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뉴스 강신철 기자]감사원이 23일 경남기업 채권단에 금융감독원이 부당한 압력을 행사한 사실을 공식적으로 확인함에 따라 고(故)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과 금감원 간에 모종의 '커넥션'이 존재했는지에 관심이 모아진다.
감사원은 이날 금감원이 경남기업 채권단에 외압을 행사한 구체적인 배경은 밝히지 않았지만 범죄 혐의의 개연성이 있는 것으로 드러난 부분에 대해서는 검찰에 수사자료를 제공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성 전 회장과 금감원 간의 유착 관계에 대한 진실규명은 검찰 수사를 통해 가려지게 됐다.
◆“금감원, 신한은행 등에 전방위 압박”
감사원이 이날 발표한 금감원 기관운영감사에 따르면 경남기업의 세 번째 기업개선작업(워크아웃) 당시 금감원은 주채권은행인 신한은행 등 채권단과 워크아웃 실사를 맡은 회계법인 등에 전방위 압박을 가했다.
실사 회계법인과 채권단은 경남기업 대주주인 성 전 회장의 무상감자를 요구하지 말라는 게 금감원의 요구였다. 그 결과 경남기업 채권단은 대주주 무상감자 없이 1000억원의 출자전환만 하는 조건으로 워크아웃을 승인했다.
이는 통상적인 워크아웃 원칙에서 많이 벗어나 있다는 게 감사원의 설명이다. 재무구조 개선작업을 뜻하는 워크아웃은 해당 기업의 주가가 발행가격보다 낮거나 자본잠식 상태라면 부실책임을 물어 무상감자로 대주주 지위를 박탈한 뒤 출자전환을 하는 게 일반적이다.
실제로 2010~2014년 출자전환을 결의한 20개 워크아웃 기업 중 통화옵션 상품 '키코(KIKO)' 피해 업체와 대주주가 우리사주 조합인 기업 등 무상감자로 책임을 묻기 어려운 2곳 외에는 모두 대주주의 무상감자를 실시했다.
하지만 경남기업 워크아웃에서는 대주주의 주식 수를 줄이는 무상감자 없이 출자전환만 한 덕에 성 전 회장은 주식 수에 변동 없이 대주주의 지위를 지킬 수 있었다.
이를 통해 성 전 회장은 158억원 가량의 이득을 본 것으로 감사원은 판단했다. 무상감자(2.3대 1 기준)로 인한 손실(109억원)은 피하고, 채권단이 대출금을 주식으로 전환하는 출자전환이 실제 주가보다 비싼 조정가대로 이뤄진 데 따른 이익(49억원)이다.
금감원이 경남기업의 워크아웃을 명분으로 성 전 회장에게 사실상 거액의 특혜를 제공한 것으로 이해되는 대목이다.
특히 이 과정에서 금감원이 경남기업 채권단을 상대로 보여준 적극적인 압박은 성 전 회장과의 유착관계를 의심케 하고 있다.
감사원에 따르면 금감원의 A국장은 경남기업 실사를 맡은 회계법인 담당자들을 집무실로 불러 “회사 및 대주주의 입장을 잘 반영해 처리하라”며 외압을 행사했다. 해당 회계법인은 최초 실사보고사에서 2.3대 1의 대주주 무상감자 후 출자전환이 필요하다고 판단한 곳이다.
워크아웃과 관련해 회계법인이 금감원 담당 간부에게 직접 불려간 것은 상당히 이례적인 일이다.
더구나 금감원은 경남기업의 주채권은행인 신한은행 측에 “대주주의 입장을 긍정적으로 검토해달라”고 요구했다. 채권자에게 채무자의 바람대로 워크아웃을 진행토록 강요한 셈이다.
금감원은 신한은행 외에 다른 채권금융기관들의 반발을 무마하는 데에도 적극적이었다. 금감원은 채권금융기관들의 부행장 등 임원들을 직접 불러내거나 전화를 걸어 '무상감자 없는 출자전환' 원칙에 동의할 것을 요구했다.
◆금감원 윗선까지도 ‘의혹’…당시 성 전 회장은 정무위 소속 의원
정황상 성 전 회장과 금감원 간에 모종의 거래가 있었던 게 아니냐고 의심해도 이상할 게 하나 없는 대목이다.
이와 관련해 성 전 회장이 당시 금감원을 소관 기관으로 하고 있는 국회 정무위원에 배속된 국회의원 신분이었다는 점을 들어 금감원을 통해 채권단에 압력을 행사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다.
성 전 회장이 A국장을 직접 만나 청탁을 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A국장은 성 전 회장과 같은 충청권 출신 인사로 금감원 부원장보로 승진한 뒤 올해 1월 퇴직했다.
성 전 회장의 다이어리에 경남기업의 워크아웃 개시 직전인 2013년 9월 A국장을 의원회관에서 만났다는 기록이 남아있는 것으로 알려진 점도 이 같은 의혹을 키우고 있다.
일각에서는 성 전 회장이 금감원의 보다 윗선과 연결됐거나 금품이 오갔을 것이란 의혹도 제기하는 상황이다.
이에 대해 금감원 담당자들은 처음에는 채권단에 외압을 행사한 사실 자체를 부인했다고 감사원은 전했다. 이후에는 “기업이 부실화되고 법정관리로 가게 되면 협력업체나 우리 경제에 미치는 악영향을 생각해 채권단을 도덕적으로 설득했다”고 말을 바꿨다. 성 전 회장의 개입 없이 독자적인 판단에 따라 행동한 것이고도 했다.
하지만 부실화로 협력업체나 경제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는 기업이 경남기업 하나만 있는 것은 아닌 만큼 이 같은 변명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기는 어려워 보인다. 유독 경남기업에게만 특혜를 제공하려 무던히 애를 썼다는 점에서 성 전 회장의 개입이 없었다는 주장도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다만 감사원은 금감원이 경남기업 워크아웃에 부당개입한 이유와 관련해 검찰 수사를 이유로 구체적인 설명을 피했다.
손창동 감사원 산업금융감사국장은 이날 브리핑에서 “(금감원의) 직무 외적인 부분에 대해서 조사결과가 어떻게 나왔다는 것은 진행 중인 수사에 영향을 미치거나 장애를 초래할 수 있어서 자세히 말할 수가 없다”고 언급했다.
대신 손 국장은 “범죄 혐의의 개연성이 있어 보이는 점이 일부 확인됐다”며 검찰에 수사자료를 제공했다고 전했다.
검찰은 그동안 금감원에 대한 감사원 감사가 끝나면 관련 자료를 넘겨 받아 본격적인 수사에 착수한다는 방침이었다. 따라서 경남기업의 워크아웃을 고리로 한 성 전 회장과 금감원 간 관계에 대해서도 조만간 수사가 진행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