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뉴스 이경숙 기자]국립무용단의 신작 '시간의 나이'에는 비키니 수영복을 입은 여성과 한국 전통복차림의 남성이 분홍 우산을 함께 쓰고 등장한다. 이들 앞에서는 하얀 한복을 입은 여성 무용수가 전통춤을 선보이고 있다. 이어 여러 무용수들이 한국무용에 엔진을 단 듯한 역동적인 동작들을 펼친다.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의 크나 큰 무대를 가득 채운 대형 스크린에는 꿈을 꾸고 있는 여성이 나온다. 그녀는 꿈 속에서 역시 비키니를 입고 있다.
한·불 수교 130주년을 기념하는 '2015~2016 한불 상호 교류의 해'의 '한국 내 프랑스의 해' 개막작으로 23일 오후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첫 선을 보인 '시간의 나이'에서 현대와 전통, 현실과 상상이 어우러지며 공존하는 마법 같은 순간이었다.
프랑스의 세계적인 안무가 겸 연출가 조세 몽탈보(62)는 한국무용 속에서 모던함을 끄집어내는데 성공하며 국립극장이 표방하는 전통의 현대화를 몸소 실현시켰다.
몽탈보는 이날 약 70분간의 공연이 끝난 뒤 해오름극장을 가득 채운 1500명의 박수를 받으며 커튼콜에서 활짝 웃었다. 이후 만난 그는 "수영복을 입은 여성은 현대, 전통복을 입은 남성은 전통을 상징하는데 우산은 그 아래에서 공존하며 서로를 지켜주자는 의미"라고 말했다.
파격적인 비키니 의상은 앞서 이 작품의 포스터에도 등장하며 눈길을 끌었다. 몽탈보는 "억압된 여성성을 해방시키는 의미도 있다"며 "현대에 여성들의 입지는 나아지고 있다. 발전한 문명에서는 여성들의 권리도 그 만큼 인정해준다"고 말했다.
국립극장의 전속단체 국립무용단과 프랑스 샤이요 국립극장이 공동제작한 '시간의 나이'는 올해 상반기 무용계의 최대 기대작으로 이날 베일을 벗은 즉시 이름값을 확인했다. 다양한 상징과 은유가 넘치는 가운데 한국 전통무용에서 순간순간 엿볼 수 있는 현대적인 동작들은 파격적이었다. 이방인의 새로운 시선이 더해져 새롭게 나올 수 있는 해석이었다.
팔이 주는 곡선, 몸의 각도를 사선으로 사용하는 것이 전통적인 춤의 기법인데 곡선과 사선은 물론 다양한 각도로 내뻗는 팔과 다리, 몸은 역동성을 느끼게 했다.
결국 이 같은 에너지는 춤의 순수성으로 회귀한다. 남자 무용수, 여자 무용수들이 고릴라 동작 등을 흉내내며 서로를 향해 '룩 앳 미'를 외치는 것 역시 마찬가지다. 몽탈보는 "서로 날 좀 봐달라는 뜻인데 아이스런 면모가 부각된다. 때 묻지 않은 면을 강조하려고 했다"며 웃었다. 영상 속에서도 아이들이 등장한다.
무용수 대다수가 전통복을 입지 않고 알록달록 현대복을 입고 나오는 점도 눈길을 끈다. 대신 영상 속에서는 같은 무용수들이 전통복을 입고 있다.
몽탈보는 "한국무용수 역시 전통춤을 추는 사람이기에 앞서 현재를 살아가는 이들이다. 그런 삶의 빛의 느낌을 표현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두 문화가 만나는 것 자체가 도전인데 용기를 내준 국립극장 등 한국 관계자들에게 감사한 마음을 표한다"고 덧붙였다.
27일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공연한 뒤 6월 16~24일 샤이요 국립극장 '포커스 코리아' 프로그램의 마지막을 장식한다. 2만~7만원. 국립극장 02-2280-41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