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뉴스 강철규 기자] 뉴욕한인교회는 삼일절 2주년인 1921년 3월1일 뉴욕타운홀에서 열린 한인연합대회 기념식 후 서재필 박사와 정한경 조병욱 등 당시 한인 유학생들과 킴벌랜드 여사 등 미국인들이 한인교회 창립의 뜻을 모으고 매디슨 애버뉴의 감리교회 삭크만 목사의 주선으로 현지 교회를 빌려쓰다가 1923년과 1927년 두 차례 이전을 통해 현재 위치에 자리잡게 됐다.
뉴욕한인교회 한·영 안내문에 따르면 창립 이후 수많은 애국지사가 이곳에서 기숙하거나 거쳐갔다. 서재필 이승만 조병옥 김활란 김도연 장덕수 정일형 등 근현대 한국 정치 지도자들의 거점으로 활용됐고 각종 강연회와 토론회를 벌인 한인사회 활동의 중심지였다.
뉴욕 인근 한인들이 독립운동 자금을 건네려고 찾은 곳이었고 해방 전후 한인회와 학생회 국민회 동지회 흥사단 등 각종 단체들의 집회와 일시 거소로도 활용됐다.
뉴욕한인교회는 조선의 문화를 알리는 첨병 역할도 맡았다. 교회 학생들을 주축으로 '재미조선문학회'를 조직하고 컬럼비아대학에 한국도서관을 창설했다. 이들은 미주에 조선 문화의 중심지를 설치하고 조선의 문화를 외양에 소개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또 1921년부터 1941년까지 학생신문 'The Korean Student Bulletin'을 월간과 계간으로 발행했고 주미조선학생총회 기관지 'The Rocky'를 발행하는 등 조선 문화의 홍보 활동도 활발히 진행했다.
최초의 한글 타자기가 만들어진 곳도 뉴욕한인교회다. 타자기는 1913년 이원익이 처음으로 영어 타자기를 한글 타자기로 개조한 것이 효시이며, 한글 타자기는 뉴욕한인교회에서 송기주, 김준성 목사 등에 의해 꾸준히 개발되다가 1949년 공병우가 이를 개량해 '공병우 타자기'로 성공을 거뒀다.
뉴욕한인교회엔 특별한 피아노가 있다. 작곡가 안익태가 애국가를 작곡할 때 사용한 것이다. 최초의 애국가 연주도 바로 뉴욕한인교회에서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