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뉴스 김정호 기자]외국에 페이퍼컴퍼니를 차려놓고 무려 3조7000억 원에 달하는 도박판을 벌인 일당은 ▲정 이사, ▲윤 수석, ▲황 과장 등과 같이 서로 정해진 직함을 부르며 IT기업 흉내를 냈다. 조직 규모도 운영진을 비롯해 개발팀, 웹서비스팀, 상황팀, 시스템운영팀 등 6개팀 80여명으로 왠만한 IT 기업 규모와 맞먹는다.
24일 경찰청 사이버안전국에 따르면 도박 사이트 조직의 주범으로 캄보디아에서 잠적한 이모(52·수배)씨는 캄포디아 프놈펜에 '에이스스타(AceStar)'라는 유령회사를 차렸다. 현지에 8층짜리 빌딩 2개와 빌라 1채를 임대해 사무실과 숙소로 활용하며 본격적인 인터넷 도박장 사업을 벌였다.
인터넷 도박사이트 운영조직이지만 겉으로 보기에는 여느 IT기업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들은 서로 이름 대신 직함을 정해놓고 호칭했다. IT총괄관리인 노모(34·구속)씨는 '정 이사', 서버와 도메인을 관리하던 시스템운영팀 유모(37·구속)씨는 '윤 수석(팀장)', 보드게임 파트 기획담당 강모(36·불구속)씨는 '강 책임', 웹팀 이모(31·구속)씨는 '마 주임' 등으로 불렀다.
노씨는 지인 소개나 구인사이트를 통해 알게 된 유씨 등을 팀장급 직원으로 고용했다. 팀원들은 팀장들이 직접 면접을 통해 채용하기도 했다. 캄보디아 현지 빌딩과 빌라는 사무실과 직원 숙소로 활용했다. 결혼한 조직원에게는 별도로 집을 제공하기도 했다.
조직원들간 신분을 철저히 숨기기 위해 실명 사용은 엄격히 금지했다. 연락도 사내 메신저 쪽지창이나 지급된 휴대전화로만 했다. 이들은 중국과 일본, 필리핀, 홍콩, 대만 등 5개국에 400여개의 서버를 분산 운영하며 이들 서버는 캄보디아에서 원격으로 관리했다. '에이-플러스(A-PLUS) 카지노' 등 14개 불법 도박사이트를 약 5년간 운영했다.
도박사이트를 운영하면서 인터넷 도메인 2만5000여 개를 동원했다. 관계 기관이 도박사이트 접속을 차단할 때마다 홈페이지 주소를 수시로 변경하면서 회원들에게는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로 통보해줬다. 이들이 판돈을 입·출금 하기 위해 사용한 차명계좌만도 1000여 개에 달한다.
이들이 지난 5년간 차명계좌를 통해 입금받은 판돈의 액수는 3조7641억 원에 달했다. 이중 수수료 명목으로 4700여억 원을 챙긴 것으로 드러났다. 세금을 피하려고 범행 수익금은 세탁하기도 했다. 이 사이트에서 도박을 즐긴 사람 중 휴대전화 판매업자인 장모씨(34)의 경우 10억원이 넘는 판돈으로 총 107억원을 베팅해 무려 1억4000만원을 날린 것으로 조사됐다.
경찰은 장씨 등 이 사이트에 접속한 뒤 도박을 즐긴 79명도 함께 붙잡았다. 달아난 김모(37)씨 등 3명은 수배 중이다.
경찰 관계자는 “사행사업통합감독위원에서 밝힌 2011년 한 해 해외 원정도박 규모 2조2000억원을 웃도는 역대 최대 수준”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