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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특집]“나도 당할 수 있다”…‘묻지마 범죄’ 공포 확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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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자 15% 범인과 모르는 사이…절반이상 길거리 등 공공장소서 발생

[시사뉴스 이상미 기자]지난3월28일 대만의 수도 타이베이(臺北)에서 벌어진 엽기적인 사건에 전 세계가 경악했다. 엄마와 함께 길 가던 4세 여자아이가 돌연 목이 잘려 살해된 것. 범인은 피해자와 일면식도 없는 사이였다. 피해자는 그 현장에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영문도 모른 채 당해야만 했다. 범행의 이유가 없고 대상이 불분명한 전형적인 ‘묻지마 범죄’였다. ‘묻지마 범죄’는 우리나라에서도 더이상 남의 일이 아니다. 내가 혹은 내 가족이 어느날 갑자기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불안감이 사회적으로 갈수록 확산되고 있다.

지난 17일 새벽 서울 서초구의 한 주점 화장실에서 살해된 직장인 A씨(23·여) 역시 묻지마 범죄의 피해자다. 상대에게 어떤 위해를 가하기는커녕, 정신분열증을 앓고 있던 범인 김모(34)씨와 일면식도 없는 사이였다.

지난달 17일 광주 어등산 등산로에서 김모(48)씨가 휘두른 흉기에 찔려 숨진 이모(65)씨도 마찬가지다. 쉼터에 앉아 휴대전화 통화를 하던 이씨가 '운 나쁘게' 김씨의 눈에 띄었을 뿐이다. 당시 산을 배회하며 등산객들을 흉기로 위협했던 김씨는 이씨가 자신을 경찰에 신고한 것으로 오인하고 무참하게 죽였다.

택시를 기다리다 갑작스럽게 봉변 당한 케이스도 있다. B(41)씨와 C(53)씨는 3월21일 오후 서울 성동구의 한 횟집 앞에서 이 횟집 주인인 김모(37)씨가 휘두른 흉기에 찔렸다. 장사가 잘 안돼 스트레스를 받았다는 게 횟집 주인의 범행 이유였다.이 같은 묻지마 범죄는 해마다 증가 추세다. 특히 순간의 화를 다스리지 못해 홧김에 저지르는 경우가 빈번하다.

대검찰청에 따르면 최근 3년(2012~2014년)간 발생한 묻지마 범죄는 163건에 달한다. 매년 50여건이 지속적으로 발생하는데 최근 들어 그 횟수가 더 늘고 있다는 게 검찰과 전문가들의 공통된 판단이다. 범죄 원인으로는 '현실 불만'이 24%였다. 4건중 1건 꼴이다. 정신질환(36%)과 알코올·약물 중독(35%)까지 합하면 그 비율은 95%에 달한다. 

또 분노 조절 실패 범행 피해자의 15%가 피의자와 면식관계(얼굴을 서로 알 정도의 관계)가 아닌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범행 장소도 전체의 61.5%가 길거리나 공공장소였다.

◆이상범죄 피의자 절반이상 정신질환 이력

묻지마 유형 등 이상범죄 피의자 중 절반 이상이 정신질환을 앓았던 것으로 나타났다.

19일 경찰청이 최근 발간한 ‘한국의 이상범죄 유형 및 특성’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까지 발생한 총 46건의 이상범죄 가운데 25건(54.3%)의 피의자가 정신질환을 앓았다.

해당 보고서에는 2006년부터 지난해까지 발생한 묻지마 유형(21건), 분노조절실패유형(13건), 기타(12건) 등 46건에 대해 분석한 내용이 담겼다. 유형별로는 묻지마 유형 21건 중 13건(61.9%), 분노조절실패유형 13건 중 5건(38.5%), 기타 12건 중 7건(58.3%)의 피의자들에게서 정신질환이 발견됐다.

이중 순수 망상이나 환청 같은 정신질환에 의해 발생한 범죄는 18건(39.1%)으로 주로 정신분열(13건·72.2%) 진단이 가장 많았다.

정신분열을 앓은 피의자의 경우 주로 환청이나 망상 내용으로 인해 생활이 불편하고 힘들어한 것으로 조사됐다. 특이점으로는 과거 전과가 전혀 없는 사람이 장기간 약물 치료 중에 자의로 약물 복용을 중단한 상황에서 범죄가 발생한 경우가 많았다.

이상범죄의 피해자들을 성별로 살펴보면 전체 46명 중 여성이 29명(63%)으로 남성(8명·38.1%)보다 많았다. 또 범행에서 주로 사용된 도구는 칼(28건)이 가장 많았고 나뭇가지나 쇠파이프 등 기타류가 9건, 주먹 6건, 둔기가 3건이었다.

앞서 지난 17일 오전 1시25분께 서울 서초구의 한 노래방 화장실에서 김모(34)씨가 여성 A(23)씨를 수차례 칼로 찔러 살해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김씨는 "여자들에게 무시를 많이 당해 왔는데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범행을 저질렀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 조사과정에서 김씨는 과거 정신질환으로 4차례 입원한 사실이 확인된 바 있다. 김씨는 또 올 1월 초 퇴원할 당시 주치의로부터 "약을 복용하지 않으면 재발할 수 있다"는 진단을 받았으나 3월 말 가출 이후 약물을 복용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여성노린 ‘묻지마 범죄’ 대책 시급하다

이에 대해 임준태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피해자와 가해자의 관계를 추정할 수 없는데다 일반적인 범죄 예방 정책으로 컨트롤 할 수 없다는 게 묻지마 범죄가 심각한 이유”라며 “이런 범죄 유형은 계속 늘어날 수 밖에 없는데, 부의 불균형과 경쟁 심화로 인한 정신적 압박이나 고통을 해소하기 어려워진 현실 등이 범죄 발생 가능성을 높인다”고 설명했다.

범행 수법이 날로 흉포·상습화하고 있다는 점도 문제다.  지난해 서초구 내곡동의 훈련장에서 동료 예비군 3명에게 총을 쏘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예비군 최모(24)씨나 이른바 '트렁크 시신' 살인 사건으로 재판을 받고 있는 김일곤(49)씨가 대표적이다.

전문가들은 한국의 집단주의 문화와 스트레스에 취약한 이들을 끌어안지 못하는 사회 시스템에 근본 원인이 있다고 지적한다.

곽금주 서울대 사회심리학과 교수는 “묻지마 범죄는 경제 발전과 동시에 발생하는 실패와 불평등이란 부작용이 촉발시키는 '선진국형 범죄'지만, 개인주의 성향이 강한 서구와 달리 한국은 집단에 소속돼 서로 비교하는 문화가 있어 더 극심한 것 같다”면서 “사회에서 소외된 그들의 스트레스를 제대로 다뤄야 한다”고 언급했다.

정신질환이나 음주로 인한 심신미약·상실 범죄자를 감형할 게 아니라 치료를 거부하거나 단순히 술을 마시고 감정이 격해져 죄를 지었다면 가중 처벌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곽 교수는 “정신질환이 분명하다면 처벌보다는 치료가 우선돼야 하며 정부는 치료에 적극 개입해야 한다”면서도 “일정 수준 이상 제재 수위가 높아져야 사회가 보다 안전해질 것”이라고 전했다.

박성철 백석대 법정경찰학부 교수는 “심신미약·상실은 타당한 경우에 한해 엄격하게 적용해야 한다. 국가가 공정성을 잃은 행위를 보일 때 사람들은 더 절망해 불신이 커지게 된다”면서 “사회적 위험성을 고려해 가중 처벌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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