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뉴스 김기철 기자] 잠자고 있던 손흥민(23·레버쿠젠)의 득점 본능이 깨어났다. 본격적인 쇼타임이 시작됐다.
손흥민은 22일 오후 호주 멜버른의 렉탱귤러 스타디움에서 열린 2015 호주아시안컵 한국과 우즈베키스탄의 8강전에서 혼자서 2골을 넣었다.
손흥민의 2골을 앞세운 한국은 우즈베키스탄을 2-0으로 꺾고 4강에 안착했다. 2007년 대회 이후 3회 연속 준결승 진출이다.
침묵하던 손흥민의 득점 본능을 깨우는 데에는 3경기면 충분했다. 오만과의 1차전, 호주와의 3차에 이어 우즈벡전에 나선 손흥민은 가장 중요할 때 번뜩였다. 왜 에이스인지 실력으로 입증해 보였다.
손흥민은 대표팀에서 가장 마음고생을 했던 선수 중 한 명이다. 대회를 앞두고 자신을 향해 쏟아지던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다.
빗 속에서 치러진 오만과의 1차전 이후 심한 감기 몸살을 앓으면서 컨디션이 급격히 떨어졌다. 쿠웨이트와의 2차전을 건너뛰었다.
일주일 간의 회복 끝에 호주와의 3차전에 교체투입됐지만 떨어졌던 컨디션은 좀처럼 올라오지 않았다. 상대의 집중 견제에 시달렸고, 약 40분 간 슈팅 한 개를 남긴 것에 만족해야 했다.
소속팀에서 펄펄날던 손흥민이지만 대표팀만 오면 유독 힘을 쓰지 못했다. 10경기 연속 A매치 무득점에 그쳤다. 2014브라질월드컵 H조 조별리그 알제리전(2-4 패) 이후 7개월 간 골이 없었다.
소속팀에서 시즌의 절반을 소화한 가운데 벌써 11골을 터뜨리며 펄펄 날던 것과는 대조적이었다.
기나긴 부진에 빠지는 것처럼 보였던 손흥민은 이날 2골을 몰아치며 스스로를 위기에서 끌어냈다.
중국에 밀려 B조 2위로 8강에 올라온 우즈베키스탄은 생각보다 강했다. 물러서지 않고 초반부터 강하게 맞섰다. 볼 점유율은 62.5-37.5%로 한국이 크게 앞섰지만 날카로운 역습으로 간담을 서늘케 했다.
손흥민은 전반 25분 페널티 박스 왼쪽 모서리에서 감아찬 슈팅을 시작으로 슈팅 감각을 끌어올렸다. 골키퍼의 선방에 막혔지만 정교한 슈팅이 인상적이었다.
하지만 상대 수비수의 집중 마크에 큰 위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볼을 받기 위해 중앙선 근처로 자주 내려왔고, 고립되는 상황이 자주 연출됐다. 앞선 2경기의 양상과 다를 바 없었다.
그러던 손흥민이 살아나기 시작한 것은 왼쪽 측면에서 최전방으로 전진배치된 연장전부터였다. 손흥민은 이날 총 4차례의 슈팅을 날렸는데 이중 3개가 유효슈팅이었고, 2개가 골로 연결됐다. 2골 모두 연장전에 나왔다.
연장 전반 14분 처음 번뜩였다. 김진수(23·호펜하임)가 왼쪽 측면에서 올린 크로스를 침착한 슈팅으로 마무리했다. 연장 후반 14분에는 차두리(35·서울)가 오른쪽에서 올린 땅볼 크로스를 강력한 슈팅으로 연결해 골대에 꽂았다.
자신의 쇼타임을 마친 손흥민은 경기 후 "그동안의 무득점은 걱정을 안했다. 언젠가는 깨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다만 심한 감기를 앓으면서 내 몸 상태가 100%가 아니었던 부분이 우려됐을 뿐이었다"면서 "경기를 항상 잘할 수는 없지만 앞으로도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손흥민이 오랜만에 골 냄새를 맡았다는 점은 슈틸리케호에도 분명히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조영철(26·카타르)·남태희(24·레퀴야)·이정협(24·상주)이 각각 1골씩을 터뜨렸지만 공격진의 무게감이 떨어졌던 것이 사실이다.
여기에 손흥민이 득점 행렬에 본격적으로 가담하면서 앞으로 있을 4강과 그 이상을 꿈꾸는 슈틸리케 감독에게 큰 힘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손흥민의 본격적인 쇼타임은 이제부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