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뉴스 강신철 기자]거액의 금품수수 사실을 숨기기 위해 재력가를 청부살해한 혐의로 기소된 무소속 김형식(45) 서울시의회 의원에게 무기징역이 확정됐다. 금고 이상의 형이 최종 확정됨에 따라 김 의원은 시의원직을 상실하게 됐다. 현직 시의원의 살인교사라는 초유의 사태는 대법원이 19일 김형식 서울시의회 의원에게 무기징역을 확정선고하면서 일단락됐다.
촉망받던 한 젊은 정치인이 탐욕에 눈이 멀면서 몰락해가는 과정이 검찰 수사와 법원 재판 과정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난 만큼 이번 사건을 계기로 정치권을 비롯해 우리 사회 전반에 던지는 메시지가 적지 않았다는 지적이 높다.
1970년 충남 서산에서 태어난 김 의원은 486세대 운동권 출신이다. 본인도 이를 상당히 자랑스럽게 여기는 것으로 전해진다. 대학을 졸업한 후에는 사기업에 잠시 다닌 적도 있지만, 10여년간 새정치민주연합 (새정치연합)소속 신기남 의원 보좌관을 지내면서 사실상 본격적인 정치수업을 받았다.
당시 여의도 정가에선 “모시는 의원보다 목소리가 더 큰 보좌관”이라는 얘기가 공공연하게 흘러나올 정도로 그는 자신감이 넘치는 사람이었다.
고(故) 노무현 대통령 후보캠프 기획위원과 새정치연합 전신인 열린우리당 최연소 부대변인을 역임하면서 그의 성공가도는 이어졌다. 급기야 지난 2010년 제5회 지방선거에서 8대 서울시의회 의원으로 당선됐고, 지난해 6·4 지방선거에선 재선에도 성공했다.
그는 당선 후 서울시 경관지구 내 건축물의 ‘층수’와 ‘높이’로 이중 규제하는 방식을 ‘높이’만으로 전환해 경관지구에 거주하는 시민들의 재산권 제약을 해소하는 개정(조례)안을 대표발의하는 등 그동안 100건이 넘은 조례 개정안을 발의할 정도로 의정활동에 적극적이었다.
특히 제2 롯데월드 건설과 관련해선 이명박 정부를 강력하게 비판했고, 오세훈 전 서울시장의 뉴타운 정책에 대해서도 목소리를 높이는 ‘저격수’로도 잘 알려져 있다.
하지만 정치권에서 명성이 높아질수록 그는 탐욕의 늪에 더욱 깊이 빠져들었다. 그 결과 지난 2010년 10월부터 이듬해 12월까지 재력가 송모(사망·당시 67)씨로부터 특정 건물이 용도 변경되도록 도와주는 대가로 5억2000만원을 수수했다가 도시계획 변경안 추진이 무산되자 금품수수 사실을 덮기 위해 지인 팽모(45)씨에게 송씨를 살해하도록 지시한 혐의로 구속 기소됐다.
검찰 수사 결과에 따르면 그는 팽씨에게 3차례 쪽지를 보내 “묵비권을 행사하라”고 압박했고, 팽씨는 “니가 고인에게 얼마나 협박을 받아서 고통을 겪었는지 말하고 선처를 구해라”라며 그의 요구를 거부했다. 팽씨는 “내가 중국 공안에 잡혀 있을 때 니 첫마디가 탈출과 자살이었어.(…) 니가 나를 친구로 생각한다면 다 내려놓고 선처를 바라자”고 적기도 했다.
그는 1심 재판 과정에서도 시종일관 당당하게 결백을 주장했다. 그는 “살해 동기가 없고, 살해를 지시했다는 명확한 증거가 없다”며 혐의를 모두 부인했다. 그러나 국민참여재판으로 진행된 1심에서 배심원들은 만장일치로 그에게 유죄 평결을 내렸다. 팽씨의 진술에 신빙성이 있는 점, 숨진 송씨가 작성한 금전출납기록인 '매일기록부'와 김 의원이 작성한 '차용증', 김 의원과 팽씨가 범행 전후 주고받았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문자 메시지 등이 무기징역을 선고하는 근거가 됐다.
이에 불복한 김 의원은 법원에 항소장을 제출했고, 지난 1월 항소심 재판이 열렸다. 그는 항소심에서도 완강하게 무죄를 주장했다. 그는 “살인교사 혐의에 대한 증거가 팽씨의 진술뿐인 데다 진술 곳곳에 모순이 존재한다”며“1심에서 살해교사 범행 동기가 입증됐다고 볼 수 없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항소심 재판부는 1심과 같이 팽씨의 진술에 신빙성이 있다고 판단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팽씨가) 범행을 저지른 직후 중국으로 도피했고 도피생활 내내 악몽을 꾸고 구치소에선 발에 족쇄를 찰 정도로 힘들어했다”며 “그럼에도 김 의원이 안부를 묻진 않고 자살을 권유하자 배신감을 느꼈다는 팽씨의 진술 동기는 충분히 수긍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특히 김 의원이 유치장에서 팽씨에게 건넨 쪽지가 오히려 유죄를 판단하는 유력한 증거가 됐다고 강조했다.
재판부는“김 의원이 팽씨에게 건넨 쪽지는 억울함을 호소하는 내용이 아니다”라며 “팽씨에게 스스로 목숨을 끊을 것을 종용하거나 ‘통화 녹취물이 증거로 채택될 수 없으니 쫄지 말라’, ‘묵비권을 행사하라’ 등의 내용이었다”고 밝혔다. 그러자 김 의원은 오열하면서 피고인석을 붙잡고 퇴정을 거부하다 법정 방호원에 의해 끌려나가기도 했다.
1, 2심의 판단은 대법원에서도 받아들여져 결국 그에겐 무기징역이 확정됐다.
법원 관계자는 “잘 나가던 정치인이 하루 아침에 살인교사의 장본인으로 바뀐 것은 '탐욕' 때문이지 않겠느냐”며 “그의 정치 인생을 파국으로 몰아간 것은 다른 누구도 아닌 김 의원 자신”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