고 주장했고, "최씨는 대통령, 안 전 수석과 공모해 미르·케이스포츠 재단의 모금을 하려 한 적이 없다"며 "양측 재단 출연금 모금에 관여한 바 없고, 이 법정에 이르기까지 금전적 이익을 취한 바도 없다"고 밝혔다.
이어 검찰이 최씨와 안 전 수석 사이의 공모 관계를 인정할 수 없게 되자 대통령을 공모관계 중개인으로 넣은 것이라며 두 재단을 통해 어떠한 이익도 취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이날 함께 기소된 안 전 수석 측 변호인은 "안 전 수석은 재단 등을 이용해 사적인 이득을 취하려 한 사람들과는 명백히 구별돼야 한다"며 "문화·체육 발전은 대통령 공약사항으로, 안 전 수석은 연장선상에서 지시를 내린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플레이그라운드를 KT 광고대행업체로 선정해달라고 요구한 사실이 없다고 전면 부인했다.
그러자 검찰은 "수사기록이 증거자료로 방대하고 자신이 운영하는 더블루케이와 플레이그라운드 스포츠케이를 통해 어떻게 돈을 빼돌렸는지 자세히 나와 있다"면서 "공소장을 기재할 때는 나라의 격을 생각해 최소한의 사실만을 기재한 것"이라고 반박했다.
그러면서 "'대통령과의 공모관계를 억지로 끼워맞춘 게 아니냐'는 말을 하는데 대통령과 공범이라는 증거는 차고 넘친다"며 "법정에서 모든 걸 다 입증할 계획"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와 함께 검찰은 청와대 유출문건 257건과 대통령 취임 이전 박 대통령과 최씨, 정 전 비서관과의 대화를 녹음한 6시간30분 분량의 파일도 증거로 제출하며 앞으로의 치열한 공방을 예고했다.
양측의 신경전은 증거조사 과정에서도 계속됐다. 변호인 측이 앞서 증거로 쓰이는데 동의했던 '비선 실세' 관련 기사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입장을 번복하자 검찰이 불편한 심경을 드러낸 것이다. 일단 재판부는 증거조사가 끝나기 전까지는 의견을 번복할 수 있다며 언론 보도 내용을 증거에서 제외하기로 했다.
재판부는 이날 이승철 전국경제인연합회 부회장, 고영태 전 더블루케이 이사 등에 대한 향후 증인신문 기일을 지정했다. 오는 11일에는 이 부회장, 19일에는 이용우 전경련 본부장 및 김형수 전 미르재단 이사장, 20일에는 정현식 전 케이스포츠재단 사무총장과 이한선 전 미르재단 상임이사가 증인신문할 예정이다.
이후 오는 24일에는 노승일 전 케이스포츠재단 본부장과 최상목 기획재정부 1차관, 2월6일에는 박헌영 전 케이스포츠재단 과장과 김성현 미르재단 사무부총장, 27일에는 고 전 이사와 이성한 전 미르재단 사무총장, 13일에는 조모 전 더블루케이 대표이사를 소환할 예정이다. 재판부는 2월13일 이후 매주 월 화 2회 재판으로 이 사건을 집중적으로 심리할 예정이다.
한편 최씨는 직권남용과 강요, 강요미수, 사기 미수 등의 혐의로, 안 전 수석은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및 강요, 강요미수 등의 혐의로 기소됐다. 최씨와 안 전 수석은 박 대통령과 공모해 전경련 회원사인 대기업을 상대로 미르·K스포츠재단 설립 과정에서 774억원의 출연금을 강제로 내도록 했다는 혐의 등을 받고 있다.
정 전 비서관은 박 대통령과 공모해 2013년 1월 정부 출범 직후부터 지난해 4월까지 정부부처와 공공기관 고위직 인사안 등 총 180건의 청와대 문건을 이메일과 인편, 팩스 등을 통해 최씨에게 유출한 혐의로 기소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