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뉴스 박철호 기자] 한국 축구는 2014인천아시안게임에서 1986서울아시안게임 이후 28년 만에 금메달을 다시 획득하기 위해 사상 최강의 선수단을 꾸렸다.
이광종(50) 감독은 총 3장을 쓸 수 있는 와일드카드(23세 초과 선수) 선수로 공격수 김신욱(26·울산 현대), 수비수 박주호(27·마인츠), 골키퍼 김승규(24·울산 현대)를 선발했다.
그간 축구대표팀이나 소속팀에서 보여준 이들의 활약상으로 볼 때 '당연한 선택'이라는 것이 축구계의 중론이다. 특히 김승규의 경우 더욱 더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반응 일색이다.
김승규에 대한 이 같은 무조건적인 신뢰의 배경은 역시 2014브라질월드컵에서의 활약이다.
김승규는 1무1패 속에 16강행을 향한 실낱 같은 희망을 걸고 지난 6월27일(한국시간) 브라질 상파울루에서 열렸던 벨기에와의 2014브라질월드컵 조별리그 H조 3차전(0-1 패)에 베테랑 정성룡(29·수원)을 제치고 골키퍼 장갑을 꼈다.
골키퍼의 경우 대회 기간 중 정말 부득이한 경우가 아니면 바꾸지 않는다. 그러나 앞서 열린 조별리그 2경기(러시아, 알제리전)에서 정성룡이 드러낸 한계를 아는 축구 팬들은 우려보다는 기대감을 갖고 새로운 수문장을 지켜봤다.
이날 김승규는 유럽 빅리그에서 활약 중인 벨기에 공격진의 유효슈팅 8개 중 7개(전반 3··후반 4)를 막아내는 화려한 '선방쇼'를 펼쳤다. 후반 31분 얀 페르통언(27·토트넘)의 슈팅을 골로 허용했지만, 이 또한 디보크 오리기(19·릴)의 슈팅을 주먹으로 쳐낸 상황에서 만들어진 어쩔 수 없는 1대 1 상황에서 일어난 것이어서 꼭 그의 잘못이라고 할 수 없었다.
이날 국내 축구팬들은 물론, 국제축구연맹(FIFA) 홈페이지, 해외언론 모두 김승규를 향해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이 경기에서 만큼 김승규는아틀레티코 마드리드의 2013~2014시즌 스페인 프리메라리가 우승을 지켜낸 벨기에의 '거미손' 티보 쿠르트아(22·현 첼시)에게 견줘 전혀 뒤지지 않았다.
특히 김승규는 이날 오른쪽 넷째 손가락 부상을 이겨내고 투혼을 펼쳤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더욱 각광을 받았다. 일약 공격수 손흥민(22·레버쿠젠)과 더불어 한국 축구의 미래를 책임질 '희망'으로 떠올랐다.
이는 벨기에전 이후인 7월1~13일 진행된 '프로축구 K리그 올스타' 투표에서 여실히 드러났다. 투표 참가 축구 팬 12만2017명 중 9만9933명이 선택, 김승규가 압도적인 1위를 기록했다. 이 같은 몰표 역시 벨기에전에서의 노력에 대한 팬들의 보답이자 앞으로의 활약에 대한 팬들의 요구였던 셈이다.
지난 월드컵에서의 화려한 스타 탄생은 김승규에게 '이광종호 승선'이라는 기회를 선물했다.
특히 김승규로서는 4년 전의 한을 풀 기회를 맞은 셈이다.
김승규는 이번 아시안게임 대표 선수 중 유일한 아시안게임 유경험자다.
그는 홍명보(45) 감독의 지휘 아래 2010광저우아시안게임에 출전했다. 그러나 홍명보호는 아랍에미리트와의 준결승에서 연장후반 추가시간에 골을 내주며 0-1로 패해 동메달에 그쳤다.
김승규는 2012런던올림픽에는 정성룡과 이범영(25·부산 아이파크)에게 밀려 출전하지 못했다. 런던올림픽대표팀은 3·4위전에서 일본을 2-0으로 완파하고 동메달을 획득했다.
국내 운동선수 중 아시안게임 금메달리스트와 올림픽 동메달리스트 이상은 병역 면제 혜택을 받는다. 김승규는 아직 그 혜택을 받지 못했다. 김승규는 어쩌면 이번 아시안게임을 통해 축구 인생에서 일대 기로에 들어선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만큼 각오가 남다를 수밖에 없다.
김승규는 지난달 30일 울산에서 가진 소속팀 미디어데이에서 "4년 전에도 (아시안게임에)출전해 이번이 두 번째다"면서 "이번에는 와일드 카드로 나서기에 그때와 느낌이 다르다. 와일드카드 선수들에게 거는 기대가 어떤 느낌인지 알고 있다. 그만큼 내가 해줘야 한다"고 자신의 역할을 되새겼다.
김승규는 "지난 광저우 대회 때 우리 팀의 실력은 충분했지만 부담감이 있었다. 이기고 있어도 지고 있는 것 같았다. 그래서 조급해지고 실수가 많았다"고 돌아본 뒤, "이런 경험을 한 선수가 (이번 대표팀에는)나 밖에 없다"며 "(후배들과의)미팅을 통해 부담감을 덜고 경기를 한다면 더 좋은 경기를 할 수 있을 것이다"고 아시안게임 경험자로서도 팀 분위기를 위해서도 기여할 것임을 밝혔다.
특히 김승규는 "월드컵에서 이미지를 좋게 심었다. 그 활약이 운이나 반짝 활약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말해 월드컵 스타로서의 남다른 투지를 다졌다.
지난 1일 경기 파주국가대표트레이닝센터(NFC)에 입소하면서도 김승규는 "광저우 때와는 마음가짐이 다르다. (선배로서)부담이 크지만 책임감도 느낀다"며 "(토너먼트에서는)비기고 있어도 우리가 더 유리하다는 것을 (후배들에게)말해주고 싶다. 승부차기에 자신이 있기 때문에 급하게 하지 말라는 말을 하고 싶다"고 말해 와일드카드로서의 책임감을 다시 한 번 강조했다.
이같은 말이 단순한 립서비스가 되지 않도록, 김승규가 스타 의식에 빠져 자만하지 않도록 '축구의 신'은 아시안게임 조별리그 시작을 앞둔 최종 평가전에서 김승규에게 아주 독한 예방주사를 맞춰줬다.
김승규는 지난 10일 오후 4시 경기 안산와스타디움에서 열린 아랍에미리트 아시안게임대표팀과의 연습경기(2-1 승)에서 한국이 김민혁(22·사간 도스)의 선제골로 1-0으로 앞서 있던 후반 1분 어이없는 실수로 상대에게 동점골을 헌납했다.
페널티 지역에서 김승규가 길게 걷어내려던 공이 중간에 끊겼고, 술탄 알멘할리가 비어있는 골대를 향해 중거리슛을 쏴 승부를 원점으로 되돌렸다. 후반 30분 김승대(23·포항 스틸러스)의 추가골로 한국이 승리했지만 김승규로서는 뜨끔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만들어졌던 셈이다.