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뉴스 강철규 기자] 평양의 한 대학에서 영어를 가르친 한국계 미국여성의 책이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고 뉴욕타임스가 보도했다.
뉴욕타임스는 지난 30일 A섹션 18면에 김수키(44·Suki Kim)씨가 최근 출간한 책이 북한정부는 물론, 함께 이 대학에서 가르친 교육자들의 비난을 받고 있다고 전했다.
이들은 김씨가 북한생활에 관한 내용을 쓰지 않기로 한 약속을 깨뜨렸다면서 그녀의 책은 부정확한 내용을 담고 있으며 특히 선교목적 언급으로 인해 북한당국으로부터 곤경을 겪을 수 있다고 비판했다.
김씨가 영어를 가르친 대학은 평양과학기술대학으로 2001년 북한당국의 승인을 얻었고 2010년 남북합작으로 정식 설립됐다. 연변과기대를 세운 김진경 총장이 초대 총장으로 재임하고 있으며 지난 5월 첫 졸업생을 배출했다.
김수키씨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통치기였던 2011년 7월부터 12월까지 평양과기대에서 북한의 최상위계층의 자녀 50명을 상대로 영어를 가르쳤다.
당시 체험을 바탕으로 북한의 실상을 묘사한 ‘당신이 없으면 우리도 없다(Without You, There Is No Us)’는 표지에 김일성 김정일 부자의 사진과 ‘북한의 엘리트 자녀들과 함께 한 시간’이라는 부제가 달려 있으며 지난달 크라운출판사가 출간했다.
타임스는 “책 제목은 김씨 일가에 대한 충성을 맹세하는 노래”라면서 “내년 봄 한국어로도 번역 출간되는 이 책이 일부 북한전문가들로부터 호평을 받고 있지만 꼬인 북미관계에 또다른 자극이 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김씨는 최근 인터뷰에서 평양과기대에 간 것은 영어를 가르치는 목적이 아니라 책을 저술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털어놓았다. 그녀는 평양과기대의 모든 교수와 직원들은 북한 관리에 의해 감시되며 소지품도 불시에 조사를 받는다고 밝혔다.
그녀는 평양에서 생활하면서 일화나 경험들을 메모로 작성한 뒤 랩탑컴퓨터에 몰래 저장하고 원본문서는 파기했다. 이어 저장된 정보를 휴대용 USB에 복사한 후 랩탑의 정보는 삭제하고 USB를 목걸이처럼 걸거나 기숙사 방 쓰레기통에 은닉하는 식으로 의심을 피했다.
김씨는 “동료교사들에 불이익이 가도록하면 안된다고 생각했다. 일부는 정말 좋은 사람들이었고 열심히 일했다”고 말했다. 그녀는 “이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더 큰 목적은 북한이 언젠가 문호를 열 때 이곳 사람들을 (기독교로) 개종시키기 위한 선교의 의도가 있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김진경 총장은 “평양과기대는 교육의 목적으로 운영되는 것으로 개종과는 무관하다”고 부인했다. 타임스는 최근 북한에서 석방된 3명의 미국인중 2명이 기독교 믿음을 퍼뜨리는 ‘적대행위’로 체포된 바 있다고 덧붙였다.
열세살때 가족과 함께 한국서 이민온 김씨는 컬럼비아대를 졸업했으며 풀브라이트와 구겐하임 펠로십에 선정된 바 있다. 2003년 출간한 첫 번째 책 ‘통역사(The Interpreter)’는 뉴욕에서 법정통역관으로 일하는 한국계미국인 통역사의 이야기로 구스타프 마이어 우수도서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그녀는 2002년이후 기자로 북한을 여행한 경험이 있다. 지난달 스타트리뷴은 ‘당신이 없으면 우리도 없다’ 서평을 소개하며 저자가 2008년 뉴욕필하모닉오케스트라가 평양에서 연주회를 가졌을 때 미국 취재진의 일원으로 동행했다고 전했다.
김씨는 평양과기대에서 영어를 가르치는 경험이 북한에 대해 피상적인 보도가 아닌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는 생각에서 마음이 끌렸다고 말했다.
책 출간에 앞서 그녀가 가장 걱정한 것은 신뢰관계를 맺었던 학생들에게 의도치 않은 위험이 갈 수도 있다는 점이었다. 이 때문에 등장 인물을 모두 가명으로 했고 신분을 추측할 수 없도록 내용도 뒤섞었다.
타임스는 김씨의 책 출간 계획이 전해진 후 김진경 평양과기대 총장이 분노와 당혹감이 뒤엉킨 이메일을 보내왔고 최소한 두명의 동료교사들이 책 출간을 만류했다고 간청한 사실도 덧붙였다.
현재 중국에 체류 중인 김진경 총장은 뉴욕타임스와의 전화인터뷰에서 “그녀의 태도와 책, 거짓말들로 정말 화가 난다, 그녀는 우리를 속였다”고 비난하며 “특히 교사들이 선교사라는 것은 잘못된 주장이다. 우리들은 교육자일뿐”이라고 반박했다.
그는 “만일 북한당국이 우리가 학생들을 기독교인으로 개종하려고 한다고 생각한다면 문제가 생길 것”이라며 “북한당국은 우리가 기독교인이라는 것을 알았고 우리도 숨기지 않았다. 하지만 우리는 선교사가 아니다. 기독교인과 선교사는 다르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김씨는 “이 부분은 민감한 문제이기 때문에 그들은 선교사로 불리기를 원치 않았다. 교육자는 일종의 암호 단어(code word)”라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