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뉴스 유한태 기자]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와 안철수 전 공동대표가 19일 단독 회동을 갖고 당 위기에 공감했지만 혁신기구의 권한을 놓고서는 미묘한 신경전이 감지됐다.
문 대표는 이날 서울 모처에서 30여분 이뤄진 안 전 공동대표와의 회동에서 혁신기구 위원장직을 제안했지만, 안 전 공동대표는 이에 확답은 않은 채 "당의 위기 상황에 대해 공감한다"며 "당 혁신위원회가 필요한 상황이라는 데 뜻을 같이 했다"고만 밝혔다.
안 전 공동대표는 또 "혁신위원회의 위상과 권한 등에 대해서는 최고위원회의 의결을 거쳐 정하되, 인선, 조직, 운영, 활동기간 등에 관한 전권을 부여해야 한다는 데 의견을 같이 했다"며 "당내 상황의 수습 및 혁신과 관련해서 추후 회동을 갖기로 했다"고 말했다.
문 대표는 "앞으로 초계파 혁신기구를 구성해야 한다는 데 인식을 같이 했다"며 "그 인선이나 구성, 그리고 조직과 권한 등에 대해서는 앞으로 최고위에서 결정을 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그 구성과 인선에 관해서 안 대표님과 제가 함께 노력하기로 그렇게 의견을 모았다"며 "초계파적인 혁신기구가 관장할 사항에 대해서는 최고위가 그 권한을 위임하는 방식으로 전권을 준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안 전 공동대표가 '전권 부여'에 입장을 같이 했다고 밝힌 것은 이를 전제로 위원장직을 수락할 수 있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하지만 문 대표가 '최고위가 권한을 위임하는 방식으로 전권을 준다는 뜻'이라고 규정한 것은 형식상 절차는 거쳐야 한다는 일종의 '조건'을 내건 것으로 해석된다.
당 관계자는 "사실 안 전 공동대표 입장에서는 잘 해도 본전"이라며 "최고위 의결을 거쳐야 할 것이란 단서를 달긴 했지만 실질적으로 체감할만한 혁신이나 성과가 이뤄지려면 더 폭넓은 권한 위임을 원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혁신기구가 전권을 갖게 될 경우 이미 4·29재보궐선거 패배에 대한 문 대표의 책임론과 정청래 최고위원의 '공갈 파문' 사태로 위상이 위태로워진 최고위원회가 유명무실해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한 초선 의원은 "이미 (비주류가 결집해 이뤄낸) 이종걸 원내대표 선출로 당 주류의 위기가 확인된 상황에서 최다 득표자인 선출직 최고위원이 두 명이나 빠져 있지 않느냐"며 "비상대책위원회도 아니고 혁신기구에 전권을 준다는 것은 최고위의 존재를 스스로 부정하게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혁신기구 활동기간을 둘러싼 양측의 이견이 확인된 것도 주목된다. 당 지도부가 당 혁신안을 마련할 시한을 '6월 이내'로 못 박은 반면, 안 전 공동대표가 전권 부여 대상으로 '활동기간'을 포함했기 때문이다. 혁신기구가 더 오래 활동해야 한다는 입장으로 읽힌다.
한 최고위원은 최고위가 유명무실해진다는 지적에 대해 일부 인정하면서도 "그래서 초단기적으로 6월 이내에 활동을 마무리해서 정리하자는 것 아닌가"라며 "몇 개월씩 길게 끌고 가는 게 아니니까 (최고위 무력화와는)다른 이야기"라고 말했다.
안 전 공동대표가 '6월 이내' 보다 더 오랜 활동기간을 요구할 경우 당 지도부와 새로운 갈등이 빚어질 가능성이 점쳐지는 대목이다.
당 최고위가 혁신기구 의제로 ▲공천혁신 ▲당무혁신 ▲인사쇄신 등 당 쇄신에 필요한 문제들로 폭넓게 열어둔 것은 원혜영 의원이 위원장으로 있는 공천혁신추진단과 역할이 너무 겹친다는 지적도 나온다.
당 핵심관계자는 "혁신기구 역할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공천혁신추진단과의 관계를 분명히 정립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왔지만 결국 이를 정리하지 못했다"고 꼬집었다.
결국 문 대표와 안 전 공동대표가 추후 회동에 합의한 만큼 이같이 당내 논란의 소지가 있는 과제를 잘 조율해내느냐 여부에 따라 안 전 공동대표가 결단을 내릴 것으로 예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