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뉴스 김승리 기자] 국제의결권 자문기구인 ISS(Institutional Shareholder Services)가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 반대 권고안을 발표한 가운데 이번 합병의 '캐스팅보트'를 쥔 국민연금의 선택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ISS는 3일 "삼성물산 주주들은 제일모직의 합병에 반대하는 것을 권고한다"며 "합병 절차가 관련법을 준수하고 있더라도 삼성물산의 주식 가치가 저평가돼 있어 자사 주주들에게 피해를 입힐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이어 ISS는 "삼성물산은 순자산가치(NAV) 대비 49.8% 저평가 돼 있고 제일모직은 41.4%로 고평가 돼 있다"며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 비율은 0.95대1은 돼야 한다"고 전했다.
급변하는 상황 속에 삼성물산 1대주주인 국민연금의 선택이 더욱 중요하게 됐다.
국민연금은 현재 삼성물산 지분 11.61%를 보유하고 있다. 지난달 4일부터 30일까지 보통주 271만4730주를 추가로 매수하며 지난달 3일 기준 9.92%(1595만6368주)였던 지분율을 이 기간 11.61%(1867만1098)까지 끌어올렸다.
다만 국민연금은 오는 17일 열릴 삼성물산 임시 주주총회에서 현재까지 최종 보유한 지분만큼의 의결권을 행사할 수 없다.
주총 개최를 위한 권리주주 확정일이 지난달 11일이었기 때문에 9일까지 매수한 주식에 대해서만 의결권이 생긴다.
9일 기준 국민연금이 보유한 삼성물산 지분은 1734만9791주다. 의결견을 가진 주식은 11.11%가 된다.
현재 삼성과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는 우호 지분 확보를 위해 치열한 수싸움을 벌이고 있다.
삼성물산이 이번 주총에서 직접 동원할 수 있는 우호 지분은 삼성SDI가 보유한 7.38%를 포함해 총 13.82%다. 여기에 삼성물산이 KCC에 매각한 지분(5.96%)까지 합치면 19.78%가 된다.
합병 반대 쪽은 엘리엇(7.12%)을 비롯해 일성신약(2.1%), 네덜란드연기금(0.3%) 등으로 지분은 총 9.9%다.
소액주주(22.5%)와 외국인 투자자(26.75%)의 의중은 아직 알 수 없다.
결국 한 번에 11.11%의 힘을 실어줄 수 있는 국민연금이 이번 합병 성사 여부를 결정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양 측의 의견이 팽팽하게 맞서고 있는 만큼 국민연금은 쉽사리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합병에 찬성할 경우 국민들의 돈으로 기금을 꾸린 국민연금이 삼성과 같은 '대기업'을 도우려다 일반 소액주주들에게 피해를 입혔다는 비난을 받을 수 있다.
실제 '삼성물산 소액주주연대' 인터넷 카페 회원들은 "국민의 돈을 운영하는 국민연금이 이번 같이 부당한 합병에 찬성한다면 반드시 집단 소송에 나설 것"이라며 법정 투쟁을 예고한 상태다.
반면 국민연금 역시 수익추구를 최고의 가치로 삼아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싱가포르국립대 경제학과 신장섭 교수는 "국민연금은 투자 기관이기 때문에 필요한 수익률을 내야하며, 국민이라는 이름이 붙은 만큼 국익을 지키는 범위에서 투자를 해야 한다"며 "국민연금은 기본적으로 적극적 수익 추구를 목적으로 하는 패시브 펀드여야 한다"고 말했다.
당초 국민연금의 결정에 ISS 보고서가 큰 영향을 끼칠 것으로 예상됐지만 최근 SK C&C-SK 합병 사례를 보면 이마저도 장담할 수 없다.
국민연금은 지난달 24일 SK C&C와 SK의 합병에 반대 의결권을 행사했다.
당시 국민연금 의결권행사전문위원회는 "합병의 취지와 목적에 대해서는 공감하나 합병비율, 자사주소각시점 등을 고려할 때 SK의 주주 가치를 훼손할 우려가 있다고 판단했다"며 반대 이유를 설명했다.
흥미로운 점은 ISS와 국내 자문기구인 기업지배구조연구원이 양사 합병에 찬성 의견을 낸 가운데 국민연금이 그와 반대되는 결정을 내렸다는 것이다.
국민연금은 이 결정으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에 대해서도 독자적인 의견을 낼 수 있다는 여운을 남겼다.
주총을 앞두고 국민연금은 신중한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보건복지부 국민연금재정과 최홍석 과장은 지난달 30일 열린 국민연금 주주권 행사 긴급 간담회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기금운용원칙, 수익성, 안정성, 공공성, 주주가치 증대 등"이라며 "이번 합병이 장기적으로 국민연금 기금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를 잘 판단해서 최종 결정을 내릴 것"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