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뉴스 강철규 기자] 유럽 난민 위기 사태에 대한 우려가 확산되고 있지만 유엔(UN) 산하 관련 기구들의 기금이 바닥을 드러내면서 제 역할을 못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대부분 기금 운영을 자발적인 기부금에 의존하면서 필요한 지원을 제 때 못하는 취약성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이 때문에 모금 방식의 시스템 자체를 근본적으로 개선해야 한다는 주장에 힘이 실리고 있다.
유엔의 인도주의적인 기관들이 중동, 아프리카, 유럽의 난민 위기 사태로 파산 직전까지 몰리면서 수 백만 명의 기본적인 요구를 충족하지 못하고 있다고 UN 내부의 고위 인사가 6일 영국 일간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밝혔다.
가디언에 따르면 음식과 의료품 부족 등으로 상황이 악화되고 있는 레바논과 요르단은 시리아를 탈출한 400만 명의 난민들을 감당할 수 없는 상태이다.
안토니오 구테레스 유엔난민기구(UNHCR) 최고대표는 "분쟁으로 인해 피난길에 나선 사람들이 2010년에는 매일 1만1000명이었지만 2014년에는 매일 4만2000명이었다"며 "이는 곧 주거지부터 물, 위생시설, 음식, 의료원조, 교육을 필요로 하는 궁핍한 사람이 상당히 증가한 것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그는 "(유엔난민기구)예산은 난민 증가율과 비교할 수 없다"며 "올해 수입은 지난해보다 약 10% 줄어들 것"이라고 전망했다.또 "우리는 재정적으로 파산상태"라고 전했다.
실제로 난민에 대한 원조 필요성은 급증하는 반면 예산은 이러한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면서 예산 부족으로 인한 문제가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최근 몇 개월간 케냐에 있는 소말리아와 수단 난민뿐만 아니라 레바논과 요르단에 있는 시리아 난민을 위한 식량 배급이 삭감됐다. 아프리카 차드 공화국의 난민촌에 머물고 있는 수단 다르푸르인들은 올해 연말이면 배급이 완전히 끊길지도 모른다. 유엔이 지원하는 의료서비스도 이라크 대부분 지역에서 중단됐다.
이러한 예산 삭감으로 인한 손해는 되돌리기 불가능할 것이라고 구테레스 최고위원은 경고했다.
그는 "우리는 난민들의 기본적인 요구를 충족시키는데 실패했다는 것을 알고 있다"며 "상황은 돌이킬 수 없는 너머에 있다. 영양실조와 심리사회적인 지원의 부족으로 충격을 받은 어린이의 삶은 이미 진행중인 것을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유엔의 인도주의 활동의 대부분은 유엔난민기구(UNHCR), 유니세프(Unicef)와 같은 전문기구나 개별 정부들과 개인 기부자의 자발적인 기부에 의해 전적으로 자금지원을 받는다.
현재의 글로벌 인도주의 기금 예산은 195억2000만 달러로 겨우 71억5000만 달러만 국제 기부를 통해 모아졌다. 시리아 난민을 지원하기 위해 필요한 예산은 13억 달러인데 모금액은 35%만 마련됐다.
전문가들은 시리아, 이라크, 예멘, 중앙아프리카공화국의 상황이 모두 악화되고 있으며 장기적으로 자금 조달이 필요한 상황에서 거듭되는 비상사태에만 다달이 호소하는 현재의 기금조달 방식은 변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지난 8월 수 백만 달러가 부족하자 이라크의 18개 지역 중 10곳에서 진료소 184개를 폐쇄해 300만 명이 의료서비스를 받지 못하게 됐다. WHO는 이라크의 보건의료 기금을 6000만 달러로 높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지금까지 기부금은 510만 달러에 불과하다.
미셀 게이어 WHO 비상위기관리국장은 "이라크와 같이 의료원조를 간절히 필요로 하는 국가와 현재의 모금 수준간 격차는 공공보건에 영구적인 손상을 준다"며 "사람들은 예방접종을 받을 수 없게 되고 영양실조로 고통받게 된다"고 말했다.
유엔의 또 다른 중요한 문제는 난민에 대한 식량공급이다.
올해 세계식량계획(WFP)은 160만 명의 시리아 난민에 대한 배급량을 삭감했다. WFP는 지금 레바논에서 매월 식량에 지출하는 돈은 단 13달러에 불과하다면서 배고픔에 시달리는 난민들이 극단주의 단체 모집에 취약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러한 악순환이 세계 각국에서 반복될 것이라고도 우려했다.
WFP는 올해 초부터 우간다에 있는 수단 난민 뿐만 아니라 케냐 북부에 위치한 다다브 난민촌과 카쿠마 난민촌에 대한 식량 배급을 2배 삭감했다.
WFP의 카이로지부 대변인은 "식량 배급 삭감은 난민들에게 위험한 결정을 하게끔 만든다. 난민들이 시리아로 돌아가거나 유럽으로 밀입국하고 있다"며 "지난 몇 주동안 요르단과 레바논에 있는 난민들은 유럽으로 가는 배를 어떻게 구할 수 있는지 물어봤다. 만약 식량 배급이 이전 수준으로 돌아가지 않으면 시리아로 다시 돌아갈 것이라고 얘기한다"고 전했다.
UNHCR 직원들은 그리스 섬에서 배를 타고 도착하는 난민들로부터 식량이나 의료서비스 부족으로 레바논이나 요르단, 터키를 떠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라는 말을 자주 전해듣는다.
UNHCR의 남유럽 담당 대변인은 "난민들은 식량이 삭감되고 전기이용도 어려운 상황에서 이런 식으로는 살 수 없다고 말한다"며 "뱃속에 총알이 박혀 있는 한 시리아 남성은 수술을 받기 위해 터키에서 독일로 가길 희망했다"고 말햇다.
구테레스 최고대표는 자금조달 시스템에 급격한 변화가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
그는 "시리아인은 법적으로 일할 수 없고 원조는 충분하지 않기 때문에 더 많은 사람들이 유럽으로 이동하려 한다"며 "유엔 평화유지활동의 기부금을 적어도 시리아와 같은 비상상황에 대해 지원해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