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뉴스 김부삼 기자]북한이 개성공단 관련 법규를 일방적으로 개정하려는 움직임을 보이면서 그 배경에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북한은 지난해 최저임금 관련 노동규정을 일방적으로 고치겠다고 선언한 데 이어 최근에는 한국 기업인 억류 조항을 공단 운영 시행세칙에 넣겠다고 주장하고 있다.
앞서 북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는 지난해 11월20일 개성공업지구 노동규정을 고치면서 '우리측과 협의 없이 북한 노동자들의 최저임금을 인상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노동자에게 임금을 직접 지급한다는 문구도 일방적으로 삭제했다.
이에 정부는 지난해 12월16일 북한당국의 일방적인 개성공단 노동규정 개정 방침을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을 대북 통지문을 통해 전달하려 했지만 북측은 아예 이를 접수하지 않았다.
나아가 북한은 개성공단 내 한국 기업인을 억류할 수 있도록 규정을 마련하려는 움직임을 보였다.
북한당국은 지난해 9월 개성공업지구법 기업창설운영규정 시행세칙을 개정하겠다면서 그 초안을 우리측 개성공업지구관리위원회에 전달했다. 초안에는 '개성공업지구관리위원회의 지시로 남북의 기업들이 맺은 계약이 끝까지 이행되지 않을 경우 손해를 배상할 때까지 책임자를 억류한다'는 취지의 문장이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개성공업지구관리위는 북한당국에 '일방적인 개정은 안 된다'며 문제를 제기한 뒤 12월에 북한측이 제시한 시행세칙 초안의 73개 조항 중 41개 조항을 고친 수정안을 작성해 북한측 중앙특구개발총국에 전달했다. 그러나 북한측은 이에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처럼 북한은 지난해부터 개성공단 관련 법규 개정을 일방적으로 통보한 뒤 이후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은 채 우리측의 반응을 관망하는 행태를 반복하고 있다.
이는 개성공단 관련 법규의 맹점을 활용한 측면이 있어 보인다.
북한의 현행법인 개성공업지구법은 9조에서 '공업지구에서 경제활동은 이 법과 그 시행을 위한 규정에 따라 한다'고 정하고 있다. 그리고 이 법과 하위 규정을 제·개정하는 주체는 북한 입법기구인 최고인민회의다.
이 때문에 북한 최고인민회의는 마음만 먹으면 개성공업지구법은 물론 노동규정 등 하위규정을 뜻대로 개정할 수 있는 상황이다. 개성공업지구법 부칙에는 '이 법의 해석은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가 한다'는 문장까지 있다.
물론 개성공업지구법 46조가 '공업지구의 개발과 관리운영, 기업활동과 관련한 의견 상이는 당사자들 사이에 협의의 방법으로 해결한다'고 정하고 있고 부칙에도 '개성공업지구와 관련해 북남 사이에 맺은 합의서의 내용은 이 법과 같은 효력을 가진다'는 문장이 있지만 이는 북한의 제·개정권을 제한할 만한 효력을 가진 것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정부는 북한의 잇따른 일방적인 개성공단 법규 개정 움직임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다.
지난해 8월 개성공단 재가동 당시 서명한 남북 합의서에 '남과 북은 개성공단 내에서 적용되는 노무·세무·임금·보험 등 관련제도를 국제적 수준으로 발전시켜 나간다' '남과 북은 합의사항을 이행하기 위해 '개성공단 남북공동위원회'를 구성·운영하며 산하에 필요한 분과위원회를 둔다'는 문장을 넣은 만큼 법규 개정 시 남북간 협의를 사전에 거치는 게 법체계에 부합한다는 것이다.
통일부 당국자는“(최저임금 등 관련)개성공업지구 노동규정은 북측이 일방적으로 개정할 수 있는 성격을 일부 갖고 있지만 시행세칙은 반드시 (우리측)개성공업지구관리위와 협의해서 개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일각에선 개성공단 법규를 둘러싼 잇따른 신경전이 남북 당국 간 기싸움의 일환이란 분석이 나온다.
임을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지금 남북당국 간에 불신이 심화되고 있고 더군다나 5·24조치 때문에 개성공단에 대한 추가 투자가 금지돼있다. 이 때문에 북한으로선 답답한 것”이라며 “개성공단에 한국의 투자가 확대돼야 추가 수익을 기대할 수 있는데 정체상태다보니 북한이 무리한 규정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압박수단으로 활용하는 측면이 있다”고 분석했다.
임 교수는 “북한이 여러 현안으로 (우리측을)압박하는 과정에서 그 일환으로 개성공단 규정 문제가 표출되는 측면도 있다”고 설명했다.
임 교수는 그러면서 “올해 5월 임금 협상을 앞두고 있고 개성공단과 관련해 남북간에 현안이 쌓여있다. 협상에 돌입하기 위해선 만나야 하고 개성공단 공동위도 가동되고 분과위도 가동돼야 하는데 아무것도 안 되고 있다”며 “당국간 대화가 재개되지 않으면 당분간 (개성공단 법규 개정 문제가)표류할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