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뉴스 김부삼 기자]북한 고위급 정치 지도자들이 2014인천아시안게임 폐회식 참석을 위해 전격 방한하면서 남북 스포츠교류 활성화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다.
북한 황병서 노동당 총정치국장, 최룡해 비서, 김양건 비서 등 북한측 인사 11명이 4일 오전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입국했다. 이들은 아시안게임에 출전 중인 북한 선수단을 격려하고 우리측 관계자들과 오찬을 한 뒤 오후 7시 열리는 폐회식에 참석할 예정이다.
이들의 방한은 전날 오전 북측이 우리측에 방문 계획을 전격 통지했고, 정부의 내부검토를 거쳐 오후에 방문에 동의하면서 속전속결로 이뤄졌다.
방한 인사 대부분이 정치 지도자 고위급 인사들이어서 모든 관심이 경색 국면을 면치 못하던 남북 관계 해결에 무게감이 실리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국내에서 진행중인 메가스포츠 이벤트 폐회식 참석이라는 이들의 공식적인 방한 명분을 고려하면 스포츠를 매개로 한 화해의 제스처로도 해석할 수 있다는 것이 스포츠외교 전문가들의 입장이다.
윤강로(56) 국제스포츠외교연구원장은 “메가스포츠 이벤트 도중에 북한 고위 지도자들이 한국을 찾는 것은 극히 이례적이다. 2002년 부산아시안게임 때는 당시 북한 체육상 정도가 한국을 찾은 적이 있지만 이처럼 고위급 정치 지도자들이 대거 방한한 경우는 일찍이 없었다”고 평가했다.
그는“정부가 대책을 마련해 스포츠 인사들끼리와의 만나는 통로역할을 해줄 것으로 기대한다. 아마도 (어느 쪽에서든)화해의 제스처가 있을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전망했다.
김영찬 대한체육회(KOC) 국제교류팀장은“KOC에서도 긍정적인 신호로는 보고 있지만 어떻게 전개될지는 모르는 일이다. 조심스럽게 상황을 주시하고 있다”면서도“(상황이)진전된다면 남북 스포츠교류를 위해 협력할 생각이 충분히 있다”고 말했다. 이날 오전 인천의 모 호텔에서 이뤄진 만남에서도 류길재 통일부 장관과 김양건 비서는 이번 아시안게임 이야기를 나누면서 훈훈한 장면을 연출하기도 했다.
류 장관은“북한 남자역도 엄윤철 선수는 자신의 몸무게 3배 이상을 들어 북의 역도 사상 참으로 드문 기록을 남겼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김 비서는“인천 아시안게임은 조선 민족의 힘을 세계에 과시한 뜻 깊은 대회였다고 생각한다”며 “북과 남이 경기에서 좋은 성적을 냈고 전체 민족에게 큰 기쁨과 자랑으로 생각한다”고 화답했다. 이번 아시안게임에서 북한은 12년 만에 톱 10진입에 성공하며 체육 강국 이미지를 상기시켰다.
북한은 전통의 강세를 보인 역도 종목에서 세계신기록을 4개나 세운 것을 바탕으로 금메달 12개, 은메달 11개, 동메달 14개로 종합 7위에 이름을 올렸다. 여자축구에서는 일본을 물리치고 8년 만에 세 번째 우승을 차지하는 등 북한은 이번 대회에서 기대 이상의 빼어난 성과를 거뒀다.
윤 원장은 “북한이 이번 인천아시안게임에서 축구를 비롯해 좋은 성적을 거둔 것도 어느 정도 폐회식 참석 결정에 영향을 끼쳤을 수도 있다”면서 “전 세계에 남과 북이 동일 민족이라는 것을 보여주고자 하는 의미도 담겨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번 방한 기회를 잘 살린다면 내년에 국내에서 열리는 다른 국제 스포츠 행사에서의 북한 출전도 긍정적으로 바라볼 수 있다. 내년 7월에는 광주에서 2015광주하계유니버시아드가 예정돼 있고, 석달 뒤에는 경북 문경에서 세계군인체육대회가 열린다.
비록 이번 인천아시안게임에서는 2000년 시드니올림픽 때와 같은 남북 공동입장이라는 감동적인 순간은 이뤄지지 않았지만 향후 분위기에 따라 내년에 예정된 대회들에서 성사될 가능성도 조심스럽게 점쳐진다.
남북한은 시드니올림픽 이후 2006년 토리노동계올림픽까지 모두 7차례 공동 입장했다.
이 외에도 단일 종목 가운데에서는 축구를 통해 끊임없이 교류의 끈을 놓지 않으며 스포츠외교로 활용하기도 했다. 가깝게는 지난해 국내에서 열린 동아시안컵부터 멀게는 1990년 남북통일축구대회까지 한국 현대사를 관통하는 하나의 화두로 남북한 축구가 자리잡아 왔다.
1991년 지바세계탁구선수권대회에서는 리분희(46) 현 조선장애자체육협회 서기장과 현정화(45) 한국마사회 탁구단 총감독이 남북단일팀으로 출전해 중국을 꺾고 여자단체전 우승을 차지해 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선사하기도 했다. 비록 모든 것이 한 번에 관철되기는 어렵겠지만 모처럼 조성된 화해 무드 분위기를 살려 남북간 스포츠 교류가 활성화되기를 바라는 목소리들이 많다.
윤 원장은 “과거 탁구를 통한 '핑퐁외교'도 있었듯이 스포츠가 남북 정치문제를 풀 수 있는 가장 좋은 채널로 활용돼 왔다”면서 “이번 폐회식 때 우리 인사가 북측 지도자들을 만나서 격려하고 스포츠교류를 적극적으로 했으면 좋겠다는 의사표명이 있으면 북측의 긍정적인 방향을 이끌어 낼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