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뉴스 강철규 기자] #. 그리스의 농부 코스타스 크리스토포리디스(37)는 아직까지 5일로 다가온 구제금융 협상안 국민투표에서 어떤 선택을 해야할 지 결정하지 못했다. 그는 "정부가 더이상 지출 규모를 축소하는 것은 싫다"면서 "하지만 유로론에서 퇴출당하는 것도 싫다"고 토로했다.
그리스 국민들이 5일 그리스와 유로존의 앞날을 가를 국민투표를 앞두고 깊은 혼란에 빠졌다.
그리스은행과 증권거래소는 3일 현재 여전히 문을 닫은 상태다. '찬성파'과 '반대파'들의 무질서한 시위와 캠페인은 점점 거세지고 있다.
더군다나 국제통화기금(IMF)은 2018년까지 향후 3년 간 그리스에 500억 유로와 채무 구제가 필요하다는 전망을 내놨다.
◇ "반대해야 협상 유리" vs "반대하면 그렉시트"
알렉시스 치프라스 그리스 총리는 '반대'를 주문하며 사퇴 배수진까지 친 상태다. 그는 "민족의 존엄과 주권을 지키며 최대한 빨리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반대를 선택해야 한다"고 호소했다.
치프라스 총리는 지난달 말 채권단과의 구제금융안 협상이 막바지에 이르렀을 때 '국민투표' 카드를 내놓으며 그리스 주민들을 도박판에 불러들였다.
그는 3200억 유로(약 400조원)의 국가채무를 짊어진 그리스가 새 구제금융안 협상에서 승리하려면 그리스 주민들의 '반대'가 절실하다고 강조한다.
하지만 유로존 당국자들과 그리스 내의 시리자 반대파들은 국민투표에서 '반대'를 선택하는 것은 5일 유로존을 떠나겠다고 결정하는 것과 동일한 내용이라는 경고를 보내고 있다.
신민당 전 당수인 코스타스 카라만리스는 협상안 찬성 집회에서 "그들(시리자와 치프라스 총리)은 심각한 실수를 하고 있다"며 "국제사회는 '반대'를 고려하지 않고, 우리는 그렉시트(유로존 탈퇴) 사태를 맞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유로그룹(유로존재무장관협의체) 의장인 예룬 데이셀블룸 네델란드 재무장관 역시 자국 의원들을 만난 자리에서 "치프라스 총리의 주장은 완벽하게 틀렸다"고 지적했다.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은 "'찬성'에 투표하는 것과 '반대'에 투표하는 것의 결과는 동일하지 않다"며 "그리스 주민들의 선택에 달린 일"이라고 경고했다.
분명한 것은 그리스 정부의 미래가 5일 국민투표에 달렸다는 것이다. 치프라스 총리와 야니스 바루파키스 그리스 재무장관은 투표에서 '찬성'이 우세하면 사퇴하겠다고 밝힌 상태다.
◇ 찬성파·반대파 집회 신경전…여론조사도 혼란 부추겨
그리스 은행이 문을 닫고 예금 인출이 제한되면서 국민투표를 둘러싼 긴장감은 점차 고조되고 있다.
2일(현지시각) 그리스 노년층들은 지팡이를 집거나 타인에게 의지해 은행으로 나왔다. 이들은 은행 주변에 몰린군중들을 비집고 ATM 카드로 돈을 인출하기 위해 온갖 고생을 겪었다.
그리스 공산당 지지자 6000여명은 2일 의회 밖에서 '반대' 촉구 집회를 벌였다.
그리스의 수도 아테네에서는 좋은 집회 장소를 잡기 위한 '찬성파'와 '반대파' 간의 신경전이 벌어졌다. 이들은 3일 밤 같은 시간에 불과 800미터 떨어진 곳에서 집회를 벌이게 됐다.
그리스에서 이뤄지고 있는 여론조사도 혼란을 부추기는 원인이다.
한 조사회사는 5일 국민투표에서 '찬성'이 우세할 것이라는 예측을 내놨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데이터에 부정 조작이 이뤄진 것으로 나타났다.
혼란의 또다른 원인은 유권자들의 투표지에 쓰여질 실제 질문이다. '반대'가 '찬성' 위에 있어 논란을 부추기고 있다.
그리스의 퇴직자인 엘레니 마일리(64)는 "'찬성' 또는 '반대'를 선택할 수 없다. 둘 다 함정이 있는 것 같다"며 "결국 채권자들은 편할대로 결과를 해석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나는 도대체 그리스가 빌려온 그 돈들이 어디로 갔는지 모르겠다"며 "서민들은 그 돈을 보지도 못했다"고 분통을 터트렸다.
한편 그리스 현지 여론조사기관들에 따르면 구제금융안에 대한 '찬성'이 '반대'를 앞섰다. 포르토테마의 여론조사에서는 찬성 57% 반대 29%, 토비아 여론조에서는 찬성 47.2% 반대 33.0%로 찬성파가 각각 우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