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럴리 형제의 행복한 샴 쌍둥이 코미디
패럴리 형제가 진지해졌다. 장기인 ‘화장실 유머’를 버리고 코미디의 내면에 귀 기울이기 시작한 것. 패럴리 형제의 변화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정액과 침이 범벅된 패럴리식 발칙한 농담은 점차 농도가 옅어지면서 대중화돼왔다. 대표작 ‘메리에겐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는
특유의 비주류적 감성을 비교적 덜 불편하게 중화시켜 성공했으며, ‘내겐 너무 가벼운 그녀’는 뒷골목에서 키득거리며 나눌법한 파괴적 유머를
눈에 띄게 걷어냈다. ‘붙어야 산다’는 패럴리 형제의 지향점을 보다 확실하게 인식시켜 준다. ‘더러운’ 농담도, 경악을 금치 못할 엽기적
상황도 더 이상 없다. 대신 그 자리를 채우는 것은 보편적 온기다.
마이너에 대한 ‘쿨’한 시선
패럴리의 초기작부터 섭렵한 마니아라면, 과거의 ‘천박함’이 그리울 수 있다. ‘소림축구’가 주성치 코미디의 성숙과 절정으로 평가됐지만
마니아들에게는 섭섭함을 주었듯, 패럴리 감독의 ‘진지한’ 변화는 젊은 반항아가 규범에 순응하며 점잖은 중년으로 변모하는 과정을 지켜보는
것과 비슷한 종류의 아쉬움을 준다.
하지만, 슬퍼하거나 노할 것 없다. 패럴리는 미국사회에 똥칠하고 오줌을 갈기고 침을 뱉는 행위는 그만뒀지만, 위선 가득한 주류에 대한
발길질은 멈추지 않았다. 뚱뚱한 추녀, 장애인, 동성애자, 노인, 변태, 바보 등 미국 중산층의 혐오 취향인 마이너가 메이저로 등장해
사회적 편견에 일침을 가하는 패럴리 영화의 핵심적 특징은 ‘붙어야 산다’에도 변함없이 드러난다.
‘붙어야 산다’에는 주인공인 샴 쌍둥이 외에도 다양한 장애인과 유색인종이 등장한다. 특히, 주인공의 분리 수술을 집도하는 의사가 유색인종인
점은 이 영화가 상당히 의도적인 정치적 메시지를 깔고 있음을 짐작케 한다.
상업 영화에서 터부시됐던 샴 쌍둥이라는 소재를 코미디로 만든 것 자체가 도전적 시도다. 더욱 놀라운 것은, 장애를 이용한 슬랩스틱 개그나
농담을 굳이 피하지 않고 과감히 사용했다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부감은 전혀 없다. 오히려 유쾌하다. 이점이 바로 패럴리 영화의
뛰어난 점이다.
장애에 대한 감독의 견해는 등장인물을 통해 직접적으로 제시된다. ‘붙어야 산다’에는 이런 장면이 있다. 헐리우드 레스토랑에서 배우 메릴
스트립을 목격한 샴 쌍둥이 형제 월트와 밥은 반가운 마음에 메릴 스트립에게 다가가 ‘쓸데없는’ 이야기들을 늘어놓는다. 성가신 팬에 불과한
샴 쌍둥이 형제를 대배우는 어색한 웃음과 형식적인 말투로 ‘예의바르게’ 대한다.
패럴리 형제는 이 장면에서 친절을 가장한 중산층의 위선을 잔잔하게 경멸한다. 감독이 내놓는 모범답안은 ‘우아한’ 메릴 스트립보다 거침없는
속옷모델 에이프릴이다. 샴 쌍둥이의 다정한 이웃인 그녀는 “너희들 붙었네”라며 아무렇지도 않게 손가락질한다. 에이프릴의 태도는 곧 ‘붙어야
산다’의 정치적 색깔이다.
‘붙어야 산다’는 장애인에 대한 동정의 시선 일절 없이 여피들의 위선을 통쾌하게 꼬집음으로써, 80년대를 풍미한 ‘인간승리’식 장애인
드라마에서 ‘치명적 난관’이었던 장애를 ‘사소한 흠’으로 가볍게 전환시킨다.
빈틈없이 빠른 전개, 풍부한 유머
이전의 강렬하고 자극적인 코미디에 비하면 확실히 약한 감이 있지만, ‘붙어야 산다’는 ‘코미디 황제’의 여전한 위력을 입증한다. 동화처럼
교훈적인 형재애라는 주제와 결말이 뻔한 전형적 스토리 속에서도 탄탄한 전개와 날카롭고 풍부한 유머 감각은 ‘역시 패럴리’라는 찬사가
나오게 한다.
잠시라도 한눈을 팔면 웃음의 순간들을 아깝게 놓치게 될 만큼 재치 있는 대사와 발상들이 스피디하게 쏟아진다. 웃음과 절묘하게 어우러지는
따뜻한 감동은 ‘화장실 유머’와 결별한, 혹은 젊은 감각을 상실한 패럴리 영화에서 새롭게 얻는 이득이다. 감동의 성격은 보편적이지만 억지스럽거나
신파적이지 않아서 기특하다.
캐릭터와 캐스팅은 최상이다. 수려한 외모, 화려한 말발 등 넘치는 끼를 주체하지 못해 헐리우드까지 진출하는 월트 테너를 맡은 그렉 키니어의
사랑스러운 연기는 인상적이다. 맷 데이먼은 섬세한 연기로 월트가 무대에 서는 동안 옆에서 땀을 흘리며 호흡을 가다듬어야 할만큼 수줍음
많은 밥 테너를 ‘잊을 수 없는 인물’로 각인 시킨다.
‘붙어야 산다’는 보너스가 많은 영화다. 메릴 스트립과 셰어를 맡은 진짜 메릴 스트립과 셰어를 비롯, 세계적인 골프스타 가르시아, 파네빅,
안드레이드 등 기발한 카메오 출연은 색다른 즐거움이다. 특히 자신의 실존을 걸고 ‘재수 없는 스타’를 연기한 두 여배우의 용기가 무게감을
더한다.
영화 종반부에는 펼쳐지는 뮤지컬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 또한 특별한 선물이다. 행복한 결말의 분위기를 업그레이드시키는 이 장면에서 메릴
스트립은 숨겨진 춤 실력을 선보인다.
마지막으로 영화팬에게 당부할 것은 ‘엔딩크레딧이 올라간다고 영화가 끝난 것은 아닐텐데’라는 자막을 염두에 두라는 것이다. 깜찍하고 아름다운
감동이 덤으로 남아 있다.
New Movie |
유럽 여행 갈 돈을 모으기 위해 채팅에서 만난 남자들과 원조교제를 하는 여고생 여진과 재영. 여진이 재영인 척 남자들과 채팅을
빌 클린턴 대통령과 모니카 르윈스키의 섹스 스캔들로 떠들석한 1998년 미국. 메사추세츠 아테나 대학의 고전문학교수 콜만 |
정춘옥 기자 ok337@sisa-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