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뉴스 강철규 기자] 알렉시스 치프라스 총리와 유로존 정상들이 밤샘 마라톤 협상 끝에 '그렉시트' 파국을 가까스로 막았지만 그리스 의회에서 최종 타협안 통과 여부가 중요한 관건으로 남아 있다.
3차 구제금융을 지원받기 위해서는 그리스 의회가 15일까지 세금 인상과 연금 삭감, 민영화 등을 골자로 한 개혁 법안을 마무리해야 한다.
CNN은 그리스 의회가 수요일(15일) 연금 개혁과 판매세 인상을 포함한 협상안의 핵심 부분을 승인할지 여부를 다시 투표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그리스는 일단 3년 간 채권단으로부터 최대 860억 유로(약 108조3000억원)를 지원받기로 하면서 급한 불을 끌 수 있게 됐다.
그러나 치프라스가 국민투표에서 약속했던 채무 탕감은 한 푼도 못 받아내면서 공약(空約)이 되어 버렸고 500억 유로 상당의 국유재산 매각까지 감수하기로 해 그리스에서는 거의 '쇼크' 수준으로 파장이 일고 있다.
도날트 투스크 유럽연합(EU) 정상회의 상임의장이 마라톤 회의를 마친 뒤 어그리크먼트(agreement·동의)와 그리크(Greek·그리스의)의 합성어 어그리크릭먼트)'라는 표현으로 만족감을 전했지만 그리스 의회에서도 어그리크먼트가 통할지는 불투명하다.
전체 의석 300석 중 치프라스 총리가 속한 시리자(급진좌파연합)는 149석을 차지하고 있으며 13석을 가진 독립그리스인당(ANEL)과 손을 잡고 162석의 연정을 구성, 숫자상으로는 과반이 넘는 우위를 점하고 있다.
여기에 제1 야당이자 원내 76석을 차지한 신민주당(ND)이 개혁 입법을 지지하고 있고 다른 야권에서도 긍정적인 태도를 보일 경우 그리스 의회에서 법안 통과는 의외로 순조로울 수 있다.
그러나 이 같은 전망에는 힘이 실리지 않고 있다.
치프라스가 앞서 내놓은 새 개혁안에 대해 시리자 연정의 한 축인 좌파연대(Left Platform) 계열 의원 40명 중 17명(반대 2명, 기권 8명, 불참 7명)이 의회 투표에서 반기를 들었다.
개혁안보다 더 혹독한 타협안을 들고 돌아온 치프라스에게 이들 의원이 우호적인 태도를 보일 가능성은 낮다. 일부에서는 시리자 내부의 분열로 연정은 커녕 과반 의석도 흔들리는 게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강경파로 분류되는 파노스 스쿠를레티스 그리스 노동장관은 현지 ERT 방송에 "이번 협상은 우리(그리스인)를 대표하는 것이 아니다"라며 "이번 타협안에 찬성하지 않은 의원들을 쉽사리 비난할 수 없을 것"이라며 우회적으로 불만을 드러냈다.
아테네 시민 비르지니아(27·여)씨는 유로존이 그리스에 너무 많은 양보를 요구했다고 생각한다면서 "나는 우리가 유로존에 속한다고 믿는다. 하지만 공정한 협상이었다고 믿진 않는다"고 CNN에 말했다.
만약 그리스 의회에서 치프라스가 들고 온 타협안에 퇴짜를 놓는다면 위기를 기회로 바꿀 수 있는 희망을 걷어 차버리는 것과 다름없어 유로존 채권단도 협상을 여러 번 뒤엎은 그리스에 대해 완전히 등을 돌릴 것으로 관측된다.
그리스 국민들이 타협안에 대해 큰 실망감을 나타내면서도 한편으로는 현실을 직시하고 수긍하는 분위기도 감지되고 있어 그리스 의회가 무리수를 단념하고 '결단'을 내릴 가능성도 전혀 없진 않다.
홀거 슈미딩 베렌베르크 은행 수석이코노미스트는 CNBC에 "그리스 의회와 국민의 절대다수가 유로존 잔류를 희망하는 만큼 시리자와 함께 EU에 우호적인 야당이 협력할 가능성이 크다"며 "유로존 잔류를 희망하는 민심이 의회 결정에 어떤 형태로든지 반영될 것으로 보인다"고 낙관했다.
CNN에 따르면 타협 소식이 전해진 후 "아테네의 많은 시민들은 그렉시트보다는 더 나은 결과"라는 반응을 나타냈다. 13일 긴축정책에 반대하는 항의 시위 규모도 이전에 비해 줄었다고 CNN은 전했다.
테오도레 파파디미트리우(63)씨는 "협상안이 기쁘지는 않다"면서도 "하지만 유로화를 포기하는 것보다는 낫다"고 말했다.
아리스(28) 역시 협상안에 대해 "아무도 기뻐하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냐"며 "우리느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다"고 했다.
월 스트리트 저널은 그렉시트 위기를 끝낼 수 있는 기회가 그리스 의회로 넘어갔지만 개혁 법안 통과는 장담하기 어렵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