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뉴스 강철규 기자] "러시아는 유럽이 아니다. 우크라이나를 계기로 한국 등 아시아에 눈을 돌리자."
러시아의 국제 문제 전문가들이 총출동한 모스크바 토론회에서 "우크라이나보다 아시아로 방향을 잡는 것이 러시아의 실리에 맞다"는 의견이 제기돼 관심이 모아진다.
러시아 수도 모스크바의 국립고등경제대학에서 19일 우크라이나 사태를 놓고 학술 토론회가 열렸다고 '글로벌웹진' 뉴스로(www.newsroh.com)가 전했다. 이날 토론회는 세르게이 카라고노프 고등경제대학 학장을 비롯, 세르게이 두비닌 러시아 금융감시위원장, 블라디미르 리쥐코프 회장, 티모페이 보르다체프 국제관계 연구소장, 국제문제 전문기자 안드레이 이바노프 등 각계를 대표한 전문가 등 패널진이 30명에 달했다.
특히 두 명의 한국 대사관 관계자들과 김원일 민주평통 모스크바협의회장이 참관인으로 초청돼 눈길을 끌었다. 토론회는 우크라이나 사태 이후 유럽과 러시아가 전후 최악의 갈등을 겪고 있는 가운데 왜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에 대해 물러설 수 없는지, 서방 일변도의 시각이 아닌 러시아 학자와 전문가들의 솔직한 진단이 난상토론 형식으로 이어졌다.
세르게이 카라고노프 학장은 주제 발표에서 "러시아와 유럽의 서로 다른 가치가 우크라이나 사태를 계기로 폭발했다. 러시아와 유럽은 공동 이익을 추구해야 하는데 우크라이나 사태는 지금은 마치 제로섬 게임을 하듯이 대립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우크라이나가 나토에 가입하게 되면 러시아는 2000㎞에 이르는 우크라이나와의 국경선을 방어해야 하는 상황에 처하게 된다. 이것은 도저히 러시아입장에서는 받아들일 수 없다"고 전제했다.
이어 "러시아와 유럽의 평화는 역사적으로 있어 왔던 경계선에 대한 존중이 바탕이 될 때 가능하다. 지금 신 냉전의 기운이 감도는 것은 러시아를 목표로 하는 나토의 강화 확대가 큰 원인이다"라면서 "유럽과 러시아는 완충지대인 우크라이나의 중요성을 인정하고 분쟁 종식과 함께 우크라이나의 안정과 발전을 위해 함께 노력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는 "러시아는 옛 소련 몰락 이후 유럽식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받아들이려 노력을 많이 했지만 유럽은 우리를 존중해 주지도 않았다. 유럽과 러시아는 역사적, 문화적, 종교적, 사회적 가치면에서 서로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고 역사적으로 존재해 온 지정학적 이익을 침해하지 말아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러시아 하원의원을 지낸 블라디미르 루킨의 사회로 진행된 토론회에서 대부분의 패널들은 우크라이나를 절대 포기할 수 없으며 미국이 정치, 군사적 행위 외에 '경제전쟁'이라는 더욱 치명적인 전쟁 개념을 만들어냈다고 비판했다. 그러나 우크라이나 해법은 대결보다 대화를 지속하면서 당면한 국제 문제들에 대한 공동보조를 취해 나가야 한다는 입장을 보였다.
토론회에서 두드러진 의견의 한 줄기는 우크라이나 사태를 계기로 기존의 유럽 편향 정책을 수정하여 아시아로의 진출을 적극 추진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 패널은 "국가 경제 발전을 위해서 유럽보다는 아시아로 방향을 잡아야 한다. 그 중에도 인도 중국보다는 지정학적 균형에 큰 관심을 가지는 한국, 일본과의 관계 발전이 러시아에 유리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러시아가 중국을 파트너로 생각하는데 지금 중국은 자신을 미국과 함께 세계 질서를 책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미국과 중국은 서로에게 필요한 존재이다. 중국이 미국과 큰 갈등을 감수하면서까지 러시아편을 들리라고 생각한다면 러시아의 큰 착각"이라고 주장했다.
또다른 패널은 "우크라이나를 유럽에 넘긴 후에 유럽으로부터 평화를 보장받고 아시아로 국가 발전 방향을 잡는 것이 현재 상황에서는 최선이다. 다른 방안은 없다"는 파격적인 제안을 하기도 했다.
모스크바대학 정치학 박사인 김원일 민주평통 모스크바협의회장은 "러시아가 처한 상황을 적나라하게 볼 수 있었던 토론회였다"면서 "우크라이나 사태로 인해 러시아가 아시아 진출의 강한 열망을 드러낸 것은 무척 흥미로운 대목이다"라고 말했다.
아내인 김 나탈리야 니콜라예브나 고등경제대학 교수와 함께 참석한 김원일 회장은 "최근의 사드 배치와 관련한 러시아의 반대 입장, 남·북·러 협력 사업에의 한국 참여에 대한 강력한 주문, 박근혜 대통령의 5월9일 전승기념일 참석 요청 등 러시아의 행보를 우리 민족에 유리하게 이끌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남북 관계의 정상화가 시급하다"고 진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