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뉴스 강철규 기자] 러시아와 브라질, 남아공 등 신흥경제국가들의 통화가 급락하는 동시에 주가 역시 큰 폭으로 동반하락하는 등 신흥경제국가 발 새로운 금융위기가 본격화한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게다가 이번 금융위기의 여파는 지난 1990년대 말 동남아 금융위기 때보다 더 심각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이번 신흥경제국가 발 금융위기는 국제 원자재 가격의 폭락에서 시작된 것으로 그 배후에는 오랫동안 고속성장을 거듭하며 원자재 시장의 큰 손으로 떠오른 중국 경제의 둔화에 따른 수요 감소가 자리잡고 있다. 중국의 경기 둔화가 원유와 철광석, 구리 등 원자재에 대한 수입 수요를 줄여 이들 원자재의 대중국 수출에 크게 의존해온 신흥경제국가들의 경제가 타격을 입으면서 이들의 성장 전망에 불안감을 갖게 된 투기자금들이 빠른 속도로 빠져나오면서 통화 가치와 주가의 동반 폭락이라는 금융 위기를 조장하고 있는 것이다.
원자재 가운데에서도 지난해부터 1년여 사이에 절반 이하로 가격이 떨어진 원유가 이러한 신흥국 경제위기의 가장 큰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러시아와 베네수엘라, 브라질 등 원유 수출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나라들은 물론 남아공과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등 그동안 국제 원자재 시장의 호황 속에 원자재 수출을 통해 높은 성장률을 이어왔던 신흥경제국가들이 너나 할 것 없이 화폐 가치와 주가의 동반 폭락에 빠지면서 세계 경제를 위협하는 새로운 위기를 만들어내고 있다.
가장 두드러지는 현상은 신흥경제국가들 화폐의 급락과 급속한 자금 이탈이다. 말레이시아 링기트화는 지난 24일 1.4% 하락한 1달러당 4.23링기트로 1998년 금융위기 이후 최저 수준까지 떨어졌다.인도네시아 루피아화 역시 이날 0.65% 떨어지면서 1달러당 1만4030루피아로 동남아 금융위기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태국 바트화는 이날 0.3% 하락한 1달러당 35.74바트로 2009년 이후 최저치를 나타냈고 터키 리라화는 1.1% 빠지면서 1달러당 2.95리라로 사상 최저치로 떨어졌다. 또 남아공 랜드화도 이날 장중 한때 2.3%나 떨어져 달러당 14랜드라는 사상 최저치를 나타냈고 러시아의 루블화는 1.1% 하락해 1달러당 70루블을 넘기면서 1년 사이에 반토막이 났다.
문제는 이러한 신흥경제국가들 화폐의 급락이 앞으로도 계속될 것으로 전망된다는 점이다. 미국의 금리 인상이 단행 시기만을 남겨두었을 뿐 확실시되는 상황에서 달러화의 강세는 앞으로도 한동안 지속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 대다수 경제 전문가들의 예측이다. 달러화 강세는 상대적으로 원자재 가격의 약세를 부추겨 신흥경제국가들의 어려움을 더욱 가속시키게 될 것이다.
이처럼 신흥경제국가들의 경제 전망에 대한 불안감이 커지면서 그동안 고수익을 노려 신흥경제국가들로 유입됐던 투기자금들이 안전처를 찾아 이탈하면서 중남미에서부터 아프리카, 중앙아시아 및 동남아에 이르기까지 세계 곳곳의 신흥경제국가들이 경제 어려움 속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지난해 7월 이후 신흥경제국가들로부터 빠져나온 투기자금은 1조 달러를 넘어 지난 2008∼2009년 경제위기 당시 9개월 간 빠져나온 것보다 2배를 넘어섰다. 게다가 투기자금들의 신흥시장 이탈 속도는 당시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이뤄지고 있으며 앞으로도 상당 기간 지속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이번 신흥경제국가들 발 위기를 초래한 최대 원인이라 할 수 있는 중국의 경제 둔화는 현재 뚜렷한 해법이 보이지 않고 있다. 중국 경제의 둔화 조짐이 분명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중국의 경제성장률은 올 1분기와 2분기 연속 7%를 기록해 세계 평균보다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이는 세계 경제성장의 엔진 역할을 담당해온 중국 경제에 대한 기대치에 훨씬 미치지 못하고 있는 것 역시 사실이다.
문제는 중국 당국이 이러한 위기를 통제할 것이란 확신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중국 금융 당국은 25일 기준금리와 지급준비율의 동시 인하를 발표하는 등 폭락하는 중국 증시를 떠받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지만 이날 미 증시가 반등에 실패한데 이어 26일에도 상하이 증시가 하락하는 등 이미 중국에 대한 신뢰를 잃어버린 투자자들의 마음을 되돌리지는 못하고 있다.
중국이 지난 11일부터 사흘 연속 위안화에 대한 평가절하를 단행한 것은 이러한 중국 경제에 대한 불안감을 극대화시키는 계기가 됐다. 중국의 위안화 평가절하 후 카자흐스탄이 변동환율제를 도입하면서 텡게화가 23%나 가치가 폭락했고 베트남 역시 동화에 대해 평가절하를 단행했다.
다른 신흥경제국가들 역시 경쟁력 유지를 위한 평가절하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는 형편이다. 자칫하면 신흥경제국가들에서 평가절하 도미노 현상이 빚어지면서 세계적인 통화전쟁이 촉발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는 실정이다.
사우디아라비아가 원유 가격 급락으로 경상수지 적자를 기록할 것으로 예상되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가장 큰 타격을 받고 있는 것은 러시아와 브라질, 베네수엘라 등 원유 수출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나라들이다.
러시아는 올해 마이너스 3.3$의 경제성장을 기록하고 내년에도 1∼2%의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러시아에서는 지난해 1500억 달러의 자금이 유출된 데 이어 올 상반기에도 520억 달러가 넘는 자금이 빠져나갔다.브라질 역시 내년 경제성장 전망치를 마이너스 0.24%로 낮추고 인플레이션 예상치를 계속 높이는 등 곤경에 처해 있고 베네수앨라는 생필품 부족으로 인한 국민들의 불만 고조로 시위가 끊이지 않는 등 극심한 혼란에 처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