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뉴스 천세두 기자]“‘멜론’은 SK가 키웠지만 결실은 홍콩계 사모펀드가 챙겼다.” 카카오가 멜론을 운영하는 로엔을 1조8700억원에 인수함에 따라 공정거래법의 경직적인 출자 규제에 대한 비판 여론이 고개를 들고 있다.
공정거래법은 기업들의 문어발식 확장을 막기 위해 지주회사의 손자회사가 자회사를 거느릴 경우 지분을 100% 보유하도록 의무화하고 있다. 대기업 그룹이 자기자본을 몇 푼 들이지 않고 무차별적으로 자회사를 늘려나가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자회사를 세우려면 100% 자기자본을 동원하라는 얘기다. 하지만 이 같은 규제는 기업의 신사업 진출을 억제하고 신성장동력 확보를 어렵게 한다는 지적이다.
SK그룹이 2013년 멜론을 매각하기 전까지는 SK그룹→SK텔레콤→SK플래닛→로엔엔터테인먼트의 출자 고리를 형성했다. 하지만 SK플래닛이 로엔엔터테인먼트 지분 100%를 기간 내 확보하지 못하면서 알토란 같은 로엔 지분을 2013년 홍콩계 사모펀드에 넘겨줘야 했다. 사모펀드는 2년여만에 멜론을 다시 카카오에 넘기면서 1조2000억원의 시세 차익을 챙겼다.
이에 따라 증손회사 지분 100% 규정을 완화하거나, 지분 확보보다 자회사의 성장성을 고려하는 경영 선택이 이뤄지도록 공정거래법을 개선해야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카카오의 로엔터테인먼트 지분(76.4%) 인수에 따른 최대 수혜자는 1대 주주인 스타인베스트홀딩스다. 스타인베스트홀딩스는 홍콩계 사모펀드 어피너티가 만든 특수목적법인이다.
스타 인베스트 홀딩스는 카카오에 로엔 지분을 넘기면서 1조2000억원대 시세 차익을 얻었다. 반면 로엔의 대표 서비스 멜론을 음원 시장 1위에 올려놓은 SK텔레콤은 허탈한 표정만 지었다.
로엔은 1978년 설립된 서울음반을 모태로 성장했다. 2005년 SK텔레콤이 콘텐츠 사업 강화를 위해 서울음반 지분 60%를 매입하면서 '멜론'이 탄생했다. 2008년 SK텔레콤이 멜론 영업권을 자회사인 서울음반에 양도했고, 서울음반 사명을 '로엔엔터테인먼트'로 변경했다.
로엔엔터와 멜론은 SK텔레콤의 시장 1위 점유율을 발판으로 전자 음원 시장을 빠르게 선점했다. SK텔레콤도 멜론을 마케팅 수단으로 활용하며 가입자를 끌어모았다. 멜론은 현재 무려 2800만 가입자를 보유하고 있다.
로엔엔터테인먼트는 2011년 SK텔레콤이 플랫폼 사업 강화를 위해 물적분할한 SK플래닛으로 소속이 바뀌었다. 이후 'SK그룹→SK텔레콤→SK플래닛→로엔엔터테인먼트'의 출자 고리가 형성됐다.
그러나 공정거래법이 발목을 잡았다. 지주사의 손자회사가 증손회사의 지분 100%를 보유해야 한다는 규정으로 SK는 '로엔의 지분을 100% 확보할 것이냐 말 것이냐' 고민에 빠졌다. 선택은 매각이었다.
결국 로엔은 2013년 사모펀드 어피너티에 넘어갔다. 당시 SK플래닛은 로엔 지분 52.56%를 로엔의 현 대주주인 스타인베스트홀딩스에 팔았다. 당시 금액으로는 2659억원이다
약 2년 만에 로엔은 카카오에 1조8700억원에 팔리며 카카오 자회사로 편입됐다. 스타인베스트는 로엔 지분 61.4%를 1조5000억원에 되팔아 조2000억원이 넘는 시세 차익을 남기게 됐다.
결과만 놓고 보면 SK텔레콤 입장에서는 아쉬워할 만하다.
IT 업계에서는 SK플래닛이 2013년 로엔을 매각하기로 한 결정이 섣불렀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수감 이슈도 로엔 매각 결정에 악재로 작용했다는 분석도 있다.
이상승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기업의 출자 과정에서 가공자본 형성에 따른 부작용을 막기 위해 기업의 출자를 사전 규제하기보다는 사후 제재를 강화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전했다.
김미애 한국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공정거래위원회의 지주회사 출자 제한은 대기업의 문어발식 사업 확장과 피라미드 경영 구조를 막기 위한 것"이라며 "다만 자회사 지분 100% 규정의 기준과 실효성에 이견이 많고, 사업 개편이 기업의 전망과 경쟁력보다 지분율에 얽매이는 오산이 많아 현행 공정거래법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